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 이소영 솔오페라단장 “100년 역사 담긴,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무한동력의 예술이 되다”
[Culture Interview] 이소영 솔오페라단장 “100년 역사 담긴,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무한동력의 예술이 되다”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9.12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 100년 만의 첫 선택은 ‘대한민국’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버전, 무대ㆍ의상ㆍ소품까지 그대로 사용
2005년 창단 ‘솔오페라단’, 우리 고전 재해석한 작품으로 유럽과 교류
“‘민간의 필연적 희생’ 국내 오페라, 정부 차원의 관심ㆍ지원 필요”
-10.12~19,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 총 8회 공연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매년 6~9월이 되면,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는 도시 전체가 오페라 공연장으로 변한다. 고대 로마 유적인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에서 열리는 세계 최초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인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1913년 8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처음 개최되어, 101년의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의 자랑이다. 별빛과 달빛이 비추는 야외무대에서 당대 유명한 성악가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수준 높은 공연을 만나기 위해 몰려드는 음악 애호가들로 인해 매년 여름 베로나는 웅장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음악의 도시가 된다.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된 아레나 디 베로나의 광경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된 아레나 디 베로나의 광경

축제 기간에는 베르디의 <아이다>를 비롯해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나부코>와 푸치니의 <투란도트>, <라 보엠> 등 5~7편의 작품이 50회 이상 공연된다.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되는 <투란도트>는 101번째를 맞이한 2024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개막작이었다. 축제의 규모와 역사만으로 그 가치를 설명하는 아레나 디 베로나는, 오페라 애호가들의 ‘버킷리스트’ 공연 중 하나이며 성악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2024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개막작으로 관객들을 만난 <투란도트>가 101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을 벗어나 특별한 외출에 나선다. 이들의 첫 해외 공연 무대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이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8회 공연으로 진행된다. 이번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는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버전으로 선보인다. 웅장함과 섬세함을 자랑하는 제피렐리가 생전 연출했던 무대를 그대로 유지한다. 성악가, 합창단, 무용수 등 500여명이 무대에 오르고, 세트와 조명, 의상까지 모두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온다. 특히, 제피렐리 재단과의 계약을 통해 소품 하나까지 오리지널을 고수한다. 제피렐리는 2019년 세상을 떴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감동은 그대로 담길 예정이다. 

▲이소영 솔오페라단장
▲이소영 솔오페라단장

아레나 디 베로나의 대형 프로젝트가 한국 관객들 앞에 펼쳐지는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리는 건, 예술총감독을 맡은 이소영 솔오페라단장일 것이다. 1990년대 베로나 국립음악원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2005년 솔오페라단을 창단해 <춘희>, <카르멘>, <라 보엠>, <투란도트>와 같은 대작과 더불어 <춘향전>, <선덕여왕> 등 한국의 정체성이 담긴 오페라를 해외 무대에 올리고 있다. 유학 시절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일상에 오페라가 있는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를 우리나라에도 꼭 전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이탈리아 대사관 및 문화원과 예술로써 꾸준한 교류를 이어오던 끝에 꿈을 현실로 만들게 됐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를 통해 우리에게도 이러한 공연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소영 단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지만 망설임 없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언했다.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축제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대를 고스란히 한국으로 옮겨오느라 정신없이 바쁘던 8월 말, 솔오페라단 사무실에서 이소영 단장을 만나 잠실에 펼쳐질 베로나는 어떤 모습일지 들어봤다. 

오는 10월 공연되는 <투란도트>는 솔오페라단이 유럽 무대에 진출한 후 지금까지 이어온 문화 교류가 일군 결과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최초 내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하는데, 이 공연은 어떻게 성사됐는지.

힘들다면 힘들고, 재밌다면 재밌는 과정이었다. 올해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양국은 2024년과 2025년을 ‘한-이 상호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해 다양한 문화교류 행사들이 많이 진행하고 있다. 솔오페라단도 지난해 초부터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어떤 공연을 할까, 이탈리아 대사관ㆍ문화원과 함께 고민해왔다. 당초 예정은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데려오는 것이었는데, 이탈리아 문화 단체장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거쳐 ‘아레나 디 베로나’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역으로 받게 됐다. 사실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대사관과 문화원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솔오페라단은 그간 이탈리아 공연을 통해 협업 관계를 이어오다 보니 논의가 자연스레 이뤄지게 됐다. 너무 영광이었다. 

