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숙제를 남기고 떠난 법정스님
큰 숙제를 남기고 떠난 법정스님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3.28 0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서 절판을 통한 무소유는 가능할 것인가

지난 11일 우리는 또 한분의 어른을 잃었다. 법정스님이 입적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된 유언이 3월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법정스님의 저작물 절판이 확정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정스님이 이끌던 재단 ‘맑고 향기롭게’ 는 당황했으며, 출판계는 난감해했다. 사람들의 추모열기와 맞물린 절판 소식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단숨에 갈아치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책을 구하기위해서라면 원가의 몇 십 배에 달하는 가격도 순순히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기현상에 대해 되짚어보면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내 모든 글과 말을 쓸어 담아 달라”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롭게'에 줘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

▲지난 17일 유언 집행인 김근씨가 법정스님이 남긴 두가지 유언을 공개하고 있다

법정스님이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한 지 6일째 되는 날인 17일 오후, 법정스님의 유언 집행인인 김금선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법정스님의 유산에 대한 유언과 상좌들에게 보내는 유언의 내용을 공개했다. 그동안 출판계와 일반인들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소유'를 비롯한 법정 스님의 저작물 절판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출판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현재 법정스님의 책을 제작하는 대다수의 출판사가 8년~10년 정도의 계약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난 책의 경우는 유언에서 지정한 저작권 승계자나 법적 상속자가 출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대부분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책이 많기 때문에 계약 기간 동안에는 모든 권한이 출판사에 있다.

한 법조인은 이 문제에 대해 “원론적으로 예기하면 법정스님께서 계약을 위반한 것이지만 당대 처음인 특수한 상황”이라면서 “출판을 지속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번 사태의 경우 법정 스님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리인과 출판사 측의 조율이 있어야 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를 다 차지한 법정스님의 저작물들

출판사들은 절판에 대해 어느 정도 수용의 입장을 내비췄다. 법정스님의 대표작 ‘무소유’를 출간한 범우사 윤형두 대표는 “굳이 절판을 요청하신 데도 깊은 뜻이 있을 것이므로 그에 따르겠다. 현재 ‘무소유’는 이미 절판됐다고 생각해야 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으며 입장을 유보했던 다른 출판사들도 “아직 협의점이 남아 있지만 일단 유지를 받들겠다”며 법적조치는 취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밝혔다.

이에 앞서 ‘맑고 향기롭게’의 변택주 이사는 “법정스님은 배려의 마음을 중시하신 분이다. 그러한 분이 이러한 뜻을 남기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출판사 관계자들의 이해를 바랬다.

하지만 해외에 번역되어 판매 중인 저서의 처리 여부, 교과서에 실린 글의 삭제 여부, 미발표된 책들을 위해 출판사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출한 비용에 대한 책임여부, 해적판 출몰에 대한 방지 등 여러 또 다른 문제들도 산재해 있는 실정이다.

조화로운삶 최연순 편집장은 “유언 발표가 있기 전 중국의 출판사와 법정 스님의 책 출판 계약을 맺었는데, 절판요청을 일방적 계약 파기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또한 법정스님의 책을 찾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는 한 시민은 “절판이 아니라 옳은 일에, 아름다운 일에 쓰임이 되도록 정리를 하고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것을 거둬간다는 자체도 무소유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법정스님 책의 완전한 절판까진 시간이 걸릴 듯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배움의 도구인가 돈벌이의 수단인가

이러한 가운데 ‘무소유의 소유를 위한 소비’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주요 서점가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는 이미 법정스님의 책들로 가득하다. 한국출판인회의의 전국 주요 서점 11곳의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3월 4주, 19~26일), 법정스님의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가 정상을 차지했고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등의 7권도 20위 안에 랭크되었다.

