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은 어렵다? 말을 배우듯 가르치고 길들여야”
“국악은 어렵다? 말을 배우듯 가르치고 길들여야”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4.08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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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훈 국립국악원장 인터뷰

박일훈 국립국악원장이 취임 1년을 맞았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국립국악원에 재직, 연구원, 악사장, 장악과장, 국악연구실장 등 국악원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박 원장은 국립국악고, 서울대 국악과 출신으로, 그의 삶에서 국악은 평생을 함께 걸어온 친구이자 동반자와 같은 존재였다. 취임 후 지난 1년간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해온 그는 올해 역시 국민들이 국악으로 더 신명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볕이 좋은 오후 한 때, 향긋한 차 한 잔과 함께 시작된 그와의 인터뷰는 인터뷰라기보다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이야기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던 옛이야기 말이다.


국악과 묘한(?) 인연으로 얽히다

-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요. 음악 그 중에서도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60년대였으니 어려운 시절이었죠.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공부를 잘해서 그런가.(웃음) 자신의 아들과 함께 음악학교를 보내줬어요. 양악 붐이 일었을 때라 직업으로 국악을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어요. 지금의 국악중고가 옛날에는 서울국악사양성소로, 쉽게 말해 상업학교였죠. 집에서는 교장 선생님 아들이 갈 학교라니까 좋은 학교라면서 보내줬고요.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입학했는데, 아직도 국악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네요.

국립국악원 박일훈 원장 

- 국악원에 30년 넘게 재직하면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국악원에 취직했죠. 그때는 국악원이 장충동에 있었는데, 대극장하면 국립극장이고, 소극장하면 국악원이었죠. 그러다가 국악인들의 힘을 모아 국악원을 서초동으로 옮겼고, 그 과정에서 행정적인 부분을 제가 많이 담당했어요. 사실 전 작곡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많은 국악인들이 활동하는데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요.

-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전통연희극장’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초조사를 진행 중이고, 후반기에는 설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전통연희극장이라고 특별한건 없어요. 연희의 대표주자가 농악 아닙니까. 누구나 즐길 수 있죠. 흥이 나면 춤도 추고, 땅재주도 넘죠. 지금의 비보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궁중음악은 의식적인 부분이 많지만 연희는 대중과 더 친했어요. 지방색 있는 놀이와 축제를 살리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연희극장을 추진했어요. 아직까지는 서양식 음악에 어울리는 극장이 대부분이니까요.

전통과 현대 공존한 국악 작품 만들겠다

- 올해 국악원이 진행하는 사업 중에 가장 중점적인 사업은 무엇인가요.

국악원은 궁중음악을 중심으로 볼거리를 보완하려고 합니다. 남원은 창극, 진도는 무속음악인 굿, 부산은 무용을 중심으로 특성화하되,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요. 전통만 고집해도 현대인들의 정서와 맞지 않으면 대중과 공유하기 힘드니까요. 전통이 살아있는 현대에 어울리는 작품을 브랜드화해서 세계에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쓰려고 합니다.

- 이제 박물관에 대해 묻겠습니다. 국악박물관은 국악의 산 교육장인데요. 특히, 체험공간은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교육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국악박물관은 국악원의 부설기관입니다. 규모도 큰 편은 아니고요. 학생들이 국악을 더 친근하게 느끼고, 이해를 돕기 위해 국악 노래방이나 게임, 국악기 체험 공간 등을 마련했습니다. 작지만 내실 있고, 대중적인 박물관으로 키워갈 생각입니다. 봄, 가을에는 유치원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하루 평균 300여명의 학생들이 다녀가기도 해요. 특히, 유치원에서는 박물관이 넓지 않아 관람하기에 안전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장구도 직접 소리내보고, 가야금도 뜯어보니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를 느끼나 봅니다.

국악을 즐기려면 아는 게 먼저

- 지난 3월말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국악 교육의 교육성을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통문화의 대중화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전통을 너무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음악의 공헌도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만큼이나 사회교육도 중요합니다. 국악을 즐기려면 어느 정도 국악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말을 배우듯 국악도 배우고 길들여져야 합니다.

- 흔히 국악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그런 편견을 깨고, 신나는 국악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나는 국악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고전은 원래 다 어려운 것이죠. 길들여진다고 하나요? 무엇인가에 길들여지기 까진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파게티를 예로 들어볼까요. 스파게티는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든다면 그건 더 이상 이탈리아의 스파게티가 아니죠.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음식점에서 만들어지는 스파게티가 그렇듯 말이죠. 국악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자주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식당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찾으면 먹을 수 있나요? 국악을 자주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메뉴판에서 국악을 만날 수 있습니다.(웃음)

- 즐겨듣는 국악곡이 있으신가요.

가려서 듣는 편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듣는 음악이 달라요. 지금까지 남아있는 국악곡들은 모두 자생력을 가진 곡들이죠. 자주 들어야 하는데 요즘은 바빠서 듣지를 못하고 있어요. 생각난 김에 오늘은 꼭 들어야겠네요.

다룰 줄 아는 국악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다룰 줄 안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이는 박 원장.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종종 잊고 지내는 가족처럼, 우리가 국악에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잘 모르면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국악이 어렵다는 핑계로 국악을 홀대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국악, 어렵다말고 우선 들어보자. 들어보고 어렵다말해도 늦지 않을 테니.

인터뷰/ 정리 정지선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