7일간 총 8회 공연이며 해외에서 들어오는 인원만 80여 명, 무대에 오르는 인원이 500여 명, 제작진 및 스태프를 포함하면 1000명 가까이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출연하는 성악가들부터 스태프,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용단까지 일정을 일일이 조정하는 것부터가 엄청난 일이다. 방 배정과 연습실ㆍ호텔ㆍ공연장 동선 등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공연에서 사용하던 무대 세트와 소품, 의상을 빠짐없이 그대로 가져와 공연하는데 무대 크기는 너비 46미터, 높이 18미터다. 이뿐만 아니라 정교한 조명, 화려한 의상까지 이 모든 것을 다 실어 나르는데 40피트 컨테이너 55개가 필요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안 가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몇 명 안되는 직원들과 함께 놓치는 것 없이 챙기느라 정신없이 바쁘지만, 전 세계 최고의 오페라 축제로 꼽히는 아레나 디 베로나를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기쁨과 보람이 더 크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최초 연출자인 프랑코 제피렐리는 2019년에 타계했다. 그 연출을 이어서 누가 하는지 궁금하다. 

공연은 제피렐리 연출 버전이 그대로 유지된다. 제피렐리의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연출을 그대로 유지하며 스테파노 트레스피디(Stefano Trespidi)가 재연출을 맡아 공연을 이끈다.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오리지널 공연 장면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오리지널 공연 장면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관객들이 이 공연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고전적인 배경과 소재가 주가 되는 오페라의 경우,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시대적ㆍ공간적 배경을 연출자가 재창조하여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묶여있는 것 같으면서도 창의적이어야만 인정받는 예술이다. 때문에 연출가가 누구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프랑코 제피렐리 버전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제프렐리는 디테일에 강한 사람이고, 역사적 고증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다. 더불어, 연출적으로 시각적인 충격을 다양하게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여러 면에서 다른 <투란도트>와는 완전히 차별화된다.

아레나 디 베로나라는 공간은 야외 특성상 무대장치가 다양화 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무대 전환 등 연출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놀라웠다. 없던 궁전이 생기고 막이 바뀔 때마다 현장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푸치니의 음악도 아름답지만 제프렐리의 연출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서울에서의 공연은 실내에서 진행되지만, 실내에서도 야외와 똑같이 재현한다. 레일, 유압장치 등 모든 장비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설치한다. 오페라의 매력과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음향만 설치하고 공간의 음향을 활용할 예정이다. 기계적인 소리를 최대한 줄여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 

<투란도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작품 중 하나다. 푸치니 서거 100주년인 올해는 특히 여러 오페라단에서 이 작품을 다양한 버전으로 선보이게 되는데,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비극적인 오페라들이 대다수인 가운데, <투란도트>는 해피엔딩이고 사랑과 희망의 명제가 뚜렷하다. 작품의 스케일도 화려하고 스펙타클해, 관객들이 오페라에 기대하는 모습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 인원 130명, 합창단 176명으로 푸치니 작품 중 참여 인원도 가장 많다. 푸치니 자신도, <투란도트>가 있다면 다른 걸 다 버려도 좋다고 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다. 수치적인 것을 따지지 않고 보더라도, 좋은 작품은 관객들이 그냥 알아보는 것 같다.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라인업인데 좀 더 상세한 소개도 부탁한다.

지휘를 맡은 다니엘 오렌은 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오페라 지휘자 중 하나로 꼽히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음악감독이기도 해서 캐스팅에 일일이 관여했다. 그러다 보니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투란도트 역은 옥사나 디카, 올가 마슬로바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타이틀롤을 거머쥔 전여진이, 칼라프 왕자 역은 마틴 뭴레와 아르투로 차콘 크루즈가, 류 역에는 마리안젤라 시실리아와 줄리아 마졸라, 티무르 역에는 페루치오 푸르라네토오 게오르기 안드굴라제가 출연한다. 

