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문학관 10주년 <문인, 화가 扇畵모음展>
영인문학관 10주년 <문인, 화가 扇畵모음展>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4.1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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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몽유도원도 속에 빛나는 아마츄어리즘

영인문학관(종로구 평창동 소재, 관장 강인숙)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문인, 화가의 선화(扇畵)를 한 자리에 모은  ‘<바람 위에 쓴 글과 그림> - 문인, 화가 扇畵모음展’(이하 ‘선화전’) 을 선보인다.

▲지난 9일 열린  ‘<바람 위에 쓴 글과 그림> - 문인, 화가 扇畵모음展’ 오픈기념식은 수많은 내빈들이 자리한 가운데 진행됐다

시(詩)·서(書)·화(畵)가 하나로 융합되던 전통사회에서 서화선(書畵扇)이 지니던 유니크한 예술적 특성을 현대 사회에 접목시켜, 한국적 미(美)와 문학의 한 원형을 제시하려는 것이 서화선 전시의 목적이다.

이번 ‘선화전’은 10주년 기획전으로 준비한 세 개의 부채전시회 가운데 하나로, 이후 ‘접선(摺扇)展’(도쿄 한국문화관 홀, 6월 4일~9일), ‘허동화 기증부채전’(2차 전시, 6월 15일부터 30일)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9일엔 오는 5월 30일까지 ▲이종상 화백과 이어령 초대문화부장관이 합작한 대선(大扇) ▲진학종의 서예 대선(大扇) ▲이승택 화백의 6연작 시리즈 ▲김남조, 고은, 김규동 등 많은 문인과 20여명의 화가들의 부채 100여점이 전시될 ‘선화전’의 오픈식이 저명한 문학인들이 자리한 가운데 영인문학관에서 열렸다. 

▲식전행사로 열린 축하공연

이날 김남조 시인은 축사를 통해 “영인문학관이 개관한 지는 10년이지만, 문학관을 만들어서 문을 연건 15년, 문학관의 뜻을 세운 건 50년으로 헤아릴 수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문인들을 만나보니 서로 너무 닮았다. 서로 같은 아픔을 갖고 있고, 서로 절실한 같은 소망을 위해서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는 먼저 간 이들의 발자국을 되새겨보는, 또 우리 뒤에 올 많은 이들을 되돌아보는 넉넉하고 행복이 충만한 시간이다. 이어령, 강인숙 부부가 없었다면 이와 같이 넉넉한 잔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는 말로 개관 10주년을 축하했다.

최강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어령 초대문화부 장관님과 강인숙 교수님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오랜 사랑의 결실로 탄생한 영인문학관은 지난 10년간 다양한 전시와 활동을 통해 우리시대의 중요한 문화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 “여타 박물관과 달리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곳”이라고 극찬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축사를 통해 이번 전시회의 큰 성과를 기대했다

또한 “오늘 이곳을 돌아보면서 한국 문학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몽유도원도를 보는 느낌이었다”며 “당시 문인 21명의 그림에 대한 감상이 써져있는 몽유도원도는 인문학의 결정판이라고들 한다. 이번 ‘선화전’의 경우도 그림과 글이 부채 위에 함께한 모습에서 21세기의 몽유도원도와 같다. 이어령, 강인숙 두 분의 열정과 노력이 문화예술계의 거장과 만나 이뤄진 특별한 전시회인 만큼 큰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이번 전시회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통해 “작품은 받는 사람에 따라 질도 정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선화전’에 나온 부채들이 특히 아름다운 것은 이어령 선생한테 주는 것인 만큼 특별히 신경 쓴 것 같다”며 작가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이 이번 전시회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어떤 재벌이 컬렉션을 위해 예술가들에게 돈을 아무리 가져다줘도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품이란 주는 사람의 사랑이 들어있어야 한다. 이번 전시회를 자신 있게 외국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이유도 선면(扇面)이라는 캠퍼스위에 사랑을 담아 낸 이런 부채는 어느 나라에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령 초대문화부장관은 “집사람이 박물관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데도 많은 분들이 제가 다 한 줄 안다. 사실상 10년 동안 집사람이 혼자서 다했다”고 운을 뗀 뒤 “비평가의 입장으로 남을 사람과 남지 않을 사람을 자꾸 걸러내려 하는 나와 달리 집 사람은 다 포용한다. 10년 지나고 보니 나의 옹졸함에 부끄러워진다. 만약 내가 박물관을 관리했다면 지금의 다양하고 풍부한 컬렉션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며 강인숙 장관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이 우리나라 부채문화에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장관은 우리 선조들의 부채문화에 대한 설명을 통해 “옛 문헌에 ‘한국인은 부채를 좋아해서 겨울에도 들고다닌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부채는 몸에 다니고 지니는 신체의 일부이다. 더불어 그 안에 그려진 그림이나 글씨는 자신의 지문이나 주름살, 음성처럼 생명의 일부가 된다”며 “사용할 때나 안 할 때나 도구가 변치 않고 고정되어 있는 서양문화와 달리, 우리는 도구가 쓰는 사람과 함께 한다. 예를 들어 침대는 항상 그 자리에 고정되어있지만, 이불과 담요는 잘 땐 펴고 일어나면 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부채는 안면을 가려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변신의 용도로도 사용한다. 이밖에도 판소리하는 이들은 부채가 없으면 소리를 내지 못하며, 무속에서는 부채를 통해 영적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문화, 종교적 차원까지 아우르는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인 예”라고 극찬했다.

그 중에서 선화(扇畵)에 대해 강조하며 “부채는 그림이나 글씨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접시다. 즉, 컬렉션하고 전시하면서 하나의 감상의 대상이 될 때 부채모양을 한 캔버스로 다시 태어난다. 서양인들의 사각형 프레임과 다른 변형된 프레임이 그림과 조화를 이룬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의 우수성에 대해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화전’을 통해 작품 속에 깃들어있는 순수한 아마츄어리즘이 더욱 빛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이보다 더 크고 역사 깊은 박물관들 많지만, 오히려 이처럼 작고 조촐한 전시회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참석한 모든 내빈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한편, 전시실과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는 영인문학관은 강 관장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부부가 사재를 들여 만든 공간으로, 1969년 이 전 장관이 시작한 한국문학연구소에서 태동됐으며 소장품은 이 전 장관이 13년 간 '문학사상'을 발간하면서 수집한 문인들의 원고, 초상화, 편지 등과 이후 부부가 수집한 문인 및 화가의 부채, 서화, 애장품, 문방사우, 사진 등으로 다채롭다.

서울문화투데이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