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공연계, ‘생존 전략을 찾아라’
불황 공연계, ‘생존 전략을 찾아라’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1.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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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아티스트 개발, '러시아 빅3' 등 패키지공연 노력

지난해부터 환율변동이 급격히 일어나면서 해외 공연 유치를 1년 혹은 2년 전부터 준비하는 각 공연 기획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대형기획사들은 좋은 아티스트의 유치로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요구를 만족 시켜왔던 만큼 공공 공연장이나 문화 재단에서 운영 하는 아트홀 못지않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대비책이 시급하다. 

CMI, 빈체로, 크레디아 등은 국내 아티스트를 활용한 공연 기획, 해외공연의 공동기획으로 어려움을 타계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어 주목 받고 있다. 각 사 공연 기획 담당자들은 기업 스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공연 시장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며 클래식의 저변화와 공연결과물에 대한 경제논리를 지양할 것을 역설했다.

 “작년 같은 경우 ‘로테르담 필’ 공연을 할 때부터 환율이 약간씩 이상하다 했는데 ‘라 스칼라’ 공연을 하면서 극심한 환율변동을 겪었어요. 아주 손해를 많이 봤지요” 

기획사 CMI의 여지희 실장은 애써 웃음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현 상황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자 애썼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루치아노 파바로티 공연 등을 최초로 유치해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를 향상 시키는데 큰 일조를 해온 기획사지만 쉽지 않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빈체로 송재영 차장도 제작비조차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우려감을 표명했다. 예술의 전당에 눈에 띄는 해외 공연들을 유치하고 있는 빈체로지만 작년부터 환율이 너무 올라가 올해와 내년 사업들을 전면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으며 기획 공연을 줄인 상황이라고 했다.  

크레디아의 윤보미 실장도 지난해 클래식 공연을 비롯, 한국 창작뮤지컬, 국악 및 서커스 등 40개 정도의 다양한 공연을 기획해 관객들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 왔지만 올해 경제가 더 어려워 진데다 고환율이 겹쳐 대형프로젝트는 줄였다고 밝혔다. 큰 오케스트라는 기업스폰서가 절실한데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빈체로 기획)
해외 공연은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1~2년 전부터 계획이 돼 변경하기 어렵다. 하지만 CMI가 계획했던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취소 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국내 상황도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일본에서의 공연을 계획하던 라디오 필하모닉 측도 엔화의 급등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터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타계하기 위해 각 기획사는 자사만의 방법을 간구하기도 하고 서로 힘을 모아 이 난관을 극복 하고자 하고 있다. CMI는 국내의 좋은 아티스트를 개발,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을 목표에 두고 있다.

 “국내에 좋은 연주자들이 너무 많지만 좋은 공연으로 묶는 것이 기획이라고 느낍니다. 소프라노 임선혜씨와 국내에는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베이스 성악가 연광철씨의 공연이 주목할 만한 합니다. 국내 음악가들이 해외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명훈 선생님 같은 분이 힘을 실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공연을 함께 준비 중이지요.”  

CMI는 8월 중에 계획하고 있는 아시아 필하모닉 공연에도 한국연주자들을 많이 유치한다. 올해 히든카드로는 ‘7인의 음악인들’을 준비했다. 환율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97년도부터 무대에 오를 때 마다 매진했던 아이템인 ‘7인’이 떠올랐단다. 빈체로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패키지로 묶어서 관객들이 좋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송재영 차장은 “공연계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대형 공연 중 우리공연이 많다. 올해 가장 주력하는 것은 오케스트라다. 프로젝트마다 다 이슈가 있다. 가령 신시내티 오케스트라의 경우 플롯주자인 최나경씨를 부각시킬 것이고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김선욱씨의 연주는 그것 자체로도 화제가 되지만 프로그램을 독일 정통곡으로 꾸몄다.”고 밝혔다. 

다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티켓에서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 어떤 식으로 할까 고민하던 중 오케스트라를 패키지로 엮었다. 패키지로 사면 30% 할인이 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크레디아는 인기를 얻었던 ‘앙상블 디토’를 페스티벌 형식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공연을 이틀 동안 총 4회의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꾸미고 ‘아시아에 있는 디토의 친구들’이라는 이벤트도 준비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지연씨와 피천득 선생의 외손자인 스테반 재키 등 한국 정서에 맞는 클래식 아티스트 발굴하는 기획 공연도 준비 중이다. 

