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쓰는 소프라노’, 장선화의 매력에 빠지다
‘모자 쓰는 소프라노’, 장선화의 매력에 빠지다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5.06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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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다가가고 관객이 오픈할 때 오페라의 대중화는 이뤄지죠”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는 사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며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사람. 어렵기만 한 오페라를 대중적인 형식으로 풀어내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사람. 소프라노 장선화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카그(KAG)아트 방배홀에서 만난 인간 장선화와의 인터뷰는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와의 대화처럼 편안하고 진솔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끝없는 열정의 욕심쟁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열렸던 음악제에 참여해 노래를 불렀던 소프라노 장선화는 당시 그녀의 무대매너와 목소리를 본 선생님의 권유에 의해 성악의 길에 발을 내딛게 된다. 예술계열이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서, 그것도 남들보다 늦게 성악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노력했다.

그 결과 <천지창조>, <메시아>, <레퀴엠>, <9번 교향곡>, <장엄 미사> 등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미사곡 등의 소프라노 독창은 물론, 오페라 <사랑의 묘약>, <피가로의 결혼>, <돈죠반니>, <돈파스쿠알레>, <헨젤과그레텔>, <마술피리> 등 걸출한 작품들의 주역으로 출연, 한국 오페라계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했다.

작품을 한 번 하게 되면 그 안에서 맡은 배역으로 3개월가량 동화되어 살아갈 정도로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소프라노 장선화. 가장 애착이 가는 배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민하던 그녀는 도네지티 원작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여주인공 ‘아디나’를 꼽았다.

“‘아디나’는 밝고, 명랑한, 한편으로는 거만한 부잣집 딸이에요. 이전까지는 항상 순수하고, 조용하고, 착하고, 얌전한 역할만 했었기에 소화해내기 힘들었어요. 실제 성격도 그렇지도 못하고요. 정말 보이지 않게 상당히 노력했었어요”

오는 5월 오페라 <마술피리>에 ‘파미나’역을 시작으로 여러 오페라와 독창회가 예정되어 있는 그녀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또>의 여주인공 ‘지르다’역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굉장히 가난하고, 생활의 굴곡도 많은,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인물이에요. 정말 기존에 제가 해왔던 희극과는 다른, 비극이면서도 캐릭터가 강한 역할이죠. 또, 오페라에선 볼 수 없는 배역이긴 하지만 마약 중독자나 알콜 중독자같은 독특한 배역도 해보고 싶어요”

◈독일로 유학을 떠나다

이처럼 무난하거나 편안한 것이 아닌, 여러 가지에 도전하고픈 열정으로 수많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에게도 위기나 슬럼프가 있었을까. “중간 중간에 오는 크고 작은 슬럼프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쉽게 넘어간다”고 말하는 그녀는 독일 쾰른 국립음대 석사과정을 위해 독일에 유학 갔던 때를 회상했다.

“유학생활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석사를 받기위해 입시를 준비할 때 아무 이유도 없이 두 달간 목소리가 안 나온 적이 있었어요. 정말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이었죠. 하지만 목에 피가 날 정도로 계속 열심히 연습을 했고, 그러다 어느 순간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무사히 잘 마치게 됐죠”

그녀는 대학생시절 마스터 클래스에서 자신을 가르쳤던 미국 선생님의 가르침이 자신과 너무나 잘 맞아 원래 미국 유학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목소리 음색이 독일 쪽에 더 맞다’는 주위의 평가로 무작정 독일로 떠나게 된 그녀. 노래뿐만 아니라, 인생과 철학까지 배운 독일 유학시절을 후회하진 않지만 미국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미국이라는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어떤 학교의 어떤 선생님한테 배우는가가 중요하죠. ‘어떤 선생님이 좋다’ 하면 그분이 어느 나라에 계시던 그곳으로 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에 서는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한다는 게 제 생각이자 하나의 욕구이기도 하고요”

독일은 문화강국 중 하나이다. 특히,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와 같이 클래식과 관련한 유명인들의 나라이자, 가곡과 오페라의 나라이다. 오늘날 독일 오케스트라에 의해 ‘한국 환상곡’이 연주되고, 우리나라의 많은 성악가들이 독일에 진출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독일에서 우리나라의 인지도는 얼마나 높은 수준일까.

“한국인들의 소리가 고급스럽고 좋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그쪽 오페라 극장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 보면 한국 분들이 많아요. 합창단뿐만 아니라 주역으로 계시는 분들도 상당수 계시죠. 한국 분들이 굉장히 노력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해요. 인지도도 많이 상승하고 있고요. 물론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승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다양한 장르에서 에너지를 얻어

소프라노 장선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악가의 이미지와 달리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다. “요즘 시대는 비주얼이 굉장히 중요하기에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며 평소 이틀에 한번 6km씩 조깅한다는 그녀에게 하나의 악기이자 생명인 목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어봤다.

