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아직 안심 일러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아직 안심 일러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1.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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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오락가락 번복...다른 입장들 난무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옛 기무사 부지의 활용 방안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조성’을 계획한다고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서 밝혔다.

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은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도 마냥 기뻐할 수도,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지난 10여년 간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의 입장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수시로 번복됐기 때문이다.

▲ 시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을 희망하는 소격동 옛 기무사 부지에 있는 현재 세워져 있는 기무사 건물 전경

따라서 이번 계획도 재경부, 국방부 등 관계기관들과의 협의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비공식석상에서의 발표는 불확실한 사항이라 신뢰하기 힘들다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까지는 그간 국립현대미술관 부지로 추진해온 미술계와 관련 단체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정준모(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미술평론가)씨는 “문화부가 입장을 바꿔 검토해보겠다는 내용이지 미술관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기무사에 미술관이 확정되는 그 날까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95년 기무사 이전 문제가 제기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은 청원서를 통해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리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지만 기무사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기무사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거의 출발점은 98년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부대 교외 이전 사업의 일환으로 기무사 이전이 확실하게 결정 나고,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문화연대 등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기무사 부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 국방부가 뜬금없이 기무사 현 건물 철거 후 그 자리에 재건축을 하겠다고 발표해 예총·민예총·미협 등 문화예술계의 반대와 기무사 이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나서 재검토해 국립현대미술관을 기무사 부지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부지매입예산만으로도 버겁고 다른 정부 부처와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 '국립현대미술관' 건립 후보지의 하나로 고려 중인 기무사 부지와 주변지
2004년 6월 기무사 이전이 본격 추진되면서 미술인들은 12월 기무사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에 대한 주장을 공론화 하는 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과 한국미술협회, 민족미술인협의회, 미술인회의는 ‘기무사 부지를 활용한 국립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미술계 교수들은 기무사 부지의 입지조건 분석에서부터 활용 계획에  이르기까지 기무사 부지의 미술관 건립을 위한 매우 구체적인 활용방안들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토론이 진행됐다.

세미나 기조발제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도시의 랜드마크는 시민들의 광장,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 기무사 부지는 공공미술관 기능을 발현 가능한 최적의 공간이므로 이곳에 국립현대미술관의 건립은 매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해 논거에 힘을 실었다.

또한 미술계에서는 기무사 터를 미술관으로 만들기 위해 2005년 2월 인사동과 사간동의 50여개 화랑들과 작가 750여 명이 뭉쳐 서울관 건립을 요구하는 전시회를 여는 등 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2005년 3월, 기무사 터를 놓고 추진되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이전작업에 갑자기 서울시가 길을 막고 섰다. 서초구의 정보사 터로 이전하자는 적극적인 유치의사에 서울시가 직접 나서 서초구와 정보사 터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의사를 타진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울시는 재원마련 면에서 기무사 터보다 부담이 적다며 “문화부 및 정부와 협의해 가능하다면 정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유치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 지역주민·서울시민 여론 ‘기무사 부지 미술관’ 우세

서울시의 이 같은 입장발표에 문화예술인들은 그해 6월 기무사 부지 미술관 건립 건축 공모전을 전국적으로 개최하고,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는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해 찬성에 대한 여론의 의견도 모았다.

조사결과 건립을 찬성하는 서울시민이 61.3%, 미술인은 79.3%였으며, 건립될 경우 서울시민 79.1%와 지역주민 80.7%가 방문할 뜻을 밝혔다.

시민들도 ‘국군기무사령부 주둔지를 활용한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을 희망하는 시민들의 모임’(공동위원장 이규일, 김창실, 정근희)을 결성하고 여론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 이명박 대통령이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인사말과 함께 박물관 건립과 기무사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한 밝히고 있는 모습 
2006년 5월 문화예술계와 관련단체들의 의지와 끊임없는 활동 및 서울시민들의 관심과 능동적인 노력으로 ‘기무사 과천이전 새 부지 착공식’까지 이끌어냈고, 기무사 부지에 미술관 건립이 잠정적으로 확정된 듯 보였다.

2008년 3월 문화부는 새 예술정책 발표하면서 “기무사 터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고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한 문화시설을 건립하는 사업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해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이 거의 확실시된 것이라 보고 문화예술계와 시민들은 안도했다.

◆ 미술관이냐 박물관이야, 종로냐 서초냐...
    엎치락 뒤치락, 언제까지 계속될까?

하지만 부지매입예산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계획은 여전히 기획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었다.
결국 10월에 과천으로 이전하는 기무사 부지를 두고 문화부는 입장을 바꿨다.

정부에서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현대사박물관’의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며 “장소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기무사 부지와 용산 미군기지 부지 등을 후보지로 놓고 기획재정부, 국방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문화부와 입장이 또 달랐다.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밝힌 계획에 의하면 ‘현대사 박물관’ 건립 추진 과 기무사 터에 대해 문화재청의 경복궁 복원 사업과 연계한 지원시설과 주변 여건에 적합한 ‘복합문화관광 시설 겸 주차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나온 것이다.

그곳에 미술관을 세우자는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오랜 염원은 이렇듯 ‘쇠귀에 경 읽기’가 돼 버린 것이었다.

▲ 문화예술인이 중심이 돼 결성된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분노한 박서보, 하종현 등 유명화가 및 조각가들과 오광수, 정준모 미술 평론가, 이현숙, 노재순, 서성록 등 미술계와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대표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결성했다.

이들은 정부가 밝힌 기무사 부지 활용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기무사 부지에 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요구를 조직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모임의 정준모(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미술평론가)씨는 “서울에 변변한 미술관 하나 없는 현실을 모면케 해달라는 열정이 기무사 이전을 가능케 했는데 이제와 박물관이다, 주차장이다... 그동안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된다”며 의견을 개진했다.

한편 전주이씨 종친회에서는 뒤늦게 기무사 터가 조선시대 종친부가 있던 자리라는 점을 내세워 서울시를 통해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문화부는 “기무사 터를 매입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을 만들기로 안을 확정해 서울시, 기획재정부와의 예산 및 실무 협의만 남아있다”며 계획을 수정하는 듯 하더니, 12월 말 다시 기무사 부지 매입 비용으로 200억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으나 부지 용도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 용호성 과장은 “지금으로써는 아무 것도 결정된 바도 없고 언제 결정이 날지도 미지수다. 예산처 등 다양한 관련부처와 애기해봐야 한다. 미술계에서는 미술관 건립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 중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복합문화관광 시설 안건은 현대사 박물관 계획과 같이 청와대에서 나온 것”이라며 “어쨌든 예술계의 수요 등 종합적인 입장에서 가장 최고의 방안을 선택 할 것”이라고 문화부의 입장을 밝혔다.

용 과장의 이 같은 말은 기무사 터 활용문제가 결국 지난 해 8월의 상황으로 되돌아 간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미술관 건립을 염원하는 시민들이나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겐 씁쓸함만 줄 뿐이었다.

다행히 이명박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최근 신년 인사회에서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을 기무사 터에 짓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 그나마 희망을 주는 상황이다.

이처럼 수 년 동안 문화예술계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기무사 부지의 활용 방안을 두고 정부, 청와대, 서울시와 관계 부처들의 입장이 번복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관계기간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적어도 청와대와 정부, 서울시 등 관계부처간 입장만큼은 일관된 철학에 바탕한 ‘통일성’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바램이다.

따라서 기무사 터의 미술관 활용을 위해 기왕에 노력을 기울여 온 문화예술계 입장은 미술관 건립이 확정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