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망가짐(?)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망가짐(?)에는 이유가 있다!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4.22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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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서주희, 오지혜가 말하는 연극 <대학살의 신>

(서울문화투데이=정지선 기자)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의 안위가 걸린 문제 앞에서 우아는 사치일 뿐이다. 아무리 변호사고 작가면 뭐하는가. 유치하게 말꼬리 잡기는 기본에 치열한 몸싸움은 옵션인데……. 연극 <대학살의 신>에 등장하는 두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은근히 얄밉기까지 하다. 그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너무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20년 넘는 세월을 알고 지냈지만 단 한번도 같은 무대에 서본 적이 없다는 서주희(우)와 오지혜(좌) 

늘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인 변호사 알랭(박지일)과 그런 무성의한 남편에 진저리를 치는 아내 아네트(서주희). 사회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픈 작가 베로니크(오지혜)와 아내를 실망시키기 않기 위해 애쓰다 결국 폭발해버리고 마는 남편 미셸(김세동). 그들은 따로 또 같이 환상의 호흡을 맞춰가고 있었다.

잠자고 있는 코미디 본능을 제대로 살려낸 배우 서주희와 5년의 연기공백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 오지혜를 만났다. 저녁 8시 공연을 앞둔 두 여배우와 기자에게 허락된 30여분,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을 뒤로한 채 그들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 뻔한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빠뜨릴 수 없는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웃음) 연극 <대학살의 신>은 어떤 내용인가요.

너무 능청스러운 연기에 얄밉기까지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한마디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바뀌는 극이죠. 처음에는 지성인답게 해결하려고 모이지만 자식 관련한 문제들이 걸려있으면 어디 끝까지 우아할 수 있나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두 부부가 서로 싸우고, 급기야는 부부끼리 의견충돌로 싸우게 되요. 그 과정을 통해 중산층 지식인의 허울을 까발린다고 할까요.(오지혜)

- 지금까지 해오던 작품들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데요. 이번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배우 서주희로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무척 행복하거든요. 지금까지 해온 작품에서는 인간 심연의 감정을 끌어내고 표현하느라 힘들었죠. 제가 역할(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거든요. 한편으로는 팀워크가 너무 좋아요. 보통 연극을 하다보면 팀원들 사이의 라이벌 의식 또는 신경전이 있기 마련인데, 전혀 없고요. 오히려 서로 아껴줘요. 제 생활 자체가 밝아졌어요.(서주희)

- 5년만의 공백을 깨고 (연극)무대에 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영화나 드라마는 컷 단위로 작업하는데 반해 연극은 한 호흡이 길잖아요. 이번에 <대학살의 신>을 준비하면서 최근에 작품을 얼마나 했는지가 중요하단 것을 알았죠. 연습을 하는데, 나 자신에게 놀랐어요. 내가 이렇게 금방 잊을 줄이야 하면서 말이죠. 수영이나 자전거는 한 번 익혀두면 몸이 기억하잖아요. 그런데 연기는 그렇지 않은가 봐요. 연습기간이 제겐 자신과의 싸움이자 고통의 시간이었어요.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하면서 후회도 했고요.(웃음)

전 연극이라는 장르가 공동 작업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믿음과 배려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거든요. 굉장히 미련한 작업이죠. 아무리 관객이 많아서 연장한다고 해야 2만이에요. 시청률로 따진다면 글쎄요… 자정 시간대 편성되는 정도? 연극은 그 특성상 대중성으로 승부를 보긴 어렵고요. 퀄리티, 작품성 또는 완성도로 접근해야죠.(오지혜)

서주희(아네트)의 구토 장면

- 아네트의 구토 연기는 매우 실감나고, 인상적인데요. 매 공연마다 연기해야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것 같아요.

정말 힘들죠. 연기하다보면 위액이 올라오기도 하고요. 에피소드지만 코로 국수가닥이 넘어온 적도 있어요.(웃음)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있는데요. 원작에도 실제로 구토 장면이 있어요. 구토 장면의 노하우를 알아내려고 노력했지만 극비라서 결국 알아내지 못했고요. 자체적으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구토 장면이 만들어졌죠. 노하우를 궁금해 하는 관객들이 많은데요. 저희 역시 그 노하우는 극비입니다.(서주희)

-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 베로니크 역과 많이 닮아 있으세요. 연기를 하기에는 오히려 편할 것도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연기할 때 편한 부분이 있죠. 우선 연기하는 캐릭터가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니까요. 스토리나 캐릭터가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요. 연기하면서 평소 제 잔소리를 들어온 남편이 제일 많이 생각났어요.(오지혜)

- 이 작품은 현대인의 소통 부재를 꼬집고 있어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타인과 소통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그런 노래가 있었죠.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그 노래에서처럼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요. 쉽진 않지만 노력하며 살죠.(웃음) 정혜신 박사가 말하길, 세상엔 온통 배신당한 사람뿐이다. 배신당한 사람은 많은데, 배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지만 타인의 행동은 결과부터 이해한다고요. 동기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하죠.(오지혜)

누구보다 연극을 사랑하는두 배우, 서주희(좌)와 오지혜(우)

-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학살의 신> 관련한 질문은 아닌데요. 앞서 말씀하셨듯이 다른 장르에 비해 연극이라는 장르는 모든 면에서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두 분은 연극무대에 오래 그리고 꾸준히 서고 계십니다. 연극 작품들이 대중과 친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관객에게 있지 않을까요. 연극은 시간예술이자 현장예술이에요. 배우와 스태프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할지라도 그건 50%에 불과해요. 나머진 관객의 몫이죠.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단순히 관람하는 게 아니라 참여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죠. 좋은 관객이 좋은 연극을 만드는 법이니까요. 팔짱낀 채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겠다는 관객보다는 배우를 따라 웃고 우는, 흥을 갖고 즐기는 관객들이 함께할 때 더 좋은 연극이 만들어지거든요.(오지혜)

저도 지혜씨 말에 공감해요. 연극 관객은 그야말로 특별하죠. 가격 면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투자하는 시간 면에서도 차이가 많죠. 미리 공연을 선택해 예매하고, 공연장을 찾아오고, 관람하기까지 거의 하루가 걸려요. 배우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것처럼 관객도 공연을 준비하죠. 저는 관객도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연극 관객은 소수지만 그 자세부터 다르다고 할까요.(서주희)

짧은 시간 동안 가진 인터뷰였지만 그들의 열정과 프로의식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미셸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입장이라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죠.” 배우 오지혜는 이 대사가 연극 <대학살의 신>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불편(?)하기까지 한 연극 <대학살의 신>의 두 주역. 그들이 있어 관객들은 더 많이 웃고 울게 되리라. 믿어지지 않거든 극장을 찾아 그들의 연기를 직접 보고 판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