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은 나의 레인맨
[리뷰] 당신은 나의 레인맨
  • 박소연 기자
  • 승인 2010.05.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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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찬란한 시간, 연극 ‘레인맨’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에 몰래 눈물을 훔치는 이가 있었다. 사내는 비를 긋는 것도 잊은 채 빗방울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라고 말하던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 아이는 내리는 비가 자신의 눈물을 대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끝내 울지 않았다. 대신 사내의 눈물을 영원히 기억했다…”

연극 ‘레인맨’에는 감성의 울림을 위한 섬세한 여백이 곳곳에 자리해있다. 아늑한 조명과 분리된 듯 하나로 이뤄진 공간의 구성, 읊조리듯 흥얼거리는 비틀즈의 나지막한 음성은 레이먼과 찰리의 필연적 숙명을 잔잔하게 풀어낸다. 공연의 시작과 끝부분에 무대에 홀로 앉아 대사를 읊조리는 레이몬의 모습은 그의 삶처럼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하다. 하지만 노란빛의 따듯한 조명이 그에게 드리운 순간, 그는 혼자만의 어둠 속에서 벗어나 세상의 빛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조명은 다시금 늦은 밤 전화로 수잔나에게 수줍은 프러포즈를 건네던 찰리에게로 향한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레이몬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기억을 되찾은 찰리는 감회에 젖어 소파에 앉아 있다가 문득, 수잔나에게 전화를 건다.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비정한 인터넷 주식 트레이너 찰리는 레이몬으로 인해 스스로가 쌓아놓은 견고한 벽을 조금씩 허물고 세상 밖으로 쭈뼛쭈뼛 걸어 나온다. 수잔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어색하지만 수줍은 걸음걸이로 한 발짝 다가서는 찰리의 등 뒤에는 어느새 노란빛의 따듯한 조명이 드리워져 있다.

비틀즈의 노래는 또 어떤가. 잠든 찰리에게 들려주던 레이몬의 노래는 ‘레인맨’의 위로와도 같은 삶의 위안이자 바래지지 않는 꿈이었다. 레이몬에게 비틀즈의 노래는 찰리의 미소를 바라볼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인맨’이 다름 아닌 ‘레이몬’이었다는 사실을, 팔의 화상은 자신을 지키려했던 ‘레인맨’과 역시 자신을 지키려했던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 찰리는 형 레이몬과 함께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 위로 나지막하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러한 여백들은 배우들의 연기로 한껏 증폭된다. ‘어~어’의 음감은 손종학 배우에 의해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에서 자연스런 친근감과 수줍음으로 완벽한 변신을 꾀한다. 찰리의 차가운 음성은 강필석 배우의 맑은 음성에 덧대어져 어느 순간 따스해진다. 리얼로 진행되는 ‘축구공 리프팅’은 생동감을 선사하며, 몸에 손가락하나 댈 수 없게 하던 레이몬의 손을 이끌어 춤을 알려주는 두 형제에게 이어진 긴 여운은 감성의 울림을 하나 가득 채워낸다.

연극 ‘레인맨’은 가득 채워진 울림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채 극장문을 나서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한 마디 덧붙인다. 만약 공연을 보는 내내 ‘레인맨’이 그리웠다면, 바로 지금, 당신의 ‘레인맨’을 향해 주저 없이 달려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