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0일 예술의전당, 마리아 조앙 피레스 리사이틀
9월 20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기나긴 무더위가 자취를 감췄다. 7시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그의 연주가 남긴 감동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한 분은 “물 흐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분은 ‘Not flamboyant’라고 했다. “꾸밈없다, 순수하다, 담백하다”란 뜻으로 들렸다. 그는 쇼트커트의 머리 스타일에 화려한 연주복 대신 느슨한 니트와 연한 옥색 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소탈한 용모였고, 그의 연주 또한 그러했다. 피아노는 울림이 깊고 섬세한 파지올리(Fazioli)를 사용했다.
쇼팽의 녹턴 B♭단조, 30년 전 피레스가 녹음한 음반의 첫머리에 수록된 곡이 고요히 콘서트홀에 흘렀다. 가장 포퓰러한 E♭장조와 가장 ‘밤의 느낌’이 짙은 D♭장조를 포함, 6곡의 녹턴이 중단 없이 이어졌다. 청중들은 숨소리를 죽였다. 피레스와 피아노는 하나가 됐고, (연주하는) 사람과 (연주되는) 악기의 구분은 사라졌다. 바이올리니스트에서는 간혹 볼 수 있는 이 경지는 피아니스트의 경우 아주 드문 일이다. 피레스의 연주는 신기하게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강약 대비를 별로 의식하지 않은 듯 다이내믹에 모난 데가 전혀 없었다. 루바토는 의도된 표현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음악에서 작위적인 것을 모두 벗어던지고 그가 도달한 순수와 자연의 경지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연주는 휴식 없이 모차르트 소나타 C장조 K.330과 B♭장조 K.333으로 이어졌다. 5살 때 첫 무대에서 모차르트를 연주한 그가 팔순의 나이에 들려주는 모차르트는 어떤 음악일까? 50년 전인 1974년 녹음과 비교해 보니 템포가 거의 같았다. 그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템포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듯했다. 젊었을 때는 맺고 끊는 걸 분명하게, 엣지있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지금은 모든 작위를 배제하고 자연스런 음악의 흐름에 마음을 맡겼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까. “기쁨과 눈물, 고통과 빛을 함께 표현하는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사랑은 세월과 함께 더 깊어진 듯했다.
피레스의 연주에는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삶의 흔적과 깊이가 배어 있었다. 세계의 젊은 음악가를 위한 벨가이스 센터(Belgais Center for Arts)를 40년간 운영하며 참석한 젊은이들이 먹을 빵을 직접 반죽하고 – 그 귀한 손으로! - 스승과 제자의 상하 위계질서를 멀리해 온 오랜 실천도 그의 음악에 자양분이 되었다. “공연장에서 생태환경 유인물을 나눠주고 학대받는 어린이를 위해 힘을 보태고, 대중음악 뮤지션의 피아노 반주를 마다않는 소탈함”도 그의 음악에 스며들었다. 김선우 시인은 “밭에서 풀 뽑다가 쓱쓱 손을 닦고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고 “음악과 삶이 단절되어 있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숨쉬는 피레스의 피아노”라고 예찬한 바 있다.
피레스의 음악이 도달한 경지는 그의 삶과 인격이 도달한 경지와 같을 터이다. 그래서 본인이 극구 아니라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구루'라 부르곤 한다. 연주를 마치고 청중을 향해 두 손 모아 인사하는 그의 모습은 ‘평화를 기원하는 겸손한 구도자’ 같았다(정승혜님 페북). 그의 연주에는 한 곡 한 곡 감사의 마음이 배어 있었다. 삶에 감사, 음악에 감사, 사랑하는 청중들에게 감사…. 이 느낌을 고스란히 안은 채 집에 가고 싶었다.
앙코르 왈츠 A♭장조 Op.69-1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쇼팽이 결혼을 꿈꾸었던 마리아 보진스카에게 작별의 선물로 준 ‘이별의 왈츠’ 아닌가? 왜 하필 이 곡을 골랐을까? 피레스는 진짜 이번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한 걸까? 정답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해서 눈시울이 더 뜨거웠다. 두번째 앙코르 C#단조 왈츠에 안도감을 느꼈다. 피레스 자신에게 확인할 수 없었지만 방금 연주한 곡이 ‘작별인사’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공기의 요정’ 실피드를 떠올리게 하는 이 아름다운 왈츠는 세상의 삿된 욕망의 무게를 벗어던진 피레스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내 마음에 아로새겨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