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귀신의 집’ 탐험하는 이색 전시…리움미술관 《드림 스크린》展
[현장스케치] ‘귀신의 집’ 탐험하는 이색 전시…리움미술관 《드림 스크린》展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9.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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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2.29,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귀신들린 집’으로 알려진 ‘윈체스터 하우스'를 본뜬 전시 공간. 그 안에서 각각의 방이 들려주는 작가의 공포 서사를 따라가는 이색 전시가 열렸다. 리움미술관은 오는 12월 29일까지 아니카 이 개인전과 함께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을 아동교육문화센터 블랙박스와 그라운드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지난 3일에는 기자간담회를 개최, 전시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귀신 들린 집, '윈체스터 하우스'를 본뜬 전시장이 블랙박스에 마련됐다.
▲귀신 들린 집, '윈체스터 하우스'를 본뜬 전시장이 블랙박스에 마련됐다.

스크린으로의 이행, 변화의 공포

리크리트 티라바닛 예술감독, 유지원 큐레이터와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한 전효경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 단계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그 이후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고, 많은 경험들이 스크린을 통한 경험으로 대체되어 왔다는 특징에 주목했다”라며, “단순히 인터넷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영화, 여행 혹은 어떤 것들을 알고 배우는 것들 등 많은 부분에서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를 가기보다 스크린을 통해서 진행되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경험들을 통해 우리가 물리적인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에도 명확한 변화가 생겼다고 믿고, 그러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이 전시를 기획을 했다”라고 밝혔다.

3인의 기획자들은 전시를 기획하며 ‘공포’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전효경 큐레이터는 “감각이 변화하면서 다르게 느껴지는 뒤틀린 공간감이나 시간성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단순한 불안이나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를 느끼게 되는 상황이 떠올랐다”라며, “리크리트 티라바닛 감독과 그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윈체스터 하우스(Winchester House)’라는 전시의 주가 되는 구조를 구상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좁은 복도로 구성된 전시공간에서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전효경 큐레이터.
▲좁은 복도로 구성된 전시공간에서 이번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전효경 큐레이터.

전시의 모티프가 된 ‘윈체스터 하우스’는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미국 산호세 소재 주택으로, ‘귀신 들린 집’으로 불리고 있다. 총기 사업으로 부를 일군 윈체스터 가의 부인이 총기로 인해 사망한 이들의 혼이 자신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독특한 구조로 지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목 ‘드림 스크린’은 허구적이지만 보다 깊은 무의식의 영역을 드러내는 ‘꿈’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중개하는 다종다양한 ‘스크린’을 합성한 표현이자, 스크린 배후에 떠오르는 환상이나 잔상을 의미하는 조어다. 

전시의 참여 작가 26명(팀)은 국내 작가를 비롯하여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문화권 11개국 출신이다. 이들은 아시아의 지역적 특징과 문화를 기반으로 인터넷, 서브 컬쳐, 게임, 대중 문화 등을 접하며 성장한 세대에 속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로와 같은 저택 안에서 꿈을 따라가듯 이들의 작품 60점을 만나볼 수 있다. 

▲《드림 스크린》 전시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전경.
▲《드림 스크린》 전시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전경.

꿈 속을 해매듯...

전시는 마당, 입구, 복도, 그리고 20여 개의 독립적인 방으로 구성된다.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각 작가의 실천을 밀도 있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 체계가 공존하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재고한다. 마치 미로 사이로 길을 찾는 듯한 동선은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방향성의 상실과 고립감을 반영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각자만의 길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

전시장 안에 지어진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에 설치된 프리실라 정의 대형 조각 작품이 보이고, 얼룩으로 도배된 최윤의 방에서 전시가 시작된다.

소 유 누에는 설화 속 인물을 소재로 한 조각으로 혼종적인 정체성과 국경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믿음을 탐구하고, 아를렛 꾸잉-안 짠은 메콩강 삼각주에서 펼쳐지는 공상 과학적 상상력으로 냉전 이후 고착된 지정학적 구도에 대항하는 대안 역사를 제시한다. 

▲금방이라도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전시 전경.
▲금방이라도 유령이 나올 듯 으스스한 전시 전경.

카몬락 숙차이는 태국 설화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을 동시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박세영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소멸 중이지만 여전히 정서적 영향을 끼치는 통속적인 노래들을 추적한다. 보 왕은 가발 무역을 중심으로 20세기 후반 아시아의 산업화 및 근대화 이면의 기억을 발굴, 재구성한다.  

오늘날 스크린 안팎의 세계를 왕복하는 탐구를 기반으로 펼치는 서사적 작업들도 만날 수 있다. 리 이판은 DIY 방식으로 만든 3D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기술적 도구 및 환경에 대한 의구심을 던지고, 김희천은 스크린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게 되면서 기술이 점차 비가시화되는 문제를 다룬다. 

헤 지케는 현실과 긴밀하게 얽힌 디지털 세계가 붕괴하는 순간을 허구적 서사로 파고들고, 류한솔은 B급 공포 영화나 온라인의 자극적 콘텐츠의 문법을 차용해 파편화된 신체의 감각과 이로부터의 쾌감을 발견한다. 

▲'집 안의 또 다른 집'과 같은 독특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집 안의 또 다른 집'과 같은 독특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비비안 장은 디지털 세계의 알고리즘과 예측 도구를 끌어와 회화에 적용하고, 리아르 리잘디는 숲속으로 후퇴하여 반기술적 아젠다를 전파하는 아나키스트의 운동을 다룬다. 콜론은 디지털 시대의 원격 근무, 트롤 농장, 가상 비서 등 보이지 않는 존재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개인이 물리적, 심리적으로 고립되는 세계에서 맺을 수 있는 다양한 관계의 모습을 펼쳐내는 작업도 소개된다. 이은새는 편견이나 위계없이 완벽한 사랑의 형태를 벽화로 표현하고, 스파클링 탭 워터는 다양한 소리와 대화, 만남과 즉흥 연주가 끊이지 않는 공간을 구현한다. 선다이얼은 대만과 인도네시아의 뮤지션 콜렉티브로 초국가적 상상력과 서사를 지향한다. 

강정석과 파트타임스위트의 특별 스크리닝 섹션에서는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제작한 7개의 영상 작업을 보여준다. 200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개인이 사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과 생존을 조직하는 방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여정을 제시한다.

▲밖에서 보는 전시 공간은 이렇게 생겼다.
▲밖에서 보는 전시 공간은 이렇게 생겼다.

음악공연, 퍼포먼스 등의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했다. 전시장 내에서는 인도네시아와 대만 뮤지션 듀오 선다이얼, 베트남의 실험음악 밴드 란 캅 두오이,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실험적 음악을 만드는 밴드 센야와, 즉흥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첼로 연주자 이옥경이 공연을 펼친다.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아시아 공포 영화 상영회 <어반 레전드>도 만나볼 수 있다. 아시아의 도시 괴담에서 출발한 2000년대 영화에서 시작해, 공포 영화의 근간이 된 ‘레전드’ 영화들을 리움미술관 강당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오는 27일부터 내달 17일까지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