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레앙 허의 재밌게 공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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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를레앙 허(허성우)
  • 승인 2010.04.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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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비·애·비

[서울문화투데이=오를레앙허(허성우)] 가치있는 역사적 현장을 복원하여 문화적 유산으로 후대에 길이 보존하려는 노력은 국가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사업이다.

발전과 창조라는 건설적 명분앞에 파괴만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낡고 오래된 유,무형의 가치를 외면하고 먼저 연장을 들고 보는 파괴적 충동에 사로잡힌 것이 지금의 시대다. 수백년이 된 낡고 오래된 극장이나 수 대를 거쳐 가업을 이어온 공방, 레스토랑이 즐비한 유럽, 심지어 일본을 여행했을 때, 반만년 역사를 가졌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꼈던 부인하기 힘들었던 감정의 실체는 부러움, 그것이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수백년이 된 한식 레스토랑이나 여관을 찾아 보기 힘든 것인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 서 있는 질곡의 역사를 이겨낸 한민족의 자존감의 상징, 국보 제 1호이자 세계인의 문화유산이기도 한 숭례문이 한 개인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된 방화로 소실된 어이없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국보 1호 쯤은 태워줘야 성에 찾던 모양이다. 낡고 오래된 것은 왜 우리의 자랑이 되어 주지 못하고 이처럼 훼손되고 있는 것인가.

이제라도 낡고 오래된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려야 할 때이며 유·무형의 가치와 유산에 대한 돌봄의 수준을 높여야 할 때이다. 정신적 문화의 성숙함 없이 일류 선진국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으로 여행갔을 때,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보았을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브란덴 부르크문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베를린 중앙역 근처에 반쯤 무너진 채로 서있는 카이저 빌헬름 성당과 맞닥뜨렸을 때다.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 측 공습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성당, 전쟁의 참혹한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와 같은 곳을 그대로 두어 전쟁의 비극적 단면을 후대에 생생하게 알리며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파괴된 것도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좋은 실례가 아닐 수 없다.

종로구에서는 조선 6대왕 단종과 그의 비(妃) 정순왕후의 비극적 사랑이 깃든 명소를 특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뮤지컬 비애비를 창작지원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조선초 문종 사후의 왕실은 지배하려는 자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자의 암수와 살수가 판을 치는 권력의 현장이었다. 권력은 모든 것을 얻을 수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녔다. 악마적 유혹이다.

세종의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은 권력에 눈이 멀어 큰형 문종의 측근이었던 김종서일파를 제거하고 한명회를 통해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켰다. 또한 경쟁관계였던 친동생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을 처단하였고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큰 공을 세운 정난공신인 사육신들이 정치적 야욕을 앞세워 어린 단종의 복위를 획책하다 발각당해 처형당했다. 어린 조카인 단종 역시 유배 후 자결을 유도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정순왕후는 60여년간 절개를 지키며 고단한 삶을 이어갔는데 뮤지컬 비애비는 권력의 이동을 위해 벌였단 로열 패밀리 간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역사적 진실과 남편인 단종을 잃은 정순왕후의 숭고한 사랑을 표현해 낸 작품이다.

하지만 무대장치와 조명의 조악함, 어울림이 부족한 의상과 춤 그리고 볼륨 체크마저 실패한 음악이 공연 내내 깊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연 여배우의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이 관객들을 조금이나마 감동시켰다. 비애비,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진실과 진정성은 훼손 되지 않을 것이며 단종과 정순왕후의 마지막 이별의 장소가 된 청계천 영도교는 언제까지나 수많은 연인들이 오고가는 명소가 되어 줄 것이다.

   
오를레앙허(본명 허성우)/작곡가/재즈피아니스트

음악교육과 전공, 프랑스 파리 유학.
IACP, 파리 빌에반스 피아노 아카데미 디플롬, 파리 에브리 국립음악원 재즈음악과 수석 졸업.
재즈보컬 임미성퀸텟의 1집 ‘프린세스 바리’ 녹음 작곡과 피아노.
제6회 프랑스 파리 컬러즈 국제 재즈 페스티벌 한국대표(임미성퀸텟)
제1회 한전아트센터 재즈피아노 콩쿨 일반부 우승
현재 숭실대, 한국국제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