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꽃샘추위
  • 임길순(수필가)
  • 승인 2010.03.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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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를 가는 것은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

 꽃샘추위의 인심이 야박하다. 여며 입은 옷에 숭숭 구멍이라도 난 것인지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이 마음마저 웅숭그리게 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지인한테 문자를 보냈다.

“꽃샘추위가 심란해요.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답장이 왔다. “봄은 꽃샘추위가 있어서 아름다운 거랍니다. 꽃들도 견디니 저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답장을 보는 순간 평소 남의 탓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에게 꽃이 만개하는 그 정점처럼 화사한 봄바람이 나를 간질였고 차가운 바람은 그 문자의 답장 속에 줄행랑을 쳤다.

 이럴 때면 나는 말의 마력, 생각 뒤집기의 마술에 빠진다. 네 탓이 아닌 내 탓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꽃샘추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도 만날 수 있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피는 꽃만이 시들어 떨어질 때 꽃잎으로 지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꽃샘추위를 견디려면 비와 바람 속에서 춤을 추어야 하고, 짧은 햇살 속에서 노닐 줄 알다가 저녁이 되면 미지의 세계로 숨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요즘 생화와 꼭 같은 조화들이 우리를 눈속임한다. 하지만, 조화는 생기가 없어서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고 소멸의 미가 없어서 금세 싫증이 난다. 아쉬움이 없다. 아쉬움이 없다면 기다림의 아름다움은 나의 편이 아니다.

 나의 삶도 꽃샘추위를 견디는 꽃과 같다. 알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나 알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 다음 해 봄이 되면 올해 우리를 아쉽게 했던 꽃은 다시 필 것이다. 그 봄을 위해 겨울을 잘 견디도록 나무에 옷을 입히고 추위에 약한 뿌리들은 캐서 집안으로 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꽃이 피듯이 우리도 미지로 갔다가 다시 올 것이다. 그 미지라는 화두에 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모르지만, 본질은 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탓에서 내 탓으로 생각 뒤집기를 할 수가 있는 것이나, 미지를 가는 것은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석가모니는 말했다. 길을 가는데 나뭇가지가 부러져 석가의 머리를 다치게 했다면 그 나뭇가지는 석가를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자연스런 사고일 뿐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화를 낸다면 그건 나뭇가지 같은 경우이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그는 단지 그의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다. 안타깝긴 하지만 나무의 잔가지처럼 흔들리다가 스스로 부러지고 마는 것이 그의 본성이다. 그가 화를 낼 때 꽃샘추위가 있어서 봄이 아름답다는 지인의 말처럼 내가 흔들리지 않는 본성을 가졌다면 나는 내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고 나를 방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꽃샘추위마저도.

임길순
동국대학교불교대학원 선학과 졸업.
<법보신문> 기자역임.
현재 월간 《에세이플러스》 편집부장.

에세이플러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