특히, 전여진 소프라노의 투란도트를 관심있게 봐주셨으면 한다. 사실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한국인 캐스팅이 있다는 걸 몰랐는데, 극장 측의 안내로 알게 됐다. 이번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에 캐스팅이 되어 리허설까지 다 했는데, 공연 당일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저희는 아레나 디 베로나 무대에 오른 출연진이 아니니 뺄까 말까 고민이 많았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이 친구를 꼭 썼으면 한다고 적극 추천을 해서 이번 공연에 함께하게 됐다. 그 친구의 연습 과정을 계속 지켜봤기 때문에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데뷔 무대가 불발된 것에 대해 우리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한국 공연에는 오를 수 있게 되어 기대가 크다. 

▲웅장함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의 오페라 <투란도트>
▲웅장함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의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는 세계 최초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만큼 감회가 더욱 새로울 것 같은데, 이 축제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번 공연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아레나 디 베로나는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고, 나 역시 그랬다. 베로나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음악원 학생들은 리허설을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보며 꿈을 키웠다. 내가 유학생활을 했던 1990년대 초는 우리나라 오페라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기 때문에, 아레나 디 베로나의 거대한 규모의 무대와 관중들은 더 크게 다가왔다. 한국은 오페라라 하면 격식을 차려야 하는 무거운 장르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선 사람들이 돌바닥에 앉아 자유롭게 축제를 즐긴다. 공연의 수준도 높지만, 그 수준 높은 공연을 대중이 편하게 즐기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환경에서 공부하며, (국내에서) 오페라 산업을 대중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박힌 것 같다.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공연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보람이고 영광이다. 20대 때 꿈꿨던 것을 이루는 거라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더불어, 이러한 공연이 한국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손해가 될 수도 있고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지만 망설임 없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이다. 

‘솔오페라단’은 2005년 출발해 20년이 된 민간 오페라단이다. 처음 오페라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오페라단은 어떤 계기로 창단하게 됐는지. 

원래는 피아노 전공이었는데, 나는 성악이 더 하고 싶었다. 피아노와 성악을 같이 공부하면서 성악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피아노과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유학을 가게 됐고, 유학에 가서는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몰래 성악과 시험을 먼저 쳐서 학교를 다니다가 이후 피아노과 시험을 쳐서 두 가지를 모두 전공했다. 남들보다 오래 공부 공부하고, 빠듯한 일상을 보냈지만, 그 시간에 나에게는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지금 하는 일에 원동력이 됐고, 그때 쌓은 기초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학생 때는 제랄드 무어(Gerald Moore) 같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독주 연주자가 아닌 전문 반주자로서 성악가들과 함께하며 오페라 코칭을 하는 것이 원래 꿈이었다. 오페라 코치가 되기 위해선 피아노를 기본으로 성악적 지식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발성적으로도 가수를 코칭해주지만, 곡에 대한 역사적 배경부터 음악적 프레이징까지 알려주며 객관적으로 듣고 평가해주는 역할을 한다. 야구로 따지면 투수 코치나 타격 코치처럼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오페라 코치 역할을 일정 부분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페라를 오래 해오면서, 성악가들에게 아쉬운 부분이 이런 것들이다. 내가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따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나만의 인물이 탄생하는 건데, 많은 가수들이 이 부분을 소홀히 하며 노래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학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대에서 강의를 하고,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에서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과 공연할 기회가 생겼고, 음악감독을 맡게 됐다. 처음엔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후 두 번, 세 번 계속하게 됐다. 그러다 단장까지 맡게 됐다. 어떻게 보면 등 떠밀려 하게 됐다.(웃음) 아무도 단장을 안 하려고 했다. 처음엔 단장이라는 호칭이 너무 부끄러워 이름도 올리지 않았는데, 계속 공연하다 보니 단장의 필요성을 느꼈다. 오페라단은 부산에서 시작했는데 공연을 서울에서 한 번 해보니 차이를 너무 크게 느꼈다. 부산에서는 시장 자체가 형성이 안 되어 있었는데, 서울에서는 공연을 올리기만 해도 사람들이 티켓을 구매하는 것부터가 신기했다. 서울을 좇아 온 게 아니라, 시장을 따라 관객을 따라 서울로 온 것이다. 

