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의 역사, 근현대디자인박물관
한국 디자인의 역사, 근현대디자인박물관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3.2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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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려한 추억 속 디자인에 녹아든 근현대사의 애환

‘디자인’이라하면 어렵고 전문적인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다. 하지만 슬림한 모니터, 아름다운 화장품 케이스, 멋있는 시계, 눈에 확 띄는 책 표지, 입고 있는 옷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디자인에 발을 담그고 있다.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스며있는 디자인의 발전은 우리 삶을 좀 더 편하게 해줌과 동시에 보는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은 이러한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자 앞으로 한국 디자인역사에 새 장을 열 중요한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국 못지않은 우리의 디자인 역사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이하 디자인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디자인박물관으로서 국내에서 제작된 디자인 사료들이 대거 소장되어 있다.

박암종 교수(선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가 2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모은 수 만점의 디자인 관련 사료 중에서도 특별히 엄선한 사료들을 모아 ‘밤하늘에 빛나는 7개의 별-북두칠성’이라는 컨셉으로 진귀하고 다양한 디자인 전시품을 진열하고 있다.

디자인 전공자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우리 디자인의 역사는 외면한 채 서양 디자인의 역사만 배우고 있다. 또한 많은 이들은 우리나라의 디자인이란 개념이 정착되고 일반화된 시기를 보통 1950년대로 보는 경향이 많다. 당시 소위 말하는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 디자인박물관이 탄생하게 됐다.

원래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싹트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미술이나 공예와 달리 ‘대량생산’ 이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기능적이면서도 저렴하고 단순 명쾌해 많은 이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대량생산체제하에 만들어진 것이 디자인의 속성에 가장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세기 후반으로 잡고 있는 개화기로부터 더듬어보면 우리나라의 디자인의 역사도 서구와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당시 최고의 디자인을 자랑했던 가전제품들
▲박물관 내부 전시관에 진열된 디자인 사료들

 

 

 

 

 

 

디자인을 환히 비추는 일곱 별을 품다

디자인박물관은 이름에 걸맞게 외관에서 부터 남다르다. 나무장식으로 된 세련되고 멋스러운 모양새는 오히려 갤러리에 가까워 보이며, 마치 목조건물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마저 남다르다. 단순히 문을 통해 들어가 표를 끊고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일반적인 생각의 틀을 과감히 깼다. 1층에 자리 잡은 아늑한 분위기의 뮤지엄까페가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매표소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은 크게 2층과 3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2층에는 개화기 때부터 해방이전의 작품들을(1~2관), 3층에는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3~7관)을 전시하고 있다.

1관은 ‘세계 근대 문화의 유입과 디자인 개념의 태동‘이라는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황실 가족사진,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과 태극기 등 1876~1910년도까지의 물품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슬라이드 유리 원판은 슬라이드에 물감을 묻혀 채색되어 칼라화했으며, 청일전쟁에 대한 한국 관련 내용이 담겨져 있다.

2관은 ‘우리 문화 발전의 정체와 국내 기업의 모태 창립’이라는 제목아래 1910년~ 1945년까지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생들의 사진과 종이화투, 테라코타 인형, 권농포스터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참신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키스(Elizabeth keith)가 만든 달력이 눈길을 끈다.

3관은 1945~1961년까지의 작품들로 ‘디자인 유용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발아 및 확대’라는 주제를 선보인다. 이 기간은 디자인을 어떻게 유용하게 이용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가 잡힌 시기로 여러 포스터들을 통해 슬로건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준다. 더불어 후대에게 과학적인 한글서체 연구의 틀을 제공한 공병우타자기도 볼 수 있다.

▲시인 이상이 편집·디자인·장정을 맡은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
4관은 1961~1976년 사이의 자료들로 꾸며져 있다. ‘경제발전 및 수출동반자로서의 디자인 역할 수행’이라는 테마에 맞게 국내 최초의 각종 전자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박암종 관장이 아끼는 수집품 중 하나인 ‘A-501' 라디오가 있다. 예전 금성사에서 생산한 국내 최초의 라디오이며, 우리나라 가전산업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수집 당시 가격도 상당하다고 했다. 이외에 우리나라 최초의 캐릭터 인 ‘아이미’ 인형과 디자인적인 글씨체를 선보인 삼양라면 등이 자리하고 있다.

1976~1988년도의 작품으로 이뤄진 5관은 ‘디자인의 체계화와 국제 스포츠 행사를 통한 발전 도모’라는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 88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와 관련한 기념품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교해진 다양한 장난감, 실용성을 생각한 크라운맥주와 OB맥주병 등도 확인해 볼 수 있다.

