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비 정순왕후와 여성해방 메시지
단종비 정순왕후와 여성해방 메시지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4.2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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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여지 없었던 삶...이땅 여인들 삶이 되다

 피아노의 시인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전에 들었던 것과 실상이 좀 다르다고 한다. 김정운 교수(48 · 베를린 자유대학 심리학 박사 · 명지대 교수)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것은 한마디로 자존심 세고 명예심 강한 ‘똑똑한 여자’ 클라라의 연출이다. 김교수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슈만과 클라라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조사한 내용을 상세하게 매체에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천재적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슈만과 결혼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으로 비치는 게 싫어서, 여러 가지로 비합리적이며 잘못되었던 슈만의 뒤치다꺼리를 끝까지 감당하며 살았다. 결과 슈만은 ‘피아노의 시인’이란 위대한 명성을 얻고, 그의 일곱 자녀들은 잘 자랐지만 클라라 자신은 여인으로서 불행 했다.

 슈만은 원래 바람기 많은 사람이었다.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반대하던 클라라 아버지와 법정투쟁을 벌이면서도 다른 여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돈 많은 공작가문의 딸과 사귀며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 하다 그녀가 상속권이 없는 입양 딸임을 알고는 가차 없이 걷어 차기도 했다. 오랜 섹스파트너와 자주 즐기며 매독을 옮기도 했고, 동성애도 서슴치 않아 괴테의 손자를 사귀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클라라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며 늘 술병을 들었던 그는 아내 클라라에 대한 열등감도 깊었다. 클라라와 연주여행을 함께 하면서도 자주 싸웠고, 결국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다 죽고 만다.

 슈만의 이 같은 행적을 보면 클라라는 참 불행한 여인이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슈만을 잘못 만난 탓에 빛이 덜했고, 슈만 사후 40년을 더 살면서도 그녀를 쫓아 다니던 청년 브람스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심리학자 김 교수에 따르면 그녀의 이 같은 고집은 슈만과의 결혼이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직 슈만을 기억하며, 슈만을 위대한 ‘피아노의 시인’으로 만듦으로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똑똑한 여자’들에게 나타나는 자기에 대한 ‘과잉 정당화’라는 것이다. 어쨌든 클라라의 이 같은 희생덕분에 바람둥이 슈만은 명성에 걸맞는 ‘사랑의 전설’까지 이루어 냈다.

 19세기 서양의 여인이었던 클라라의 이런 삶에 비하면 15세기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의 왕후였던 단종비 정순왕후의 삶은 훨씬 더 비극적이다. 클라라는 슈만을 박차기만 했어도 청년 브람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음악과 시와 피아노가 있었다. 하지만 단종비 정순왕후는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목숨까지 빼앗긴 남편을 앞세우고 60년을 더 살았으나 비구스님으로 사는 길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클라라는 박차고 나갈 여지가 있었지만 스스로를 슈만에게 묶은 반면, 정순왕후는 그런 여지마저 없었다. 조선 사회와 혹독한 여성차별은 정순왕후로 하여금 여지없이 비구스님이 되게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동망봉(동쪽 영월을 바라본 봉우리)에서의 통곡과 기도, 자줏물 들여 옷감을 파는 처절한 생계활동, 그리고 비구스님으로서의 신분이었다.

 어찌 정순왕후 뿐이랴. 봉건 조선의 왕실 여인이 남편을 잃었을 때 갈 수 있는 곳은 비구스님의 길뿐이었다. 정순왕후는 그런 조선 왕실여인, 또는 민간 여인들의 제한된 삶을 대표해서 살아낸 표징으로 보인다. 그녀를 통해 과거 이나라 여인들이 겪었을 혹독한 속박과 차별, 그런 와중에 꿋꿋하게 버텨낸 처절한 삶을 체감한다.

 이달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망봉 일대와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이어질 ‘제3회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제’ 행사는 이제 왕후의 비극을 추모하는 선을 넘어 아직까지 이 땅 곳곳에 스며있는 여성차별과 속박의 끈을 끊어버리는 의미로도 재해석했으면 한다.

 정순왕후의 서원을 풀어주는 것은 곧 그녀를 해방시키는 것이며, 그녀에 대한 해방은 이 땅 여성들을 짓누르는 각종 차별과 속박을 끊어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로구와 종로구 문화관광협의회가 최근 발굴하고 창작해 낸 뮤지컬 정순왕후 <비(妃) · 애(愛) · 비(悲)>와 <정순왕후 추모제>행사가 성공적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