지난 8일 서울시립오페라단의 <토스카>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무대였다. 오페라 리뷰를 좀체 쓰지 않는 한국 언론은 이례적으로 이날 공연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공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주역 토스카를 맡은 안젤라 게오르규의 돌출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이 사건 덕에 이날 공연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김재형, 스카르피아 역의 바리톤 사무엘 윤은 흠잡을 데 없는 소리와 표정으로 관객을 만족시켰다. 김재형은 1막 아리아 ‘오묘한 조화’에서 큰 박수를 받았고, 2막 ‘이겼노라, 승리했노라’ 대목의 엄청난 발성은 전율을 안겨주었다. 사무엘 윤은 경찰총수 스카르피아의 악마적 이미지를 과장없이 표현하여 오페라에 안정감을 주었다. ‘세기의 디바’ 안젤라 게오르규는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 탁월한 연기력과 카리스마로 청중들을 매혹시켰다. 그녀의 토스카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2막, 스카르피아의 협박에 지쳐서 부르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그녀 자신의 이야기인 듯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한창 때의 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음정이 휘어진 대목들이 아쉬움을 남겼고, 많은 갈채에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지중배 지휘의 부천 필하모닉 단원들은 호흡이 잘 맞았고, 등장인물들의 라이트모티브가 잘 들리도록 연주하여 드라마의 몰입을 도왔다. 무대 미술은 1800년 무렵 로마의 성당, 파르네제 궁, 산탄젤로 성의 분위기를 세련되게 재연했고, ‘진노의 날’ 종소리 등 효과음은 현장감을 높였다. 1막 스카르피아가 “가라, 토스카”를 외친 뒤 이어지는 ‘테 데움’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오르간 옆에 줄지어 서서 노래한 장면은 탄성을 자아냈다.
문제의 사건은 3막, 카바라도시가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부른 직후 일어났다. 청중들은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김재형은 지휘자의 사인에 따라 노래를 한 번 더 불렀다. 그 순간 안젤라가 무대로 걸어 나와서 뭔가 큰 제스처를 취했고, 청중들은 당황했다. 죽음을 앞둔 카바라도시가 토스카와 함께 한 황홀한 순간을 그리워하는 대목인데, 그녀가 마술처럼 무대 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래가 끝나자 안젤라는 지휘자를 향해 항의했고, 청중들도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Excuse me, this is a performance, not a recital. Please respect me.” “(개인) 리사이틀이 아니라 (오페라) 공연이기 때문에 앵콜은 안 된다”는 취지였고 "나를 존중해 달라"는 요구를 덧붙인 것이다. 순간 음악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지휘자의 바톤이 다시 움직이자 안젤라와 김재형은 위태롭게 노래를 이어갔다. 분위기가 크게 망가진 뒤의 음악이 매끄러울 리 없었다. 공연 후 커튼콜에서 안젤라는 자기 차례가 됐는데도 한참 나오지 않다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일부 청중이 야유하자 홱 돌아서 나가 버렸고, 커튼콜은 나머지 출연자와 스탭들끼리 마무리했다.
이날의 해프닝에 대한 언론 보도는 그녀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즉시 사과문을 게재, “그녀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청중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일부 청중들이 환불을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오페라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입장을 밝히며 토론을 벌였다. 이제 감정적 반응을 가라앉히고, 이 해프닝이 던져 준 화두를 차분히 성찰해 볼 때가 됐다.
먼저, 오페라 공연 중의 앵콜은 안 되는 걸까? 매우 이례적이긴 하지만 꼭 금지된 일은 아니다. 헨델이 활약한 18세기 전반 런던에서 오페라는 스타 성악가들의 경연장과 같았고, 앵콜은 자연스런 풍경이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 빈 초연 때 앵콜 요청이 너무 많아서 황제가 ‘이중창을 넘는 앙상블은 앵콜을 금지한다’는 포고령을 내려야 할 정도였다. 당시 테너 마이클 켈리가 황제에게 “앵콜을 싫어하는 성악가가 어디 있나요?”라고 반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페라의 앵콜은 드라마의 흐름을 중시한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 이후 점차 줄어들었고, 악보대로 지휘하기로 유명한 토스카니니의 금지령 이후 20세기 후반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파바로티 등 톱스타는 팬들의 환호에 답해서 앵콜에 응하는 관행을 아주 버리지 않았다. 결국 앵콜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여부는 출연 음악가들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그때그때 판단할 일인 셈이다. 따라서 “리사이틀이 아니라 공연이니 앵콜은 안 된다”는 안젤라의 발언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안젤라는 스스로 ‘우리 시대 마지막 전통적 디바’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그녀는 일단 무대에 오르면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 <라트라비아타>에서는 비올레타, <라보엠>에서는 미미로 완벽하게 변신하여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 점은 평범한 성악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디바’의 능력이다. 그러나 안젤라는 옛 ‘디바’들의 약점, 즉 누구나 자기를 숭배하고 떠받들어야 하며 다른 성악가가 자기보다 더 큰 갈채를 받는 걸 견디지 못하는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2016년 빈 공연 때도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앵콜을 부르자 화가 나서 한참 동안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가 특별히 '한국' 관객을 무시했다고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두 사건이 모두 <토스카> 공연 중에 일어났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주인공 토스카는 1막에서 ‘질투의 화신’(Gelusa)으로 등장하며, 안젤라의 행동 또한 질투 때문이라는 설명하는 사람이 많았다. 안젤라는 이날 공연 하루 전 만 59회 생일을 맞았다고 한다. 최선을 다한 동료 예술가들에게 흔쾌히 박수를 보내 주는 성숙한 디바가 되기를 기대할 만한 나이다. 그녀는 리허설 때 "김재형의 멋진 목소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실제 공연에서 앵콜을 받은 그를 축하해 주는 넉넉함을 보여주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이 해프닝이 그녀가 오페라 속의 자기 역할에 철저히 몰입했기 때문에 일어났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별은 빛나건만'에 이어지는 시츄에이션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앵콜 때문에 드라마의 흐름이 깨졌다는 항의의 의미를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그녀의 행동은 합리화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기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면서 ‘관객에 대한 예의'라는 기본을 망각한 건 모순된 행태였다. 세종문화회관 측이 그녀에게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오히려 안젤라와 같은 세계적 스타를 초청할 때 예상되는 까다로운 상황들에 좀 더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모든 관계자들이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 게 좋겠다. 안젤라를 앞세워 흥행몰이를 했으면 잘못된 부분에 대한 책임도 나눠 갖는 게 ’동등한 파트너‘의 합리적인 태도 아닐까?
일부 보도처럼 환불을 요구한 관객이 있었다면 이는 난센스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많았을 리 없으니 일부 기자의 '뇌피셜'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날 <토스카> 공연은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했고, “돈 주고도 못 볼 장면을 덤으로 구경했다”(?)는 씁쓸한 농담이 오갔다. 안젤라 게오르규가 자신을 사랑한 한국의 팬들을 향해 두 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특유의 동작으로 작별 인사를 보낼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