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茶 문화
한국인의 茶 문화
  • 이윤희(서일대학 민족문화과 교수)
  • 승인 2010.04.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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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에, 창작활동에 더없이 좋은 차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차를 마셨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현존하는 기록으로 삼국시대에 이미 차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선덕여왕 때의 차 이야기나 경덕왕 때 승려 충담이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흥덕왕 때 왕명으로 대렴이 당에서 차를 가져와 지리산 계곡에 심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차문화가 융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최치원이“차를 얻었으니 근심을 잊게 되었다"고 하였듯이, 차가 잠을 쫓고 정신을 맑게 할 뿐만 아니라 명상에 적합하므로 수도하는 승려와 수련하는 화랑들이 즐겨마신 것으로 보인다. 신라 진흥왕 무렵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면서 차를 달여 마셨던 한송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는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매일 새벽에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바쳤다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의 신라인들은 지혜의 표상인 문수보살이 차를 좋아한다고 여겼던것 같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을 향하고 있는 문수보살상은 오른손에 찻잔을 들고 있다.

고구려에서도 지방이름을 구다국을 사용한 점이나 무덤 주인 내외의 생활상을 그린 벽화에 내외간에 차를 마시는 풍경이 보인다. 백제의 경우는 일본 동대사에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백제의 승려 행기가 일본 동대사 근처에 차나무를 심었으므로 백제인들도 일찍이 차를 마셨으리라 믿어진다.

신라의 다례를 계승한 고려의 다례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융성하였다. 성종은 풀매로 손수 말차를 제조할 만큼 왕실과 사원에서 차를 중시하고 애음하였다. 차를 올리거나 준비하는 다군사, 차를 재배, 제조하기 위한 다소촌, 일반 대중을 위한 차가게인 다점과 여행자 휴게소인 다원도 설치되었다. 궁중의 의식, 연등회와 팔관회, 사신접대의에서 진다례가 시행되었으며 일반에서도 다례가 시행되었다. 고려시대는 일반서민, 승려, 왕족을 불문하고 차를 즐겼으므로 차를 마시는 도구도 발달하였다. 당시의 차문화가 청자의 발달에 촉매역할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 차는 의식에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정책의 집행결정을 위한 모임에서도 사용되었다. 중형주대의는 왕이 중한 죄인에게 참형을 내리기 이전에 신하들과 차를 마시는 의식을 말한다. 왕과 신하들이 차를 마시면서 중죄인에게 감형을 할 수 있는 지를 다시 생각하는 이 의식은 매우 신중하고 치우침이 없는 판결을 내리기 위한 다례이다. 승려사회에서는 차의 맛을 비교하여 평하고 겨루는 명전회가 개최되기도 하고, 수행하는 과정 중에 차를 즐겨 마셨으며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로서 차를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다례풍습은 이어져 사헌부의 관리들은 일정시간에 모여 차를 마시는 다시를 가졌으며, 궁중 연회시 주정과 나란히 다정이 반드시 놓였다. 서민들의 전통혼례 때, 조상 제사와 명절 때 차례를 거행하였다. 또한 사신들과도 다례를 행한 기록이 왕조실록에 전한다.

18세기 말에는 다산 정약용, 초의 장의순, 추사 김정희 등을 비롯한 뛰어난 다인이 생겨나 차문화를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 대흥사 일지암에 머물렀던 초의는 불가의 실학자라 불릴 만큼 교리와 학문이 깊은 학승이었기 때문에 해거 홍연주, 정약용의 두 아들 정학유, 정학연 그리고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문인들과 깊은 교류를 가지며 이들에게 차를 보내주면서 불교적 습속의 차를 세간 문인사회로 전파하는 큰 공을 세웠다.

개화기 이후에도 농가와 사찰을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던 차문화는 전라남도 일대의 무등다원, 정읍의 소천다원, 보성의 보성다원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 다원은 무공해 청정지역인 제주도의 서광다원, 도순다원, 한남다원 등과 함께 국민건강 증진과 차생활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차를 마시면, 고려말의 충신 이숭인은 '하늘아래 떠도는 한을 씻어준다'고 했고 포은 정몽주는 '차 마시는 버릇으로 세상일을 잊는다'고 하였다. 추사의 동생이자 서예가인 김명희는 '차의 향기와 맛을 따라 바라밀에 든다'고 하였는데, 바라밀은 현실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피안의 경지에 이름을 말한다. 이는 차로써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는 말이다.

명필로 유명한 한석봉은 초가집에서 거문고도 타고 책도 읽고 화로에 불피워 차 끓여 마시며, 흥에 부풀어 신나게 글씨를 썼다고 한다. 서경덕도 '차 마시고 옛 책을 뒤적이네'라고 읊었다.

정신건강에, 창작활동에, 독서에, 신선의 경지에, 취미생활에, 약으로서의 효능에, 오순도순 앉아서 이야기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것이 차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도 우리의 차문화를 더욱 가꾸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