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순수한 예술 진흥을 위해서 하는 일이고, 나눠먹기 식의 지원을 하지 않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완벽한 서비스 부처고 창작자가 최우선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하겠다. 우리의 문화적인 경쟁력이 세계무대에서 이미 상당히 올라와는 있지만 여타의 문화적인 선진국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이제 그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사말은 단호하고 명료했다. 지난 9월 9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해 문체부)는 서울 서대문 소재 모두예술극장에서 2025년 예술분야 중점 정책 및 사업 개편을 위한 열린 세미나를 개최했다. 문체부 장·차관을 비롯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예술 관련 정부 공공기관 및 유관단체 관계자, 문화예술인 등 약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 4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예술현장의 침체된 창작의욕을 일깨우고 순수예술이 새롭게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예술지원체계의 개선 방향
신은향 예술정책관이 소개한 2025년도 예산 편성 및 지원체계 개편안은 민·관 모두에게 유익했다. 개편안의 주요 핵심은 ▲작품 창작과 유통 관련 중앙과 지방 간의 연계 체계 마련 ▲예술단체 및 작가 육성시스템 혁신 지원 ▲예술축제 혁신 지원 ▲국립·공공 예술시설 조성 및 특성화 ▲어린이·청소년 지원 강화 ▲민간의 예술분야 투자 확대 ▲예술 지원사업 행정절차 간소화 등으로 모아진다.
무엇보다 예산증액이 반갑다. 2025년 문체부 전체 예산안은 7조 1214억원에 달한다. 문학, 공연, 미술 등 순수예술분야 문체부 예산 정부안은 총 6851억원으로 편성됐다. 전년 대비 571억 원(9.1%)이 증액되었다. 내년도 문체부 예산안이 올해 대비 2.4% 증액된 데 비하면 큰 폭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지역문화 격차해소, 중앙-지방 간 연계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술지원 정책의 기조변화라 할 수 있다. 작품창작 유통 관련 중앙정부와 지방 간 역할 재정립을 통해 분절적인 지원체계를 재정비하고 중복 지원문제를 손보겠다는 방침이다. 즉 지자체와 지역문화재단은 1차 창작지원에 집중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와 중앙지원기관은 2차 후속지원을 맡는다. 레퍼토리지원, 예술단체와 축제 등 대규모 프로젝트지원, 해외진출지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중앙-지방 간 상호 연계 체계의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해서 예술 생태계의 건강한 조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이다.
내년 신규 편성된 지역예술도약지원(48억원)도 희소식에 속한다. 지역에서 제작된 우수작품이 전국에서 활발히 유통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속 성장 지원체계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한편 문예위는 간접지원이나 비평 및 담론지원 등 지자체와는 차별화된 지원정책으로 기관의 특성을 살린다.
국내외 예술유통 지원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을 통해 추진되며 문학· 공연·미술전시 등 순수예술의 가치 확산에 방점이 있다. 문학지역유통(52억), 문학비평 및 해외진출 지원(103억), 공연예술 지역유통(340억), 뮤지컬시장 활성화(31억), 우수전시 지역문예회관 등 순회지원(46억), 한국미술 비평 및 해외 진출지원(63.5억) 등 다채로운 사업을 펼쳐 문화강국으로의 재도약을 꿈꾼다.
지역문화 격차해소 정책에 긍정적 신호탄이 되고 있는 지역대표예술단체 육성사업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올해 90억 원에서 내년에는 120억으로, 30억원이 증액된다. 올해는 공공예술단체가 부재한 장르만 신청이 가능했는데, 내년에는 기존 공립예술단체가 있는 장르도 신청이 가능하도록 열어뒀다.
특히 맞춤형 성장시스템을 도입하여 기존 창작비 지원 외에 평론단 운영, 경영지원, 통합홍보 등 지원내용을 다각화한 것도 시사적이다. 하반기 조기공모를 통해 연내에 선정단체를 발표하여 지방비 매칭의 수월성을 유도한다는 방침으로 능동적 발상의 결과로 해석된다. 지역대표예술단체 육성을 통해 기존 국립예술단체 간 또는 시·구립예술단 등 상호 경쟁체제를 유도하여 혁신의 동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순수예술 작가육성 체계화
예술정책 기조변화의 방점은 바로 순수예술 지원에 있다. 서울 이외 지역 소재 공연장을 대상으로 한 공연예술 지역유통 지원사업의 경우, 2025년 연중 순수예술 공연을 하는 지역 소재 공공 공연장을 선정하여 사업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관심을 모은다. 지역 공연장이 지역민의 예술적 향유의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공연단체와 협의하여 매칭해 주는 정책이다.
서울 집중의 공연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전국 어디서든 다양한 장르의 고품격 순수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인구 감소지역 공연장의 경우, 가산점을 부여하여 지역균형 발전을 견인한다. 순수예술 창작활성화 및 문화예술 지역균형발전 견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깃들어 있다.
예술단체와 작가육성시스템 혁신 지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립청년예술단체 4~5개의 신설예산으로 60억 원을 신규 편성한다. 청년예술가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은 국립예술단체 청년교육단원 제도 역시 대폭 확대된다. 올해 350명에서 내년에는 600명으로 확대하고, 예산도 53억을 증액하여 총 132억으로 편성된다.