또 기획사 끼리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이 위기를 해쳐나가는 길을 모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크레디아, 빈체로, 마스트미디어는 ‘러시아 빅3’를 공동 기획했다. 크레디아의 윤보미 실장은 처음 공동 기획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작년연말을 겪은 후 각 기획사의 대표님들이 한자리에 모였지요. 단지 경쟁할 뿐 아니라  같이 ‘협력하는 공연시장’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뜻을 함께 하셨어요. 더군다나 저희의 키신 공연과 빈체로의 미샤 마이스키 공연, 마스트미디어의 공연이 모두 러시아와 관계가 있다 보니 잘 묶어보면 관객들도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공동 투자,  공동 수익을 창출하는 식으로 계획했습니다.”  

기업들이 어렵다 보니 후원혜택을 받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에서 기업들이 메세나 운동을 한다며 각종 문화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혜택을 받아 본적도 전무하고 후원을 받는 다는 것은 항상 모종의 딜이 있다는데 입을 모은다. 

빈체로 송재영 차장은 ‘진정한 후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꼬집었다.
“기업의 후원은 보통 두 가지 양상으로 보여 집니다. 티켓을 사주어서 후원을 하거나 일정 부분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저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는 스위스의 네슬레와 같은 기업이 한국에도 존재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티켓을 받는 다든지 그런 식이 아니예요. 루체른 페스티벌 기간에는 ‘네슬레와 함께하는’ 이라는 명칭을 사용 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티켓조차도 돈을 주고 사 줍니다.”

송 차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천만 원을 협찬 받을 시 반은 초대권을 내야한다”며 “그러다 보니 초대권이 남발하는 문화가 되고 마는 것” 이라고 했다. “이런 후원은 어떻게 보면 물물교환이지 협찬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힘든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CMI 여지희 실장은 한 번도 혜택을 받아 본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기업의 후원을 바라고 공연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 컬리티가 있고 문화적 욕구를 충복 시켜주는 공연들을 유치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호응해 주신 것 같다”며 “홍보 부분은 언론사에서 많이 도와주었다”고 덧붙였다.

▲ 비올리스트 리차드 용재 오닐. 그는 '앙상블 디토'(크레디아 기획)의 멤버이기도 하다
크레디아 윤보미 부장도 메세나 협회에서 매칭을 하는 후원은 받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윤 부장은 “카드사나 프라이빗 뱅킹같은 기업에서 컨텐츠를 보고 마케팅이나 고객행사에 적합 하겠다는 판단이 들 때 제안을 한다. 클래식이라는 장르자체가 가격도 비싸고 순수하게 매칭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등 국내 대형 공연장은 별 다른 어려움 없이 공연이 진행 될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 새 극장장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가질 국립극장은 예산 삭감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안들까지 세세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과 같이 5월~6월에 진행되던 청소년 예술제와 9월~10월 중에 세계 국립 극장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진행했던 4계절 축제와 같은 무료공연도 지속적으로 마련한다. 또 수익성만 따지지 않고 민족성이나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유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예술의 전당의 경우에는 문광부의 정책에 변동이 생겨 공연 유치 비율이 달라졌다. 올 한해는 국립오페라단이나 발레단과 같이 하는 기획공연이 많고 시민과 더 가까워지도록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와 교향악축제, 11시 콘서트, 해석이 있는 발레 등을 꾸준히 할 것이라고 했다. 불황이라 해외 공연의 부담이 큰 만큼 국내 연주자 기획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 이창기 부장은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마련하는 공연들은 수입을 창출하기 힘들더라도 계속적으로 진행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공연장으로서 문화향수 기회를 주고자 기획하는 ‘천원의 행복’을 작년에 12회에서 진행한데 이어 올해는 13회로 진행한다. 야외 아웃도어 공연들도 작년하고 동일하거나 조금 더 늘어나는 추세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사에서 유치하기 어려운 해외 유명 팀들을 저렴하지는 안더라도 그렇게 비싸지 않은 선에서 제공 할 예정이다. 5월에 460년 전통의 현존 최고의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공연이 예정돼 있고 또 조수미와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의 듀오 콘서트도 기획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장은 “경기 침체가 있다고 하더라고 매표를 하게 되면 제일 좋은 좌석이 팔린다.”며 “공연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경기가 어려우면 잠재관객이 덜 개발되고 기업의 후원이 어려워지는 면, 환율문제로 해외 공연에 대한 제작비가 많이 생기는 어려움이 있지만 기업 협찬을 해외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내수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공연을 통한 잠재관객 개발, 프로모션 강화를 통한 홍보모델의 개발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문화가 힘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진 만큼 공연 시장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와 함께 달아오른 클래식에 대한 열기가 신드롬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제작자와 기획자, 아티스트, 관객 모두 노력해야 할 때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음악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또 공연의 산출물인 감동을 경제논리로 저울질 하지 않도록 국가에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