▲3월 4째주 베스트 셀러(한국출판인회의 제공)

교보문고에서는 18일 오후 베스트셀러 순위를 소개하는 진열대에 전시된 법정스님의 책들마저 바로 팔려나가 진열대가 비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열풍은 중고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법정스님 입적 이후 19일 오후까지 ‘알라딘 중고샵’에서 법정스님의 책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298건이 거래됐다. 특히 법정스님의 대표작 ‘무소유’는 중고샵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거래가 많이 성사됐고, 평균 거래 가격은 권당 8만원대에 달했다. 22일 현재 ‘무소유’ 책 한권의 최고가는 무려 18만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법정스님이 이끌던 단체 ‘맑고 향기롭게’가 출판사들에 절판을 당부한 것에 대해 ‘무소유’를 출판한 범우사 측이 스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후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중고샵에 올라온 여러 권의 '무소유'

‘무소유’ 거래 페이지에는 과열양상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어떻게든 구하고 싶다는 상반되는 의견들로 가득했다. 알라딘 관계자는 "중고샵 회원 간 거래는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자유롭게 이뤄지는 거래이므로 서점 측에서 가격을 조정하거나 제재할 수 없다"고 말해 이러한 현상이 쉽게 누그러지지는 않을 듯하다.

이렇듯 ‘무소유의 소유’를 위한 지금 우리들은 정말 법정스님의 철학을 마음에 새기기 위한 열광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미투데이(me2DAY)’를 사용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유명한 그림이나 조각상 같은 예술품들이 비싼 건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된 그분 책을 정말 원하는 사람이라면 비싼 돈을 지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도 나오긴 했지만 부정적인 시각들이 주류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지금껏 책꽂이에 전시물로 잠들어있던 ‘무소유’ 책을 이제야 다시 펼쳐보게 됐다”며 “중고 책이 몇 만원 이상으로 거래된다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나도 지금 팔아볼까’하는 마음까지 생긴다”고 얘기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평소 무소유의 가르침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하다 잊고 지냈는데 지금 아니면 구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더 애타게 찾을 찾고 있다”며 “솔직히 절판이 되지 않는다거나, 하나의 열풍과 같은 사재기 현상에 휩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하나의 ‘책테크’로 까지 변질되어버린 이런 상황 속에서 반디앤루니스 서점 측은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독자들이 책을 구하려 대형서점은 물론 중고책방까지 찾아다니고 웃돈을 제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어 ‘무소유’ 정신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며 일단 법정스님 49재가 끝날 때까지라도 전 지점에서 법정스님의 저서를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편 하나의 상품화처럼 법정스님과 관련한 도서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법정스님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스님과 관련이 됐거나, 스님이 생존에 추천한 책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소유의 경제학’, ‘인생의 무소유’, ‘무소유의 행복’ 등 ‘무소유’라는 단어를 제목에 단 책들이 상당히 많다.

이들은 법정스님과 직접적인 연관 없이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바라보며 그의 말씀과 발자취를 담아낸 도서일 뿐이다. 이처럼 독자들은 법정스님과 관련한 도서를 구매하려 할 때 어떠한 책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해결책, 시간이 필요하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유언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스님의 글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언제든지 스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며 책 외에 다른 방식으로 스님의 글을 보여줄 가능성을 제시했다.

법정 스님이 창건한 서울 성북동 길상사는 지난달 25일 정식 개관한 사찰 내 도서관에 ‘무소유’ 등 법정 스님의 모든 저서를 전시해 이용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법정스님 저작물 절판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부작용의 해소차원에서 내놓은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스님의 글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여러 방법 중에 하나로 “스님의 책을 온라인상에서 무상 제공하는 것”을 거론한 바 있다. 이는 ‘미투데이(me2DAY)’ 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많은 네티즌들이 해결책으로 제시했을 정도로 가장 공감이 가는 해결방법이다.