한편, 미술·문학분야는 작가육성 체계화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비전속 신진작가의 미술시장 진입을 위한 홍보·마케팅지원(7.5억), 전속작가제 지원(41.5억), 우수전속작가제지원(5억) 등 단계별 시스템화된 지원체계를 마련한다. 문학의 경우는 도서관, 서점, 지역문학관 등 문학기반시설 중심의 상주작가 연계지원으로 23.7억원을 편성해 놓고 있다.
축제를 통한 순수예술 지원체계
공연예술축제를 통한 지원체계도 대폭 개선된다. 전국단위 축제는 기존 서울아트마켓과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연계하여 ‘대한민국은 공연 중’으로 스케일업하여 아시아 최대 마켓형 공연예술축제(20억, 15억 증액)로 키운다. 전통악가무 형식의 국제전통음악극축제(11.5억) 예산도 신규 편성된다.
예술장르별 대표축제 중심 시장거점화, 국제컨퍼런스 등에 20억 원이 할당된 점도 특이사항이다. 공연장 단위 특성화 축제(33억)로 기획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주제별 축제 예산 편성도 주목된다. 가령, 실험극축제, 소극장 오페라축제, 창작무용축제 등이 해당된다. 현장의 침체된 창작의욕을 북돋우는 정책으로 순수예술 창작 활성화를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술축제를 통한 시장 육성도 긴요한 정책이다. 9월에 열리는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 주요 미술행사를 연계하여 이른바 미술여행을 활성화하고, 작가-기업 결연 확대, 한국 미술 트렌드와 작가를 소개하는 실험적이고 비영리적인 전시, 해외 미술계 인사 초청 프로모션 등 대한민국미술축제(8.3억, 1.9억 증액)를 규모있게 키우고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한편, 문학도 축제로 묶는다. 문학행사 연계를 통한 축제화를 모색한다. 기존의 문학주간과 서울국제작가축제, 세계한국작가대회, 독서대전 등 다양한 문학행사를 연계하여 한국 문학을 집중 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청년예술지원_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
어린이와 청소년은 미래 세대의 주역으로 정책적 세심함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발표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지원 강화도 눈에 띄는 대목이라 하겠다.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창설로 29억원이 신규 편성됐음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구 학전극장 재개관으로 탄생한 아르코꿈밭극장 운영(10억), 중앙-지방 매칭으로 이루어지는 국립어린이아트콤플렉스 조성사업(257억, 신규)은 어린이를 위한 양질의 콘텐츠 생산지원으로 유의미한 정책이라 평가된다.
아울러 청년세대를 위한 기회 확대 지원정책도 긍정적이다. 예컨대 청년예술인 예술활동 적립계좌 신설(36억, 신규)은 복지 친화적 발상으로 관심을 모은다. 청년예술인들의 자립과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청년들의 예술시장으로의 안정적 진입을 돕고 예술활동 기반을 탄탄히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복지정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국립청년예술단체 4~5개의 신설예산으로 60억원을 신규 편성한 것은 실로 획기적이다. 청년예술가 일자리 창출의 측면에서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은 국립예술단체 청년교육단원 제도 역시 대폭 확대된다. 올해 350명에서 내년에는 600명으로 늘리고 예산도 53억원을 증액하여 총 132억으로 편성된다. 무대에서 펼쳐질 국공립예술단체 단원들의 세대 간 치열한 실력 경쟁이 벌써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글로벌 이슈, K-컬쳐 집중지원
글로벌 이슈에 따른 한국예술의 해외진출 지원도 주목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을 통한 사업 중 ‘코리아시즌’에서는 매년 전략적 대상국가를 선정하여 한국문화행사를 집중 지원하고 대표브랜드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재외한국문화원을 거점으로 2곳 이상 순회 형태의 국공립 및 민간문화예술프로그램 지원인 투어링 K-아츠사업(80억), 해외 우수 플랫폼으로 민간국제교류지원사업(12억)이 신규 편성된다. 재외문화원 미소재지를 대상으로 세종학당을 통한 한국문화홍보 지원의 일환인 어울림한국문화축제(30억 신규) 등을 통해 K-컬쳐의 우수성을 지구촌 곳곳에 전파한다. 이는 해외진출 지원에 있어 정책적 소외지역을 줄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예술행정 절차의 간소화
현장예술인들이 반길만한 정책도 눈에 띈다. 바로 예술지원사업 행정절차의 간소화 방침이다. 우선 2025년 공연예술 지역유통사업 지원 정산 간소화부터 실행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공연장’ 지원은 보조금 교부형식으로 하되, 공연장-공연단체 지원은 용역계약 방식을 도입한다. 공연단체의 정산 및 증빙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이다.
또한 예술지원 매칭펀드 지원단체 정산 간소화도 검토 단계에 있다. 합리적 예산지원을 위한 공연예술 분야 용역 단가 도입을 위한 연구, 미술창작 대가 기준 개선 및 공공디자인 용역 대가 기준 개선을 위한 합리적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예술인 및 예술단체들이 과도한 행정 절차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막고 본연의 창작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의도다. 현장 예술인들의 여론수렴 결과를 반영한 적극 정책이라는 점에서 더없이 반갑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