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통닭 다시 먹던 날, 무 소금에 찍어 먹으면 고소해
[리뷰]통닭 다시 먹던 날, 무 소금에 찍어 먹으면 고소해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1.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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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인정하면 사랑할 수 있어, 연극 ‘통닭’

‘백만송이 장미’는 통닭을 다시 먹던 날 피어났다. 연극 ‘통닭’은 차이를 인정하고 용서하면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은행 강도 두엇쯤은 거뜬히 처리할 만큼 씩씩한 29살의 새마을 금고 직원 연수, 늘 버스요금을 ‘삥땅’치는 마을버스 기사인 엄마, 한때 연수 아빠의 불륜녀 이기도 했으며 소싯적 연극을 해 툭하면 ‘정녕’과 같은 문자를 쓰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일쑤인 통닭집 주인 정희 이모. 이들은 연수 아빠가 술과 계집질을 일삼다 25년 전 그들의 곁을 떠나버린 이후 정희 이모가 운영하는 통닭집 ‘진미통닭’에 모여 한결같이 수다를 떨며 하루를 마감해 왔다.

어느 날 연수 엄마는 자신의 버스회사 사장에게 프로포즈를 받게 되고 소심하지만 자상한 사장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연수 엄마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제 2의 핑크 빛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연수 엄마는 자신이 폐경기를 맞은 사실을 알게 되고 우울함에 빠진다. 여자이기엔 너무 ‘터프한 성격’을 가진 연수에게도 말할 때 침 튀기는 것을 빼면 몽땅 맘에 드는 남자 친구 성기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성기는 자신이 즐겨보는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연수에게 권하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소위 ‘떡 치는 비디오’를 좋아하는 연수는 그런 작품들이 재미있을 리 만무하다. 언제나 정희 이모에게 조언을 구해 성기가 준 비디오를 본 것처럼 가장하던 연수의 거짓은 성기와 '찐한' 하룻밤을 보낼 작정을 하던 날 들통 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성기가 전치 3주쯤 나오도록 화끈하게 다툰 뒤 연락을 두절한다.

안 그래도 꿀꿀하던 차에 25년 만에 만신창이가 돼서 돌연 등장한 연수 아빠. 모두들 놀라는 한편 엄마와 정희이모는 ‘도대체 누구를 더 그리워 해 집나간 남편이 돌아 왔나’ 하는 화두로 싸움을 한다. 연수는 그런 두 사람을 어이없이 바라보는 한편 여전히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가 떠나주기를 바란다. 연수 아빠는 곧 돌아올 연수의 생일에 맞춰 준비했다며 목걸이를 내밀고는 쓸쓸히 돌아선다. 연수가 원수 같은 아버지가 밉지만 애증이 담긴 돈 봉투를 내미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편 연수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버스회사 사장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자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연수 엄마는 서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을 붙잡아 주길 바랐던 버스회사 사장의 동의에 실망을 한다.

연수의 생일, 여느 때와 같이 세 여자는 정희 이모의 통닭집에 모여 생일 파티를 즐기고 있다. 이때 찾아온 버스회사 사장과 성기. 처음에는 연수도 연수 엄마도 이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정희 이모에게 귀띔을 얻어 연수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심수봉의 노래 ‘사랑밖엔 난 몰라’를 열심히 연습한 사장이 듣기 민망한 노래솜씨로 연수엄마를 위해 노래하자 분위기가 와해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이들은 다시 통닭을 먹는 장면을 연출하며 화해에 이른다.

말 할 때마다 침을 튀기는 ‘성기’의 파편이 관객석으로 직접 날아올 때 마다 앞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몸을 피해야 했다. 봉과 운전대로 버스가 진짜 움직이는 것 같이 연출한 정희 이모와 연수 엄마의 화해 장면도 단연 압권이었다. 버스 속에서 연수 엄마가 운전하는 대로 정희 이모가 봉을 잡고 움직이는 광경 때문에 관객들은 배꼽을 쥐었다.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 1.3~1.18)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