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그린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스스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며~.”
멕시코 최초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고통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기구한 삶을 살았다. 6살 때 소아마비, 18살 시절의 치명적인 교통사고, 뒤이은 7차례의 척수수술과, 이혼, 유산들은 그의 삶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가 고통을 매번 마주했을 때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했다. 이런 그의 진념 있는 삶의 태도는 곧, 예술의 치유의 힘을 강하게 보여주는 화가이다.
올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 진흥원에서 진행한 문화 예술치유 프로그램인 관계자 오리엔테이션 ‘마음치유, 봄처럼’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이 프로그램은 예술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극복하고 사회적 역할을 회복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렇게 예술적 표현을 넘어 예술 치유 중요성이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 필자는 대금 연주부터 뮤지컬, 마임, 예술경영까지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몸소 느낀 ‘예술 치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한다.
국악 오케스트라에서 처음 접한 대금은 나에게 화합의 맵시를 알려주었다. 30명가량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맞추기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처음 접해보는 국악기로 마음을 합치시킨다는 것은 역시나 큰 어려움이 존재했다. 그러나 각자 악기를 익히고 음률을 만들며 중구난방했던 소리들이 하나의 화음으로 들릴 때,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보다도 내가 연주하는 대금과 네가 연주하는 가야금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음악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고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곧 관계의 유대감과 팀워크의 진정한 의미를 끌어냈다는데에 의미가 크다.
예술고등학교에서 전공했던 뮤지컬 활동은 내게 가장 어려웠던 과정인 만큼 크게 성장한 경험이었다. 뮤지컬은 연기, 노래, 춤이 결합된 종합예술로, 다른 인물을 완전히 공감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대금 연주와는 달리, 뮤지컬은 자기표현 능력과 공감 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대본에 적힌 대사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닌,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인물의 삶과 감정을 나의 몸으로 온전히 전달하는 특별한 경험인 것이다. 기쁜 감정도 기뻤던 감정을 느낀 사람만이 잘 표현할 수 있듯, 뮤지컬과 극은 여러 인생과 상응하는 감정들을 알려주며, 나만의 풍부한 감정 표현을 형성해 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내 규칙된 관성에 벗어나 다른 표현,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이 큰 장벽이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나는 표현의 한계를 허물고,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에도 거리낌 없이 솔직한 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자기표현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에 두 번째 예술의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마임은 필자가 예술고등학교에서 처음 접한 예술로, 내면의 나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행동언어를 창조해야만 했다. 이는 직관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바닥을 쿵쿵 치거나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도 마임이 될 수 있고, 모든 움직임이 나의 언어가 되는 이러한 마임은, 곧 매개가 되어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뮤지컬이 다른 삶을 통해 새로운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면, 마임은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하여 내면의 나를 찾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상상력과 넓은 시각은 세상을 보다 크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해주었고, 궁극적으로 나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3번째 예술 활동의 의미를 지닌다.
치료가 의료적 차원에서 명확한 처치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반면, 치유는 감성적이고 자기 치유의 의미를 더 많이 내포한다. 지난 7월에 실시된 마음 치료사업은 대한민국의 심각한 우울증, 불안 증세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현 사태에 대한 사후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미 많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힘듦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고, 감정을 표출시키는 정신적 웰빙의 기회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한 삶을 제고하고 삶의 자생력과 정신적 웰빙을 부여하는 그 치유의 수단은 곧 예술로 전달할 수 있다.
말키오디 박사는 (cathy A. malchiodi) ‘예술치유’를 예술 창작 자체가 성장과 치유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일련의 창작활동으로 정의하였다.
필자가 위에 예술 활동을 나열한 것과 같이,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게 하는 예술 치유의 본질은 (예술 활동을 하며 배우는) ‘예술을 통한 교육’ (education through arts)에 존재한다. 이는 장르 중심 예능교육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예술을 매개로 정신적, 신체적 성장을 하는 것이며, 대한민국 정신 재난 사태의 가장 근본적이고 예방적인 해결책이다. 필자가 대금을 통해 관계 화합을 배우고, 뮤지컬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마임을 통해 내면의 나를 성찰하는 성장의 시간을 가졌듯이, 예술 참여가 교육으로 이어지며 예술 치유를 실현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안락한 공간이 되기를, 예술은 지향해야할 것이며, 또한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