“먹고 싶을 때 잘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자죠. 평상시엔 말을 많이 하지 않기도 하고요. 특히, 밤에 음식을 많이 먹으면 다음 날 목소리가 굉장히 거칠어지고, 역류성 식도염의 위험도 있기 때문에 자제하는 편이죠”

최근 미국 팝가수 브라이언 맥나잇의 공연을 보면서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는 그녀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을 많이 보는 것’을 자신만의 남다른,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관리방법 중에 하나라고 설명했다.

“제가 지금 음악을 하는 건 클래식을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싶어서거든요. 그러다보니 대중들이 많이 좋아하는 공연들을 보면서 많이 에너지를 공급받아요. 그래야 무대 위에 섰을 때 얻은 만큼의 많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노래를 잘 하기 위한 나름의 훈련방법으로 “아직도 노래하기 전에 발성연습을 한다”며 ‘가장 기본에 충실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소프라노 장선화는 그녀가 소속된 오페라M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독일에서 귀국하고 석 달 정도 후에 아는 분을 통해서 오페라M 대표님을 소개받았어요. 그 이후부터 인연이 돼서 같이 공연을 많이 했죠. 계약서에 의해 월급을 받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일종의 명예 회원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인연’과 ‘의리’를 강조했다.

“이 단체가 처음 문을 열면서부터 함께 해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모습들을 봐왔죠. 많은 연주들을 함께 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쌓였고요. 또, 제가 의리가 좀 있거든요(웃음)”

◈배우와 관객, 모두가 노력해야

소프라노 장선화는 관객들에게 ‘모자 쓰는 소프라노’로 유명하다. 매 공연마다 각각 다른 수많은 모자들을 쓰고 나오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는 관객에게 질문하고 대화하기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오페라의 매력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오페라 전도사’인 그녀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관객들도 같이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제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관객들도 약간의 의지를 갖고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람 사이도, 연인도, 부부도 다 그렇듯이 말이죠”

지금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뮤지컬도 처음에는 ‘그냥 그런 걸 하나보다’ 정도의 관심으로 시작했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오페라도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들 정도로 확대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너무 어렵다’고 고개만 내저을 것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아울러 클래식에 대한 오픈마인드의 자세도 필요하다. 무대  위의 배우가 관객들에게 아무리 에너지를 쏟아내고 공급해봤자 마음을 닫고 차단해버린다면 그것은 튕겨져 나와 증발해버릴 뿐이다.

“사실 오페라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사람 살아가는 내용이다 보니 다 비슷비슷하고 구성도 간단하거든요. 공연을 보러 오시기 전에 줄거리 정도만이라도 한 번 읽고 오시면 이해하기도 편하고 더 와 닿을 수 있어요. 스토리도 모른 채 그냥 티켓하나 들고 와서 자막만 보고 이해하려고 하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게 되요”

사실 일반인들이 뮤지컬과 달리 오페라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적 이유도 있겠지만 그 표현방식에 있다. 대사 없이 노래와 음정만으로 모든 것을 얘기하고 표현하는 오페라는 움직임이 많이 없기 때문에 가무(歌舞)를 즐기는 우리 민족과 잘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 소프라노 장선화는 이러한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그녀가 하는 오페라는 뮤지컬만큼 많이 움직이면서 댄스도 곁들이는 이른바 ‘퓨전오페라’다.

“제 공연을 보신 많은 관객 분들이 ‘오페라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있구나’하면서 많이 좋아하셨어요. ‘재미’라는 건 내가 내 눈높이에서 같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거지요. 지금 대부분의 오페라처럼 가수 역량 위주로만 가면서 고급이미지만 유지하는 것은 관객들을 더 멀어지게 할 뿐이죠”

힘들지만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그녀는 변화의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배우들도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철저한 자기관리 못지않게 관객을 나와 동등한 눈높이로 봐줘야한다는 것도 중요해요.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서 인사하고 사인도 해줄 수 있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는 느낌이 중요한 거죠”

‘열심히 하루하루 살다보면 40대엔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 향후 10년의 계획이라는 그녀는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본인 자신이에요. 내가 나를 정말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올바른 삶을 살면 다른 이들도 나를 정말 가치 있게 여기고 사랑해줘요. 그렇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를 좋아한단 이유 하나만으로 좋아하고 따라주게 될 거예요”

장선화 프로필

경희 대학교 성악과 졸업
독일 쾰른 국립음대 석사
독일 베어하임콩클 입상
독일 쾰른 국제가곡콩클 입상
몰도바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
독일 뒤셀도르프 ‘하이네 슈만의 해’ 기념음악회 초청
독일 <벡슈타인 홀>  ‘100번째 기념연주’ 초청
삼익 벡슈타인 및 BC카드 초청 독창회
현재 한국 예술학교 출강, Opera M 정단원, 독일가곡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