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2023년)가 큰 화제였다. 올해는 레퍼토리가 업그레이드되었고, 지역간의 긍정적인 경쟁이 확연하다. 초창기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교향악축제의 열기 이상이 감지된다.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를 찾는 청중의 다변화가 일단 가시적 성과다. (10. 15 ~ 10. 26) 올해 참가한 10개 단체 중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은 얼마 전에 창단 연주회를 한 신생단체다. 국악관현악축제엔 특별공연(10. 16) 형태로 참여했는데, 기성 단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큰 이변을 낳았다.
평택이 만들어낸 국악관현악의 질감과 양감
첫곡 <푸살> (박범훈 작곡)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1995년에 창단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다시 새롭게 만나는 기분이다. 평택시립국악관현악은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악단임에도 어떻게 이런 사운드가 가능할까. 20세기 국악관현악이 성취한 것을 현명하게 이어받고 있었다. 지휘자의 역량과 선곡의 중요함을 확인한다. 1990년대 당시 국립국악관현악도 좋았지만, 뭔가 우쭐거리듯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건 사실이다.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은 아니었다. 당시 ‘국립’을 승계한 건 맞는데, ‘평택’의 사운드는 훨씬 넉넉하다.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21세기의 ‘평택’이 국악관현악의 질감이나 양감에서 모두 앞섰단 얘기다. 황호준이 작곡한 노래가락 주제에 의한 국악관현악 <영혼의 집>(2024)이 꽤 좋았다. 20세기 작곡가에 박범훈이 있다면, 21세기 작곡가엔 황호준이 있다는 말도 가능하겠다.
지기적 박범훈, 지피적 황호준
박범훈이 지기(知己)의 음악을 지향한다면, 황호준의 음악은 지피(知彼)의 음악이다. 박범훈은 나로서 출발해서 내 지역을 부각한다. ‘평택’의 연주에선 특히 평택이 낳은 지영희(1909~1980)의 토속적 자양분을 잘 살려냈다.
지난 20세기 박범훈이 신명을 내세운 선구자적 태도로 국악관현악을 이끌었다면, 21세기 황호준에게는 영혼을 중시한 구도자적 태도가 전달된다. ’노래가락‘은 경기지방의 대표적인 노래다. 가사는 바뀌나 곡조는 일정한 민요를 가져와서 어떻게 이렇듯 입체적인 서사를 느끼게 할까. 노래가락 원 멜로디는 소박한 냇물(영감)처럼 시작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장강(長江)이 된다. 국악관현악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마치 거대한 바다로 향하는 양감이 전달되었다.
박범훈의 서사가 역사학적이고 민중적이었다면, 황호준의 서사는 인류학적이며 소시민적이다. 두 사람의 음악에 공통점도 있다. 일본의 음악학자 고이즈미 후미오(1927~1983)는 한국음악의 특성을 기마민족에 비유했다. 말을 타고 다니면서 느끼는 리듬이 역동성이 잇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박범훈과 황호준에겐 공히 이러한 거대한 스케일의 기마민족의 율동감이 살아있는데, 또 다른 것이 있다.
박범훈 작곡 얼후협주곡 <향(香)>과 같은 작품에는 ’거대한 외침‘이 있다. 그건 존재적 가치를 나타내는 웅변에 가깝다. 황호준은 완전 다르다. <영혼의 집>의 후반부는 그간 국악관현악과 다른 길이 보였다. 나는 이를 ’사유적 침묵‘이자, ’소멸의 미학‘이라 이름하겠다.
지휘자 김재영은 어떠한가. 대개의 지휘자에게 허세(虛勢)의 징후가 본다. 국악관현악의 경우가 더 심하다. 국악지휘자가 어떨 땐 오버 액팅으로 시선을 집중하게 하거, 이런 허세가 매력으로 먹히고 있다. 김재영에겐 그런 게 하나도 없다. 이토록 과장과 과욕의 징후가 발견하지 않는 지휘자를 본 게 참 오랜만이다. 어쩌면 처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강 해금 파트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의 미덕은 많았다. 딱 하나만 말하면 해금 파트. 세종문화회관이 1978년 개관한 이후 지금까지, M시어터에서 많은 해금을 들었다.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의 해금 파트가 대한민국 최고다! 해금이 이러하니 아쟁이 안정적으로 달라붙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피리가 좋았었다. 피리의 거침과 해금의 찰짐이 이렇게 상생할 수 있구나! ’평택‘을 통해 확인하는 국악관현악의 가능성이다.
특별공연의 마지막순서는 피리협주곡 <창부타령> (원곡 지영희, 편곡 박범훈). 거기서 박범훈을 통해서, 지영희를 보았다. 평택 출신 지영희는 우리나라 최초 직업국악관현악단인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탄생의 주역이다. 우리나라 국악관현악단은 내년이면 꼭 60주년이다. 60년전 그토록 원했던 ’지영희의 꿈‘이 이제 ’평택의 꿈‘이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의 가슴 벅찬 미래가 지금 ‘평택’을 중심으로 점차 현실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