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으로 역경마저 즐길 줄 아는 청년
자신감으로 역경마저 즐길 줄 아는 청년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3.31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파인 스키 세계랭킹 7위, 국가대표 경성현 선수

예전만해도 동계올림픽하면 쇼트트랙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벤쿠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다른 종목에서도 우리는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우리는 알파인 스키의 한 인재에 주목하고 있다. ‘제 2의 허승욱’이라 불릴 정도의 출중한 실력과 더불어 영어, 불어, 독어까지 가능한 글로벌 인재 경성현 선수(20, 고려대). “아버지(경화수, 50, 사업)께서 지극정성으로 지원해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겸손함까지 갖춘 그를 만나 우리나라 스키의 미래를 점쳐봤다.

 ◆유망주에서 대들보로 거듭나다

리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 4관왕 등을 차지하며 알파인 스키의 유망주로 언론의 각광을 받은 경성현 선수는 원래 쇼트트랙으로 빙상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우리나라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의 막내 경성현 선수

“학교에서 서클활동의 일환으로 쇼트트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3학년이 끝날 때 스키로 전향했죠. 교내에서 스키캠프도 하고 시합도 했었는데, 거기에 출전하고 싶어서 배우게 된 스키가 오히려 저에게 잘 맞아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게 됐죠”

이후 그는 여름에도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자연 환경과 체계적인 시스템, 아낌없는 투자가 3박자를 이룬 스키 강국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그쪽 현지학생들은 학교 팀에서 많이 투자도 해주고 훈련시스템도 체계적이에요. 게다가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팀도 여러 개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 할 정도죠”

오스트리아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으며 한국남자스키의 기둥으로 우뚝 선다. 하지만 큰 시련이 찾아오게 된다. 그의 목표였던 벤쿠버 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것이다. 조심스레 아픈 부분에 대해 묻자 자신도 아쉽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저를 포함한 국가대표 7명 중에 제가 3번째였어요. 원래는 4명까지 올림픽을 출전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캐나다 측에서 2명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규정을 바꿔버려서 아쉽게 못나갔어요. 개최하는 나라마다 재량권을 부여받는 듯해요. 정말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착잡하네요”

하지만 이런 시련은 오히려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한 2010 FIS Far east Cup (이하 FIS 극동컵) 알파인 스키 부문에서 당당히 Overall (전체) 1위를 차지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번 우승으로 인해 2011년 시즌에 벌어지는 유로피안컵을 좋은 조건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경성현 선수는 세계랭킹 7위(1990년생 선수들 중 포인트 순)라는 쾌거를 달성하게 됐다.

▲이번 FIS 극동컵 대회당시의 경 선수 모습

“FIS 극동컵은 중국에서 2경기, 우리나라에서 2경기, 일본에서 3경기를 하면서 매 경기마다 등수를 매겨서 포인트를 줘요. 일본으로 가기 전 4경기에서 포인트 많이 받아놨었기에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편하게 했어요. 제 인생최고의 경기였죠”

이번 우승의 자신감을 안고 일본에서 열리는 FIS 스프링 시즌에도 참가한다는 그는 스키복을 벗으면 축구와 테니스, 친구만나기를 좋아하는 여느 또래들과 다름이 없다. 만약 스키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요리를 좋아해요. 혼자 있을 때 가끔 하구요. 아마도 요리계통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

‘스키’하면 우리들에게 감동을 전해줬던 영화 ‘국가대표’가 떠오른다. 다 아는 형님들의 이야기라서 더 재미있게 봤다는 경성현 선수는 스키점프 종목의 열약한 상황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계기로 스키점프 종목은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지원이 생겼지만 알파인 스키 종목은 아직도 많이 열약한 실정이다.

“어렸을 때는 어떻게든 부모님들이 해주시고 국가대표가 되면 훈련비는 나오니까 그냥 하는 것일 뿐, 늘 어렵죠. 이번 FIS 스프링 시즌 같은 경우도 나오고 싶은 형님들이 많은데 경비가 많이 들다보니 대부분 포기하셔서 안타까워요”

▲어린 시절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했을 당시 경 선수의 모습

경 선수는 우리나라가 스키장 시설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뜸한 오전의 잠깐만 빼고는 선수들에게 코스를 잘 내주지 않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했다.

“스케이트 관련 종목은 그나마 링크장이 있어서 언제든 가능하지만 스키 같은 경우는 한국에만 있으면 겨울밖에 연습을 못해요. 우리나라에도 실내 스키장이 두 군데 정도 있지만 일반인들을 위한 곳이라 규모나 눈의 상태 면에서 선수들 용으로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러다보니 여름이나 가을에는 무조건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가야하죠. 그것조차 지원이 없으니 자주 나가기도 힘들어요”

우리나라도 스키 강국이 되기 위해선 1년 내내 연습에 매달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실력발휘의 발판이 만들어진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국민들의 관심 속에 뜨거운 응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스키계의 보배라 할 수 있는 경성현 선수. 국가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알파인 선수로 등록되어있는 인원은 200명 정도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진짜 프로가 되고 싶어서 시작하지만 중간에 일반 대학교로 진학하거나, 혹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중간에 관두는 경우가 많죠. 어릴 때의 꿈만 믿고 가기엔 비전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가 바로 경성현이다. 소치에서 열리는 다음 동계올림픽 때 그의 나이는 알파인 스키선수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대 중반이기도 하다. 시상대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히 웃고 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반인이든 선수든 스키를 잘 타기위한 특별한 방법은 딱히 없어요. 자신감을 가지고 즐기면서 하는 것, 그것이 정답이지요”

▲경성현 선수, 늘 그의 곁에는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않는 친구같은 아버지가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