1988년~1999년을 다룬 6관은 ‘한국형 디자인의 정착 및 국제화, 세계화의 기반 구축’의 컨셉에 걸맞게 디자인이 세련되어짐과 동시에 상표에서 외국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가수 서태지의 음반 포스터와 초기 컴퓨터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모델의 페이저(삐삐)와 초창기 모토로라 및 삼성전자의 핸드폰 등이 추억을 자극한다.

마지막 7관은 ‘시계 디자인 대회 개최를 통한 한국 디자인의 위상 고조’ 라는 제목아래 2000년도 이후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신문 디자인과 LCD TV 등을 포함해 2002년 한일월드컵에 관한 사료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화려한 색감과 실용성, 아름다움을 동시에 고려한 지금 우리시대의 디자인들이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은 우리나라 디자인의 역사가 외국에 결코 뒤지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외국인들에 자랑스럽게 보여 줄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에게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일반인들에게는 옛 것의 향수 속에서 신선한 자극이 되어 우리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디자인의 꽃을 피우다

디자인박물관은 역사가 오래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음에도 훼손된 것 하나 없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박암종 관장(만 53세, 現 선문대학교 시각디자인 학과 교수)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사회가치가 높거나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그 상태를 꼼꼼히 살펴 좋은 것들만 모은다는 그는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의 중요한 디자인 사료들을 가지고 있다.

“인사동 고미술점은 물론,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부터 방방곡곡의 수집자들로부터 구입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수 만점의 사료들을 다시 엄선해서 전시해놓은 것들입니다.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전 분야의 것들을 모으다보니 남들보다 더 힘들긴 했죠”

그는 우리나라의 디자인을 엿볼 수 있는 상품들이 여러 나라에 많이 퍼져있다고 했다.

“디자인이라고 해서 도자기나 고미술품이 아니에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유명 관광지로 외국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 혹은 외국 선교사들이 그들이지요. 그들에게 제작해서 판매했던 기념품들도 많이 모았습니다”

이토록 수많은 컬렉션 중에 박 관장이 가장 아끼는 것은 ‘한중일 상표자료집’ 이라는 5권의 스크랩북이다. 역사적 가치로도 매우 중요한 이 스크랩북은 그가 디자인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몇 천개 이상의 상표들이 모아져있어요. 1920년대 후반쯤에 큰 규모의 인쇄소에 근무하는 사람이 그곳에서 생산된 상표들을 전부 스크랩해놓은 것이지요. 그 때문에 개화기 때와 1950년대 사이의 디자인을 유추할 수 있는 매우 귀한 중간적 자료입니다”

조만간 박물관 개관 2주년 기념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는 그는 단순한 진열이 아닌 그만의 장기를 살린 기획을 계획하고 있다.

“재미있는 엽서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 나타난 디자인 에피소드와 관련한 전시를 생각중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료 전시회가 아닌, 소장품에 다시금 디자인을 해서 개인전 형태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박암종 관장은 서울시의 후원을 받아 이뤄지는 특별 기획전 ‘코리아 브랜드 역사전’을 5월에 준비하고 있으며, 이후에는 키치(kitsch)적이기에 더욱 호감을 갖게 되는 ‘이발소 그림전’도 하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 만족보다 중요한 가치 전파에 힘쓸 터

그는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이룬 가장 큰 성과를 박물관 개관 자체에 두고 있었다.

“디자인박물관을 개관할 때 기대이상의 호평을 받으면서 상당한 관심들을 가져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기도 했고요. 이는 저에게 가장 큰 성과이자 보람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기쁨이자 숙제’로 남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소중한 물품들을 총망라한 자료집을 아직까지 만들지 못해 아쉽다”는 것이다. 개관이나 특별전 당시에 같이 나와야하지만 그만의 완벽추구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플렛은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제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료들을 카테고리별로 나눠 단행본 형식의 도록으로 만들고 싶어요. 국가적 문화역량을 발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료로도 쓰일 것이고,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확인하고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인 셈이죠. 조만간 꼭 만들어 낼 것입니다” 

책을 만들었으면 여러 권 만들었겠지만 너무나 완벽을 추구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상황이 되었다며 웃음 짓던 그는 문화공간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규모와 공간에 관계없이 나름대로 특색을 가진 문화공간에 대한 관심을 일반 시민들도 기울여야 해요. 물론 박물관 자체도 하나의 문화명소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힘닿는 데까지 지원을 넓혀주는 게 필요합니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재정적문제만 해결된다면 제각각의 특색을 살려 좋은 전시와 기획들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박물관이 하나의 문화명소로 자리 잡아 발전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