‘솔오페라단’은 부산에서 출발했지만, 국제적 활동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다. 유럽을 주 무대로 우리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 오페라를 다양하게 선보였는데, 그동안 작업한 대표 작품을 소개한다면.

첫 교류의 시작은, 외국 작품을 들여오면서 우리 것도 한 번 해달라는 조건을 만들면서부터다. 교류할 때 최대한 조건을 페어하게 가져가려고 신경을 많이 쓴다. 해외 극장들과 협업을 통해서 외국작품을 들여오지만, 한국의 색깔을 입히려고 노력한다. 이탈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페라의 역사가 짧지만,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여러 개 선보이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호응을 받는 작품은 <춘향전>이다. <선덕여왕> 등 다른 작품들도 있지만, 외국 관객들은 <춘향전>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엔 외국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춘향이가 탄식가를 부를 때 따라 울고, 춘향이와 몽룡이가 재회할 때 함께 박수를 쳐주는 모습에 놀랐다. 심지어 자막이 따로 없던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공연을 이해하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스토리 라인으로 역사적 배경 지식 없이도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음악과 공연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공연된 <투란도트> 무대와 오케스트라 전경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공연된 <투란도트> 무대와 오케스트라 전경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작품을 올리고 교류를 이어가는 동시에,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조직위원장, 부산오페라단연합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하며 누구보다 국내 오페라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무대를 올리며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유럽도 경제위기가 오면서 상황이 좋지 못하다. 가장 손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이 문화예산이지 않나. 유럽도 공연계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70~80% 지원하던 것들이 50~60%까지 내려왔다. 국가적 지원이 줄어 기업 스폰도 많이 받고 티켓 판매도 많이 하고 있지만,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졌다 한들 그간 축적된 것들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예전에 비해 안 좋아진 상황일지라도 우리나라보다는 굉장히 좋은 환경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험난하지만, 티켓을 유료 판매 하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 민간 예술단체를 가장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 시립 등 극소수 단체가 대한민국 오천만 인구의 문화예술 수요를 전부 감당할 수 없다. 나머지는 민간의 몫인데, 민간의 역할에 대해 정부가 너무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국립과 시립도 티켓을 유료로 판매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지원대로 받는데, 민간에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자생력이 강한 우리나라 민간 오페라단은 꿋꿋하게 살아남고 있다. 이는 각 단체에서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오페라단의 경우만 해도, 한 명이 10인분의 역할을 한다. 단장인 나는 개인적인 시간과 생활을 줄이지 않으면 단체를 절대 유지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여전히 열악한 민간 예술단체의 제작 환경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줄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아레나 디 베로나’처럼 오페라를 전 국민의 ‘축제’로 즐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과 개선되어야 할 점, 방향성은 각각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어떤 걸 잘 만들 수 있는지, 단체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만드는 게 만 원짜리 상품인지, 오천 원짜리 상품인지 스스로 진단해봐야 한다. 단체가 먼저 그런 인식을 가지며 각자 잘하는 성격의 공연을 잘 만들어 선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우리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니아층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걸 둘러싼 그룹들도 있어야 하는데 국내 시장에서는 아직 그 기반이 약하다. 마니아 층을 기반으로 오페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반 관객층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오페라가 고급 여가 생활이라는 인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에 선보이는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의 티켓 가격이 5만 원부터 55만 원까지 넓게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비교적 저렴한 금액대의 티켓으로 오페라를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앞자리에서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도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혀야 한다. 이번 공연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서도 오페라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한다. 이런 현태의 공연이 많아지길 바란다.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앞으로의 목표.

지금은 반 예술인 반 경영인인데, 오페라단을 잘 이끌기 위해선 경영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예술가의 껍데기를 벗지 못하고 있다. 경영을 잘하면서 예술 스태프들과 소통해야 할 것 같다. 예술가를 탈피해, 예술 상품을 판매하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를 찾을 예정이거나 고민 중인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페라 <투란도트>는 워낙 대중적인 작품이고,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매표율 1위인 작품이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는 매표율 1위를 체감할 수 없을 것이다. 꼭 와서 보시고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우리 오페라단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베로나 오페라 축제 측에서도 최선을 다해 한국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 이탈리아의 감성을 느껴보시고, 오페라의 발전을 느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