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우리는 ‘폭력’앞에서도 진실할 수 있는가?
[리뷰]우리는 ‘폭력’앞에서도 진실할 수 있는가?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2.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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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험난한 자아 찾기, 연극 ‘스탑 키스’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도로에 토끼가 튀어나오면 멈출 것인가?'라는 질문에 은수는 '그냥 돌진한다' 하고 대답하지만 혜연은 머뭇거린다. 혜연과 은수는 '코스모폴리탄' 잡지속에 수록된 심리테스트를 하면서 낄낄 거리는 중이다.  혜연의 대답은 은수와 같다. 하지만 혜연이 그러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은수는 도로에서 토끼를 발견한 혜연이 머뭇거릴 것을 흉내내며 혜연을 놀린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우석대학교연극영화학과 등이 후원하고 문화아이콘이 주관하는 '2009 서울 퍼스트 페스티벌의 첫 작품, 다이아나 손의 원작 한국 초연작품인 ‘스탑 키스’(김준삼 연출, 블루바이씨클 프러덕션)는 두 여자의 만남을 통한 험난한 자아 찾기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연극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순수하게 꿈꾸기에는 너무 많은 ‘폭력’들로 점철되어 있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그 ‘폭력’은 대중의 신념이나 사상에 부합하지 않을 때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려는 사람들의 잣대와 시선, 소위 잘 나가는 직업이나 사회적인 위치로 측정되는 개인의 삶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숙명처럼 받아 들이고 체념하고만 살아왔던 혜연은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은수를 만난 후 이러한 폭력들 앞에서 그 결과를 뻔히 예상 할 수 있음에도 자신이살고 싶은 삶을 선택한다.

혜연의 친구의 친구인 은수는 강원도 출신의 소위 ‘잘 나가는’ 민족사관학교 선생님이었지만 그 학교의 ‘차고 넘치게’ 가진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별로 필요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세 번이나 시험을 치러 서울에 위치한 특수초등학교인 정진학교로 부임해 오게 된다. 은수에게는 5년간 동거한 어엿한 직장인 진영이 있지만 그에게서도 역시 염증을 느끼고 떠나온다.

한편 혜연은 서울에서 7년째 살고 있는 교통방송 리포터다. 자신의 직업이 썩 맘에 들지 않지만 자신의 일상에 대해 어떤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간다.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위층에서는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이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 방해를 받지만 그것에 대해서 혜연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피하면서 지낼 뿐이다. 혜연에게는 ‘준희’라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함께 잠은자더라도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준희가 다른 여자들을 만날 때 질투가 나지만 혜연은 준희에게 조차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분명한 성격적 대조를 보이는 두 사람은 은수가 키우는 ‘시저’라는 고양이를 맡아 줄 사람을 찾던 중 만나게 되고 좋은 친구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다 혜연은 은수에게 동성애의 감정을 느끼는 정도까지 자신의 마음이 커지게 되고 새벽 4시까지 한 바에서 함께 놀던 날자신의 마음을 키스로서 은수에게 표현한다. 은수도 혜연의 마음을 받아들여 둘은 진한 키스를 나눈다.

그 날 사건이 일어난다. 둘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그들에게 접근해 어딘가에 가서 그들의 ‘레즈비언 쇼’를 보게만 해준다면 일당을 주겠다고 비아냥거리고 은수는 그에게 ‘저리 가라’는 말을 한다. 그 남자는 ‘레즈비언들’이라고 욕을 하며 은수의 머리를 벽에 찧어 혼수상태에 이르게 하고 만다.

이후 혜연은 TV와 신문에서 자신들의 사건이 보도 되는 바람에 큰 곤혹을 겪는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은수의 부모님들 및 직장사람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동성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한편 비슷한 일을 겪은 레즈비언 사람들에게서 ‘우리들의 억울함을 함께 풀어 달라’는 편지를 받으며 시달리기도 한다.

은수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조금씩 몸을 움직이게 되자 은수의 옛 동거남 진영은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 자신과 ‘평범하게’ 살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민사고 학생들에게서 온 편지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혜연은 정진학교 아이들이 은수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여주고 은수에게 예쁜 옷을 갈아 입혀주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나를 선택해’.

무대 정중앙에 설치된 대형 티비 화면에서는 극 중간 중간 한번씩 혜연과 은수가 있었던 놀이터와 그 주변의 길 장면을 보여줘 누군가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10분간의 인터미션(휴식시간)까지 있는 2시간 30분의 상당한 분량의 연극이었지만 시종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복합적인 시간 구성과 열정 느껴지는 연출 때문이다.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행위에만 촛점을 두지 않고 주인공들의 내면을 섬세한 필치로 그렸다는 점이 무척 신선하며 많은 것을 관객에게 시사하고 있는 작품. 2월 8일까지 우석 레퍼토리 극장에서 계속된다.

한편 '2009 서울 퍼스트 페스티벌'은 우석레퍼토리극장이 주최하고 문화아이콘이 주관하는 연극 축제로 지난 1월 28일 시작돼 4월5일 까지 계속된다. 국내외 작품 중 초연되는 작품이 무대에 올라 순수 연극의 열정을 관객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스탑 키스'(연출 김준삼) , '달빛 트렁크'(작,연출 박장렬), '고아 뮤즈들'(연출 카티 라팽), '태양은 하나다'(작,연출 김민정), '영국 왕 엘리자베스'(연출 오경숙)가 공연된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