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가 윤동주를 노래하자
이젠 우리가 윤동주를 노래하자
  • 박영우/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 대표,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0.04.2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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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지난 2월 16일은 시인 윤동주가 암울했던 조국광복을 불과 6개월 남겨두고 옥사를 당한지 65주기가 되는 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서투른 한국말로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서시“를 암송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화의 영혼을 가진 청년시인이 28세의 생을 군국주의의 제물로 희생된 시대의 비운에 눈물을 흘린다.

지난 2월 14일 후쿠오카 형무소 담 밖에서 후쿠오카 시민들로 구성된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교사 주부 의사 회사원등이 주축이 되어  매년 추도 모임을 해오고 있다. 이 모임은 1995년12월에 만들어져 매월 한 차례씩 150여 차례 모여 윤동주 시를 읽고 있다.

 2월13일 교토에서도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는 교토시민 모임이 15년째 윤동주 추모 모임이 열렸으며 지난 2월20일은 국립 도쿄가쿠게이대학, 릿쿄대학에서도 일본인들이 모여 시인의  영혼을 기리며 추모제를 열었다.

  한편 교토 우지시민들은 우지강변에서 아리랑을 부른 윤동주의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의 평화정신을 기념하기 위한 윤동주 시비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안자이 이쿠로)를 결성 윤동주 시비건립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5월에는 윤동주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일본인 야마하시 겐조 씨는 대학시절 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매료되어 한국을 100번 넘게 여행 했으며 앞으로 100번 더 한국을 여행하여 지역축제를 섭렵하며 더 진한 한국문화에 젖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시인의 아름다운 문학정신과 굴절된 역사를 기억하는 일본 시민들의 정신을 보며 이처럼 한국의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이유가 뭘까?

 윤동주의 시와 정신이 우리들 가슴속 마음의 고향이듯 그들의 마음에도 참회의 양심적 본향이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선진시민의식이 머물러 있어 그럴까? 그럼 미국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시인의 양심에 근거한  자기희생적 실천적 삶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사상운동 혐의로 수감 28세 나이에 옥사를 당하기까지 사랑과 평화를 실천한 세계 유일한 시인으로 인간 자유의 존엄성을 세계에 전파하는 자랑스러운 시인이다.

 우리를 부끄럽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윤동주 시인의 묘지를 일본인 오오무라 마스오(전,와세다대학 교수)가 찿아 냈다는 사실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미국에도 워싱턴 LA 등 9개 도시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모임이 있으며 뉴져지에는 윤동주 시 제목을 딴 이름의 <눈오는지도> 밴드를 결성, 시인의 15편 시를 작곡하여 미국을 순회하며 윤동주를 노래하고 있고 지난 2월16일에는 국내 처음으로 윤동주를 좋아하는 시민들이 서울시 종로구 청운공원 윤동주시인의 언덕에서 추모제를 지냈다.

 한국인은 윤동주를 제일 좋아하고 그의 시를 가장 많이 읽고 민족에 큰 영향을 준 시인으로 여기고 있다.

 국 내,외에도 추앙받는 저명한 문인들이 많지만 윤동주만큼 우리들 가슴에 찬미 할 모든 조건을 갖춘 문인은 없다.

 첫째 윤동주는 사춘기 소년 소녀 같은 청순한 감각으로 서정시를 썼기 때문에 보편적 다수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둘째 민족을 사랑한 윤동주는 강인한 항일 저항정신을 지니면서도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며 이를 겸허하고 유연한 언어로 써나갔기 때문에 다수 독자의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

 셋째 그는 항일 민족 시인이지만 그것은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인간의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는 자들에 대한 저항이며 그 기본 정신은 평화주의이며 인도주의적이기 때문에 결코 선의의 타 민족에 대한 배타주의가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설파한 예수의 사상과 일치한다.

 넷째 윤동주의 정신은 염치사상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 그의 사상은 정신적 순결 주의이고 그것은 우리 전통의 염치사상과 다름없으며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 정신이다.

 다섯째 시인이 후기에 남긴 가장 빛나는 시는 사명시이다. 우리 민족 또는 온 세상에서 고통 받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그를 통해서 우리도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놀라운 자각을 갖게 된다. 그것은 민족을 위한 사명이고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명이며 인류평화를 위한 사명이기에 윤동주 문학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사업은 작게는 문학운동이고 민족 문화운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 평화운동이 되는 것이다. 윤동주가 그 길을 걸어가다 마침내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깨끗하게 옥사를 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굴욕적 민족사에 쉽게 흥분하면서도 과거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는 일은 정부관계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주권시민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역사와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하며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는 일이 진정한 선진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윤동주의 19편 육필원고를 보존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유고시집을 펴낸 역사적 배경의 새해 KBS1 TV 공익광고가 떠올랐다. "국문학자 정병욱은 조선청년의 정신을 지켜냈습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부른 윤동주의 노래, 2절은 우리가 세상에 나서서 불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