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만나는 역동의 시기, 6세기 신라
문자로 만나는 역동의 시기, 6세기 신라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4.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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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령반포, 영토확장 등의 흔적 문자기록으로 남아

(서울문화투데이 정지선 기자)‘덕업일신 망라사방’의 뜻을 아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널리(?) 알려진 이 문구로 시작되는 전시가 열렸다. 거두절미하고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6~7세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신라, 그 시대에 남겨진 문자를 주제로 상설전시관 1층 신라실에서 6월 20일까지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전을 연다.

6~7세기 신라는 우경을 통한 농업발전을 기반으로 정치체제를 정비했고, ‘마립간’이라 부르던 왕의 호칭을 ‘왕’으로 바꿨으며, 국호를 ‘신라’라 정했다. 또한 율령반포, 불교공인, 영토 확장 등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이는 당대 신라인이 남겨놓은 문자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문자기록은 명문(銘文)있는 금속기와 비석, 목간, 토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넓어진 영토에 기념비를 세우다’를 비롯해 ‘체계적으로 지방을 다스리다’ ‘각지로 퍼져가는 신라문화’ 등의 주제로 나눠 진행, 당시 신라의 성장모습을 만날 수 있다.

5세기 고분에서 출토된 문자자료부터 비석 포항 ‘중성리비’와 북한산 ‘진흥왕순수비’(국보 제3호)까지 만날 수 있다. 포항 중성리비는 신라가 지방주민을 율령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비석이며,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는 진흥왕대 신라의 영토확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임신서기석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특별코너에 전시된 ‘임신서기석’이다. 1934년 경주에서 발견된 이후 서울로 첫 나들이를 나선 임신서기석(보물 제1141호)은 화랑의 맹세로, 그들의 굳은 맹세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신라가 지방관을 파견, 문서행정을 통해 지방을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문서에 해당하는 목간과 글씨가 쓰인 토기들은 당시 신라가 세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 문자를 통해 지배를 완수하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전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신라실에서 6월 20일까지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