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7, 국립극장·대학로극장 쿼드·아르코 예술극장·LG아트센터 등 공연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서사’로 관객들과 ‘시선을 마주하는’ 공연들이 10월 한 달을 가득 채운다.
국내외 다양한 공연과 예술가를 소개하는 제24회 ‘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이하 SPAF)’가 내달 3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 플랫폼엘, 아트코리아랩, LG아트센터 등에서 관객과 만난다.
올해는 ‘새로운 서사:마주하는 시선’을 주제로,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고, 다양한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 주목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새롭게 들여다본다. 특히 장애, 여성, 인종차별 등 사회·문화적으로 지금까지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들에 대한 작품들을 조명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SPAF는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 광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프로그램과 선정 작품을 소개했다. 이날 자리에는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새들의 날에: 첫 번째 이야기-13인의 아해의 불안’ 권병준 연출, ‘에즈라스’ 정훈목 안무가, ‘커뮤니티 대소동’ 이진엽 연출, 최석규 예술감독 등이 참석했다.
이날 현장에서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국내외의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현 시대 예술의 방향성을 선보이며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2년부터 ‘동시대 관점과 시대적 가치를 담아내는 국제 공연예술 축제’를 기치로 행사를 이끌고 있는 최석규 예술감독은 “올해는 ‘새로운 서사: 마주하는 시선’이라는 주제로,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고, 다양한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 주목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새롭게 들여다보려고 한다”라며 “더불어, ‘협력 예술가’ 제도를 통해 좋은 작품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권병준 작가의 ‘새들의 날에’는 SPAF 공연이 끝나고, 올해 11월 벨기에 리에주 극장 ‘임팩트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라고 밝혔다.
최 감독은 이번 출품작들을 ▲아랍, 이슬람, 중동의 서사 ▲예술, 기술·과학의 새로운 관계, 포스트휴머니즘 ▲사운드: 공연예술적 확장과 변주 ▲다양한 몸, 다르게 감각하기 ▲아시아·태평양 지역성과 초지역성 ▲고전의 해체와 재구성 ▲유럽의 리딩 예술가 포커스 ▲새로운 국제이동성: 넥스트 모빌리티’ 등 8개의 시선으로 정리했다.
여성의 서사로 주목할 만한 작품은 LOD뮤직시어터의 <우먼, 포인트 제로>(연출: 라일라 솔리만)와 국립현대무용단의 <내가 물에서 본 것>(안무: 김보라)이다. <우먼, 포인트 제로>는 이집트 작가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의 동명 소설을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아랍 사회의 남성 중심적 체계에 저항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며, 국경을 초월한 여성들의 투쟁과 연대를 그린다. <내가 물에서 본 것>에서는 안무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기술학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재조명한다.
장애의 서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감각의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다채롭다. 청각장애인 안무가인 미나미무라 치사토의 <침묵 속에 기록된>(연출: 미나미무라 치사토)은 원폭 피해 청각장애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춤, 소리, 빛, 애니메이션, 진동, 수어를 통해 표현한다. 프로젝트 이인과 캐나다 내셔널액세스아트센터의 협력작품인 <카메라 루시다>(연출·안무: 프로젝트 이인)는 네 명의 발달장애 무용수와 관객들이 극장 속에서 함께 하며 색다른 공존의 감각을 관객과 공유한다.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커뮤니티 대소동>(연출: 이진엽)은 시각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암전 상태에서 관객 모두가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동일한 경험을 한다.
또한, SPAF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
예술과 기술·과학의 새로운 관계에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알오티씨의 <<새들의 날에>첫 번째 이야기-13인의 아해의 불안>(연출: 권병준)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새로운 기계 생명체의 탄생과 걸음마 실험을 통해 이족 보행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주목댄스씨어터의 <에즈라스>(연출: 정훈목)는 현실과 가상, 인간과 비인간, 트랜스 휴먼, 젠더리스 등의 다양한 철학적 화두를 몸의 언어로 풀어낸다. 또한, SPAF와 아트코리아랩의 중장기 예술과 기술 협력 프로그램인 ‘사운드&테크놀로지 창작랩’을 통해 박다희, 안상욱, 조은희 세 명의 예술가의 공연과 전시도 공개된다.
정훈목 안무가는 “트랜스휴머니즘, 인간애, 탈경계, 젠더리스 등에 관한 담론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며 “정치적, 종교적 색깔을 배제하고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밝혔다
고전을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선보이는 작품으로는 아비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티아고 호드리게즈의 <바이 하트>(연출: 티아고 호드리게즈)를 주목할 만하다. 무대에 10명의 관객을 초대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함께 낭독하며,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연극의 힘을 관객들에게 전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성북동 비둘기의 <걸리버스>(연출: 김현탁) 역시 고전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재해석하여 우리 사회를 비추는 비극적 자화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지젤 비엔의 <사람들>(안무: 지젤 비엔)은 15명의 무용수가 각각 다른 심리 상태, 감정, 배경을 가지고 인간의 욕망과 사랑을 향한 복잡한 감정을 몸의 철학으로 풀어낸다. 몸의 철학으로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의적인 시선을 만날 수 있다. 호주의 대표적인 안무가 스테파니 레이크와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의 무용수들이 협력 제작한 <콜로서스>(안무: 스테파니 레이크)는 수십 명의 무용수가 하나의 파도처럼 격동하며 선보이는 흥미진진하고 강렬한 무대를 선보인다. 특히, 이 작품은 팬데믹과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 SPAF가 진행해 온 ‘넥스트 모빌리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안무가의 안무만이 이동하여 현지 예술가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한편, 이날 현장에서는 SPAF 프로그램이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다루는 것은 좋으나 작품이 어려워 대중적인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석규 예술감독은 “국내에 다양한 공연예술 축제가 있고 저마다 성격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그 중 SPAF의 재미는 동시대의 담론과 새로운 미학들을 실험적으로 다루고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한국 공연 생태계를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라며 “다만, 아무리 실험적인 작품이라 해도 새로운 경향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접근성도 신경써야 함을 인정한다. 내년에는 이런 부분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오는 10월 3일부터 27일까지 펼쳐지는 ‘2024 SPAF’의 프로그램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티켓 예매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인터파크 티켓, 대학로극장 쿼드,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