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와 소쩍새 (2)
<귀촉도>와 소쩍새 (2)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0.03.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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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악마주의자에 대한 찬양

신이나 삼아 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이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귀촉도> 제3연)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에 나타나는 이 새는 이처럼 다 같이 8.15 직후에 서정주의 시에서 동시 등장한 것이며 그것은 비극적인 것이다.

그런데 <귀촉도>에서는 전사자들의 죽음이 유족에게 얼마나 큰 슬픔을 주는 것인지를 나타낸 것인데 반하여 <국화 옆에서>에서는 그런 죽음들이 원료가 되어줌으로써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이 태어날 수 있는지를 말하며 그 살인행위를 정당화하고 살인자를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우리 민족의 생명과 자국 국민들을 희생시킴으로써 홀로 살아남은 '천황폐하'를 위대한 인간의 새로운 탄생이라고 추켜세우며 그 살인행위를 정당화 하고 살인자를 미하하고 있는 것이 <국화 옆에서>다. 이것은 아마도 일본인들이 봐도 크게 당황할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이라도 자국의 왕을 그렇게 악마로 만들어 가며 추켜세우지는 않으니까.

소쩍새가 다른 곳에서 쓰인 사례를 보자.소녀를 이리 말고 능지처참하여 박살하여 죽여주면 죽은 뒤에 원조怨鳥라는 새가 되어 초혼도 함께 울어 적막공산 달 밝은 밤에 우리 이 도령님 잠든 후 파몽이나 하여 지이다. …<춘향전>

내 님을 그리자와 우니다니 산 접동새난 이슷하요이다. ….<정과정곡 鄭瓜亭曲>

두견이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 김영랑 <5월의 아침>

접동새, 우는 접동새야/ 네 우지 말아라/ 무슨 원한이 그다지 골수에/ 사무치길 레/ 밤중만, 빈 달에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느니 …신석초 <바라춤>

춘향전에 나오는 원조怨鳥는 소쩍새를 말하는 것 같다. 억울하게 왕위를 빼앗긴 촉나라 망제가 죽어서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우는 원조가 되었다는 전설의 새는 소쩍새다. 그러므로 춘향전이나 이 전설에 나타나는 소쩍새의 울음과 그 밖의 예문에 나타나는 것은 대개 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울음이다. 그리고 '피나게 운다.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운다. 피어린 울음' 등 모두 피가 빠지지 않고 있다.

<정과정곡>은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접동새(소쩍새)의 울음에 비유했기 때문에 원귀의 울음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전설이나 시에 나오는 소쩍새의 울음에는 원망의 뜻이 있고 그것은 죽은 자의 울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서정주의 <귀촉도>에 나오는 이미지와 일치한다.

소쩍새가 밤새도록 울다 가버린 나무 밑에 가보면 핏자국이 있다고 한다. 이것도 소쩍새가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운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물론 그 핏자국은 소쩍새가 밤에 잡아먹은 들쥐 같은 짐승의 피겠지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나보다'는 이렇게 보편적으로 쓰이는 의미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면 봄부터 그처럼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과 한이 맺힌 울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정주의 한 송이 국화꽃은 그 죽은 자의 슬픔과 원망과 피를 먹고 피어난 꽃이며 이것은 잔혹한 악마주의자에 대한 찬양이다.

다만 이 꽃이 일본왕을 의미하더라도 서정주의 이 같은 비굴하고 추악한 아부가 실제 일본왕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될 수는 없다. 일본왕이 침략전쟁으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더라도 그 결과 더 위대해지고 더 아름다워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신의 지위에서 인간의 자리로 내려앉도록 조치되었기 때문이다.

제2연

ㄱ. 천둥 먹구름과 전쟁 실황

제2연도 한 송이 국화꽃이 물이나 잘 줘서 쉽게 평범하게 핀 것이 아님을 말한다. 먹구름 속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많이 났기 때문에 피었다는 것이니까 김현승의 해석대로 탄생 과정의 신비함이 나타나고 있으며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힘들게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런 신비성이나 힘든 과정 때문에 그 생명이 존엄하다는 주장은 전연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생명은 태어난 과정과 상관없이 똥물에서 태어난 구더기라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이 참된 생명 사상이다.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