이와 관련 ‘맑고 향기롭게’ 관계자는 “시간을 갖고 출판사들과 회합을 하기로 했다. 스님의 유지와 출판사의 입장을 고려해 협의토록 하겠다. 협의가 마무리되면 스님의 책을 누구나 인터넷에서 무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김기태 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 전문위원은 ‘맑고 향기롭게’가 대안으로 제시한 온라인 무상 제공에 대해 “책은 절판시키게 하면서 누구든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법정스님의 유지에 벗어난다. 그 분의 말씀은 ‘누구든 볼 수 있게 하라’ 가 아니지 않느냐. 또한 스님의 말 한마디에 출판사들은 출판권까지 포기했는데 그것을 역행한다는 것은 원칙을 깨는 행동이기도 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독자들도 아쉬워 할 게 없지 않느냐. 그 동안 수백만부가 팔렸고, 도서관에 가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왜 이제야 난리인가” 라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모순점도 산재해 있다. 현재 오디오북 포맷의 ‘무소유’ 및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와 PDF 포맷의 `맑고 향기롭게' 등 4∼5종의 법정스님의 저서가 디지털화돼 서비스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책 콘텐츠업체는 책을 전자형태로 변환하고 내보낼 수 있는 전송권만을 가지고 있어 출판권을 소유한 출판사가 책의 발행을 중지할 경우에는 전송권 역시 자동으로 소멸하게 된다. 즉, 종이책 발간 중지는 곧 전자책 판매중지를 의미한다. 물론, 저작권 자체는 ‘맑고 향기롭게’로 인도된 상태이지만 출판업계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전국 여러 곳에 법정스님의 추모 공간을 창조하자는 의견도 내고 있다. 도서관이나 법당이 그러한 공간을 제공하고 관리하는 도네이션의 개념을 통해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남녀노소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가서 책도 읽고 업적도 기리자는 것이지만 위치 선정 및 경비문제로 인해 불가능한 정도에 가깝다.

결국 현재로써는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 간의 원만한 협의가 이뤄질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려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지난 22일 한 판매자가 경매 사이트 ‘옥션’에 올린 법정스님의 ‘무소유’ 판매 게시물이 논란이 됐다. 해당 판매자는 책사진과 함께 “지인에게 선물 받은 거라 보관만 했다. 이 책을 읽어주실 다른 분이 가지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판매하게 됐다. 팔리는 금액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봉사단체에 기부하고 싶다”는 글을 작성했다.

▲2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까지 치솟은 '무소유'

 
문제는 가격이었다. 경매최초가 1,000원으로 시작한 물품이 지난 19일에는 10억원까지 뛰어올랐으며 22일 오후 3시경엔 20억원까지 뛰어오르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경매 장난도 어느 정도껏 쳐라”, “법정스님이 유언으로 '무소유'를 절판할 것을 당부했는데, 경매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무소유'를 강조하셨던 법정스님에게 못할 짓이다”와 같은 어이없는 반응과 함께 일각에서는 “무소유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 같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잠시만 고개를 들어 생각해보면 법정스님 저서 절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지극히 단순하며 쉬운 방법으로 해결된다. 도서관을 이용해도 되고, 주위 지인들에게 빌려 봐도 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절판 그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사후 베스트셀러 현상과 함께 절판을 통한 소장가치 상승, 그에 따른 재테크 일 것이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저서도 절판이 논의됐다면 지금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것” 이라고 예측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법정스님의 희소성을 사 놓아야겠다’가 아닌 ‘법정스님의 책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아쉬움과 섭섭함은 있을지언정 무소유에 어긋나는 집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대세라는 이유만으로 끝나버리는 분위기에 덜컥 끼어들어 조급해하고, 과반수의 Yes가 모두의 Yes가 되는 우리의 기질이 좀 더 성숙하게 발전한다면 절판은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만 남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법정스님의 가르침이자 발자취이지 그가 남기고 간 물품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살아 생전 법정스님의 모습. 지금의 이러한 세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법정스님은 마지막 발걸음을 하면서도 절판 역시 무소유 실천의 한 모습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 해결을 통해 우리에게 무소유의 가르침을 피부로 느끼게 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본다. 책을 사느라 아득바득할 시간에 고인의 참된 뜻을 따르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남기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법정스님이 생전에 말씀하셨던 한 구절이 생각한다.

“물건을 주려면 살아 있을 때 주거라. 죽으면 물건도 죽는다”

서울문화투데이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