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은 빈대떡, 옆집은 스테이크?
이집은 빈대떡, 옆집은 스테이크?
  • 박솔빈 기자
  • 승인 2010.04.22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태원 2동 해방촌

[서울문화투데이=박솔빈 기자] 이태원 2동 해방촌은 서울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남산 언덕 위에 있는 동네로 6.25 한국 전쟁 때 피난온 이북 출신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면서 해방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남산 순환 3번 버스를 타면 해방촌 정상에서 내릴 수 있다. 녹사평역에서 내려도 가깝지만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쉽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

한번 오르막에 들어선 노란 버스는 쉬지 않고 올라간다. 정류장에서 멈추기라도 하면 뒤로 떨어질 것 같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온통 흑인, 백인, 미국 사람, 터키 사람, 동남아시아 사람… ‘No Parking’ 영어 경고문에 영어로 떠드는 아이들, 집집마다 걸려 있는 색색의 국기들. 대혼란. 마치 한국이 아닌 것 같다.

위쪽의 건물들은 대부분 외국인 렌트를 위해 지어진 집들이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은 키가 큰 외국인들을 배려해 천장이 높고 문 밖에 붙어 있는 명패도 영어로 쓰여져 있다. 집들 사이로 간간이 ‘Rent’ ‘Housing’ 이란 간판을 단 건물도 보인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소들이다.

예전부터 미군들이 많이 거주했던 해방촌은 9.11 사태 이후 미군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영어 교사들이나 소규모 보따리 무역상 등 나이지리아, 가나의 아프리카인들로 주거층이 바뀌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나이지리아인들의 경우 아프리카 교회를 꾸려 예배나 물물교환 장소로 이용하는 등 ‘아프리칸 빌리지’를 형성해가고 있다. 단순히 미군의 점령지였던 예전과 달리 전세계인의 해방촌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카페와 식당들이 눈에 띈다. 역시 영어로 적힌 간판과 메뉴판이 즐비하다. 파는 메뉴를 보자면 비교적 흔한 미국식 햄버거, 터키 케밥, 이탈리아 음식, 멕시코 음식부터 만나기 힘든 폴란드 음식, 모로코 음식까지 다양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이 아닌 것 같아’ 하는 순간, 뻥튀기 트럭이 나타난다. 지나가던 외국인이 묻는다. “아저씨~ 뻥튀기 How Much? Oh,이천원?”

▲해방촌 입구 외국서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한국 음식점들이 나타난다. 한집 걸러 하나씩 외국식당과 한국식당이 교차된다. 막걸리집에서 빈대떡을 부칠 때 옆집에서는 스테이크를 뒤집는 식이다. 국내 제일이라고 소문난 미국식 수제 햄버거 가게 자코비 버거부터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김치찌개 전문점까지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고 있다.

하지만 해방촌은 이태원 거리처럼 혼잡하지 않다. 대부분 주택가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한 골목만 벗어나도 순수 한국이 나타난다. 어린아이들은 비바람에 녹이 슨 자전거를 달리고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파란 플라스틱 의자 위에 호박죽 한 통을 놓고 담소를 나누던 할머니들이 지나는 주민을 부른다. “아이고, 우리만 먹어서 어째. 이것 좀 먹어봐.” 전형적인 달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곳에는 윗 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흐른다.

꽃샘 추위도 물러간 완연한 봄.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해방촌, 골목마다 다른 공기가 흐르는 곳으로 산책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