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균의 배우열전 ①
김은균의 배우열전 ①
  • 김은균 연극평론가
  • 승인 2010.03.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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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노래하는 방랑자, 장두이

  배우 장두이는 매우 부지런하다. 그리고 학구적이며 꾸준하다. 작년가을,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등대>이후 겨울에는 <사랑을 주세요> 그리고 지난달에는 교육문화회관에서 <영웅을 기다리며>등의 작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연극소품전시회’를 인사동에서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연극을 시작한지 40주년이 되는 해라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출연했었던 작품들의 소품들을 모아 중간정리를 하는 의미란다. 그런 왕성한 활동에는 건강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의 나이가 벌써 내년이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라면 의아할 만도 하다.

  그가 주창하는 건강법은 바로 요가인데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항상 6시 경에 일어나서 요가를 한단다. 흔히 요가하면 보통 명상과 비슷한 조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가 하는 요가는 격렬하다. 

  “가만히 생각을 몸에 모두고 발끝으로 서 있다가 발뒤꿈치로 걷고 물구나무를 섰다가 엎드리고 일어서서 몸을 펴고 다시 눕는 동작으로 몸을 움직여주다 보면 땀이 쭉 빠질 정도의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는 씻고 나서 정돈을 하고 책을 봅니다. 보통 아침 식사 전까지 이러한 시간을 반드시 지킵니다. 배우로서도 그렇거니와 건강을 위해서도 더 없이 유익한 투자인 셈이죠”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치 수도승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폴란드의 연출가 그로토프스키는 그의 스승이다.

  그와의 첫 만남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오디션 장에서 대뜸 제게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 불러보라’는 주문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른 노래가 경기민요의 회심가였습니다.

  ‘일-심으로 저엉-념∼아-∼ 억조창생은 다∼만민 시주님네에∼ 시주님네에∼이내에 말쌈을 들어 보오소∼’ 회심가가 불교노래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로토프스키는 다시 한 번만 더  불러 달라고 해요, 그리고 또 다시 계속 반복하면서 노래를 한 거죠. 그리고는 동작을 보여 달라기에 우리 무속 춤인 진쇠춤을 되풀이 했어요.

  오디션장이 O'Court 이라는 호텔이었는데 아침 10시에 만나서 오디션이 끝나고 나니깐 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더라고요. 반복을 하길 한  칠십 번 정도를 했을까?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좀 나빴는데 점점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나중에는 누가 이기나 점점 더 집중을 해서 노래를 불렀어요. ‘일-심으로 저엉-념∼아∼ 억조창생은 다∼만민 시주님네에∼ 시주님네에∼이내에 말쌈을 들어 보오소∼’그리고 나서야 수십 번을 넘기고서야 그로토프스키가 멈추시더니 짤막하게 ‘고맙다’고 해요. 아마도 이런 오디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을 거예요.

  오디션이 끝나고 그로토프스키는 근처의 고급 일식집으로 초대를 해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노래를 계속 부를 때 생명이 있는 법이다. 인간은 지쳐있고 피곤해질 때 가장 순수하고 본래의 모습이 나오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극도로 지쳐 있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이때 비로소 예술은 시작이 되는 것이다’ 라고요”

  하지만 그의 연극은 지극히 한국적인 원형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숙자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소리와 움직임을 체득하게 된 것이었다.
 
  “선생님을 뵈었던 것은 1976년 초였어요. 선생님은 당시 무형문화재 97호 도살푸리 인간문화재셨어요. 어느 일간신문 단신에 실린‘무속무용 공연’안내문을 보고 문예 진흥원 지하 강당을 찾아 갔죠. 저는 그때 고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연극과를 다니던 때인데 무당과 무속이 무엇이 다른지 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무작정 찾아 간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되돌아보면 얼마나 엄청난 순간이었는지! 그날 전 우리 소리와 동작의 정수를 만끽하고 제 일생에 김숙자라는 위대한 스승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죠.

  다음날로 춤을 배우고 싶다고 간절히 청했고 선생은 쾌히 승낙하셨어요. 그로부터 4년간의 무용 수업은 저의 연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춤은 그 민족의 감성과 생활습관 자연 그리고 신체적인 조건에 맞는 독특한 정서를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감았다 풀고, 굽었다 펴고, 멎었다 움직이고, 울다가 웃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쳐나는 정말로 우리의 춤은 세계적인 움직이자 자연과의 합일체(合一體)입니다”

  그가 해외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것이 1994년이었다. 이후 대경대학에 몸담다가 인덕대를 거쳐서 현재는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예전부터 교육현장에서 생각나던 대로 노트하고 모은 자료들을 가지고 틈틈이 정리를 하다가 <장두이의 연기실론>,<장면연기 실습-서양 편>을 펴내었습니다. 시집 몇 권과 희곡집, 그리고 에세이집인 <공연되지 않을 내 인생>을 출간했고요” 

  그가 생각하는 연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연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서 기인하지요.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하였듯이 인간은 절대자에 대한 모방 본능을 타고난 셈이죠. 따라서 훌륭한 배우들은 곧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많은 연기의 방법론이 혼용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들의 연기가 금방 공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연기자의 자세는 깨어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항상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며 몸의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감각)외에 하나를 더해서 저는 그것을 육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영감(靈感,영혼의 감성)을 혼합할 때 비로소 완전한 연기를 표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으로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이 평소에 훈련을 해둬야 하는데요, 그 첫째가 좋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로는 신체적인 부분인데요, 이는 구체적인 것으로서 몸 다스리기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매일 규칙적으로 발성을 비롯한 발음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비롯한 자기만의 몸 훈련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감성훈련으로서 풍부한 그러나 절제된 감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전 연기자를 시인에 비유할 때 가 있는데요, 서정시, 서사시 등 시(詩) 의 리듬과 율격이 몸에도 거침없이 흘러 넘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네 번째는 상상력에 대한 훈련이 필요한데 예술가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그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상이어도 좋습니다.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라!’ 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상상력을 위해선 빼어나고 세밀한 관찰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간접 경험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간 세계 뿐 아니라, 동물과 자연과 우주에도 각별한 관심을 길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좋은 교육 또한 절대 필요합니다”
 
 그와 이야기 하다가 보니 어쩌면 그는 이미 연극배우의 길을 넘어서 사제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균 연극평론가 ahhaa37@hanmail.net

공연현장을 가장 활발히 누비고 있는 평론가이며 <연기론>, <배우론>, <연출가론>, <지역연극사>, <극단사>를 아우르는 동시대의 연극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수석졸업하고 로타리 장학생으로 프랑스의 Tourine Institute를 수료했으며 서울종합예술학교와 한서대 대학원에서 연극이론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