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국악박물관’
국악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국악박물관’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4.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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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을 악(樂)으로 승화시킨 민족의 숨결을 느끼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가무의 나라’로 불릴 만큼 노래와 춤을 즐겼다.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가무를 즐겼으며, 생활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가무로 표현, 승화시켰다. 지금도 슬플 때나 기쁠 때 음악은 빠지지 않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양악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고, 국악은 어렵다는 편견으로 얼룩져 문화 저편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전통문화, 그 중에서도 국악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에 본지 기자는 국립국악원(이하 국악원) 내 국악박물관을 찾아 국악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왔다. 또한 국악원 박일훈 원장을 만나 지난 1년 동안 국악원에서 진행한 사업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요 사업들을 중심으로, 국악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국악원(서초동 소재)에 들어서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볕은 좋지만 봄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4월 2일, 한산한 오후에 국악원은 조용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국악은 국악원을 더욱 운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국악박물관 전경

국악박물관은 국악원 내 부설기관으로 1995년 문을 열었다. 우리 음악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국악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은 악기와 귀중도서, 음향 및 영상자료 등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50여점이 중앙홀을 비롯해 악기전시실과 고문헌실, 명인실 등에 전시돼 있다.

국악의 역사, 그 뿌리를 찾아서

국악박물관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국악사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으로, 다양한 굿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농경사회 이전에는 풍족한 먹이사냥을 위해 사냥 굿을 벌였으며, 삼한시대로 넘어오면서 각 나라마다 고유의 제천의식을 가졌다. 당시에는 음악이 신과 통하는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연병풍은 1902년 4월에 거행된 고종의 망육순(51세)과 입기로소를 축하하기 위한 진연의 광경을 그린 병풍이다.

선유락은 궁중에서 연희 때 상영되던 궁중정재(무용)로서 곱게 단장한 채선(배)을 준비해 여러 여기들이 패를 나눠 노래하고 춤춘다.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시대부터는 국가의 형태를 갖춰 고유 국가체제와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상고시대의 음악이 주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면, 삼국시대 음악은 국가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지녔다. 이때부터 기악연주에 가무를 곁들인 악무 형태가 등장했다. 또한 각 나라별로 중국과 일본,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교류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구려의 왕산악과 가야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 등의 현악기가 연주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연등회와 같은 불교행사와 신라의 팔관회 등 국가적인 축제를 통해 음악의 전통이 이어진다. 이후 아악을 받아들여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서 연주되기 시작하는데, 아악(雅樂은)은 ‘정아한 음악’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편경은 타악기로, 고려 때부터 사용됐다. ㄱ자 모양으로 생긴 단단한 돌로 만든 여섯 개의 경이 윗칸과 아랫칸에 각각 여덟 개씩 매달려 있다. 현재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어는 타악기로, 고려 때부터 사용됐다. 나무로 만든 호랑이의 등 위에 스물 일곱개의 톱니가 박혀 있다. 음악이 그치는 것을 신호하는 악기로, 하루의 끝을 의미하는 서쪽에 놓인다.



 

 

 

 

 

 

중국 고대 주나라 때 궁중 제사음악으로 발전해 송나라에 이르러서 ‘대성아악’으로 확립됐고, 고려 예종 11년 송나라 휘종이 대성아악과 이에 사용되는 악기와 의식에 쓰이는 악복, 의물 등을 보내면서 우리나라에 아악이 전파됐다. 조선 전기에는 고려의 아악을 그대로 계승했으나 세종 대로 넘어오면서 박연이 궁중아악을 정비하기 시작, 악장과 악보, 악기 등을 제정하며 음악의 새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중상층을 중심으로 한 풍류음악이 발전했으며, 서민들의 감정을 노래한 판소리 등이 하나의 예술장르로 자리 잡았다.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궁중에서 연주된 의식음악은 쇠퇴했으나 제례 관련 음악은 아악부를 통해 그 명맥을 겨우 이어갔다. 아악부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왕실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든 ‘이왕직(李王職)’이라는 부서의 음악기관으로, 1917년 궁중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아악생을 모집, 현대식 궁중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그 전통은 정부수립 이후 구황궁아악부를 거쳐 1951년 설립된 국립국악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악박물관, 하나부터 열까지

이제 슬슬 국악박물관 투어에 나서볼까.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중앙홀이다. 중앙홀에는 궁중음악과 제례음악 연주에 쓰였던 다양한 모양의 북들과 축, 어, 편종과 편경 등이 전시돼 있다. 축과 어 등은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악기로, 음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편종과 편경은 악기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중앙홀 벽면의 병풍도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동쪽 벽면에 자리한 반차도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으로 행차하는 순서를 그리고 있다. 서쪽 벽면의 능행도는 역시 정조가 수원에 아버지 능을 찾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중앙홀을 지나 첫 번째로 들른 곳은 ‘국악사실’, 이곳은 국악의 뿌리를 알아보는 곳이다. 국악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연표와 주제에 따른 설명, 출토 유물을 비롯해 고문헌과 악기 등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장구체험

국악노래방

 



 

 

 

다음은 입체영상실로, 유아 및 초등학생을 위해 제작된 3D 입체 애니메이션 공간이다. <삼국유사>의 신라 만파식적을 소재로 한 입체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있으며, 효과음악과 배경음악을 국악기로 연주해 어린이들이 국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국악체험실 역시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제작된 퀴즈게임과 사진촬영 코너, 국악노래방이 마련돼 있으며, 가야금, 장구 등의 악기를 직접 만져보고 배울 수 있는 체험의 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악학궤범은 1493년 편찬된 우리나라 대표 음악이론서이다.

개량율관은 율의 정확한 음고를 정하기 위해 만든 표준 관이다.

 



 

 

 

 

박물관다운 면모를 가장 뽐내는 곳은 고문헌실이다. 이곳은 국악원이 소장하고 있는 악보와 악서 등 귀중한 자료들을 전시한 곳으로,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보체계인 정간보로 기록한 ‘세종실록악보’와 세조 대의 음악을 담은 ‘대악후보’ 등의 고악보를 만날 수 있다. 이 외에도 1493년 편찬된 우리나라 대표 음악이론서 ‘악학궤범’ 등 고문헌이 있다. 음악사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 총집합된 장소인 셈이다.

명인실은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온 명인들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악기, 의상, 악보 등 다양한 유품이 전시된 곳이다. 국악박물관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곳은 바로 악기전시실이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우리의 전통악기를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로 구분해 전시한 공간이다. 또한 악기장 남갑진 등 개인이 기증한 악기도 전시돼 있다. 남갑진은 활용도가 낮아 제작기법이 일시 단절됐던 편종, 편경의 제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장인으로, 국악원의 악기 개량과 복원 사업에 참여해 새납, 향비파, 당비파 등 악기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민속악기로 관심을 확대해 세계 여러 지역을 돌면서 각국의 민속 악기들을 수집,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국악박물관에 기증했다.

우리나라의 향토악기

관악기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악기 사진도 찍고, 장구도 두들겨보고, 가야금도 뜯어봤다. 악기들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서 느긋하게 국악의 역사와 정취에 빠져들 수 있었다. 타 박물관에 비해 그 규모는 작지만 속이 꽉 들어찬 박물관임에는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국악에 대해 너무 모르고 지낸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럼 태우면 무작정 집을 나서자. 마땅한 행선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국악박물관을 추천한다. 우리음악을 알아야 들릴 테고, 들려야 더 아끼지 않겠는가.

서울문화투데이 정지선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