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내 인생의 선물”
“발레는 내 인생의 선물”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5.12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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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국립발레단 최태지 예술감독

[서울문화투데이=정지선 기자] 인터뷰를 하다보면 다양한 유형의 인터뷰이를 만나게 된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짧게 ‘네’ 혹은 ‘아니요’라고 답하는가 하면, 간단한 질문에도 한 편의 소설(?)로 답하는 센스를 가진 인터뷰이까지. 이럴 때면 기자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국립발레단 최태지 예술감독은 그런 면에서 최고의 인터뷰이였다. 조금은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발레를 향한 열정과 발레단에 대한 사랑은 한 치의 부족함도 없어보였다.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발레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발레로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최 감독. 그가 발레 그리고 사랑하는 두 딸들, 국립발레단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최태지 예술감독

발레가 어렵다고요?

아직까지도 대중에게 있어 발레는 ‘고급예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최 감독은 국립발레단의 주력사업 중 하나로 ‘해설이 있는 발레’를 들었다.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최 감독은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씩 달라져가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처음에는 발레 관객들이라고 하면 발레 관계자들 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극장장님이 그런 말을 했죠. 자기들끼리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알리지 않는데 누가 오겠냐고요.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그때부터 직접 발로 뛰면서 알리기 시작했죠. ‘해설이 있는 발레’를 시작했는데,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갈라쇼 형식으로 진행했어요. 소극장 공연이라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땀 흘리는 모습까지도 관객들이 볼 수 있었죠. 무료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유료지만 저렴하게 바꿨어요. 발레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어려운건 모르기 때문이고, 모르는 것은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막연한 편견이랄까요. 이젠 백화점도가고, 야외무대도 가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발레를 알리기 위해 직접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거기서 보람을 느끼죠.”

해설발레는 일석이조!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한지 오래다. 유료 관객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대중들에게는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 좋고, 발레 단원들에게는 자신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는 ‘해설이 있는 발레’, 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최 감독은 사실 ‘해설이 있는 발레’로 발레의 대중화를 시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설 무대가 부족했죠. 스타도 키워내고 싶었고요. 무대를 많이 만드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 경험이 중요한 만큼 무대의 크기는 중요치 않아요. 관객들은 가까이서 공연을 즐기고, 단원들은 무대에 서면서 경험을 쌓고요. 누구보다 단원들 스스로가 무대에서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리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하나같이 모두 소중한 작품이라 그 중에서 하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고심 중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덜 아픈 손가락도 더 아픈 손가락도 있기 마련이다. 최 감독에게는 평생을 함께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그에게 있어 더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존재의 작품은 무엇인지 물었다.

“교포로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왕자호동>에서 프리마돈나로 무대에 섰을 때가 제일 많이 기억나요. 1988년 올림픽을 치룬 해라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웃음) 국립발레단은 시즌별로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데, <왕자호동>도 올라가죠. 제겐 여러모로 특별한 작품이죠.”

테크닉 아닌 몸으로 연기해야

그는 국내 최초 스타마케팅을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현재 국립발레단의 스타급 발레리나 김주원과 김지영도 스타마케팅의 수혜자인 셈이다. 최 감독은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기교육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가 발레학교 설립을 위해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부모님들은 무조건 일찍 배우기 시작하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에요. 너무 일찍 배우기 시작하면 인내심 없는 발레리나 또는 발레리노로 성장할 수 있거든요. 어릴 적에는 음악적인 감각을 키우는 게 좋아요” 최 감독은 한 단계씩 차분하게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문적인 발레교육과 세계적인 발레리나 육성을 위해 발레학교의 필요성을 제기, 추진 중이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도 슈투트가르트에서 주역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잖아요. 천천히 한 단계씩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죠. 전 최고의 발레리나는 예술성이 가미된 드라마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발레학교가 필요한 겁니다” 그는 테크닉이 아닌 몸으로 연기하는 발레리나를 키워내야 한다고 했다. 발레리나라고 발레만 할 게 아니라 연극이나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종의 크로스 오버랄까.

엄마가 많이 미안해~

발레하면 동화 속 공주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일종의 발레에 대한 환상이자 향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발레가 동화 속 공주를 연상시키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하지만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 순수함을 되찾아주는 것 역시 발레라면서 무용수들을 순수한 눈으로 바라봐주길 당부했다. 그에게 있어 발레단원들은 자식인 동시에 무용수의 삶을 한걸음 뒤에서 뒤따르는 후배이기에 엄마가 자식을 아끼는 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됐다.

최 감독의 딸도 발레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딸만은 발레리나의 길을 걸어가지 않길 바랐다고 했다. “아이들에겐 항상 미안해요. 애들은 늘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같다고 그랬거든요. 사춘기 시절에는 반항도 많이 했죠.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 선생님을 찾아뵙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몇 반인지도 몰랐으니까요. 가족들에게 큰 희생을 요구했던 저라 같이 많이 울기도 했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발레단 식구들도 챙겨야하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열심히 살아온 절 많이 인정해줘요.”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늘 미안한 마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침 인터뷰 중에 딸로부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외국으로 출국 전에 공항에서 건 전화인 듯 보였다. ‘도착하면 전화해라’, ‘조심해라’ 등의 대화가 오가다가 인터뷰 중이었다고 하니 오히려 딸이 먼저 전화를 끊으라고 재촉했다. 딸들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가가 촉촉해진 최 감독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진심은 통하는 법

최 감독은 재일교포다. 서툰 한국말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국립발레단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일을 반복했다. 격식을 차리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자리를 가졌지만 그는 망설임 끝에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자존심을 세워서 될 일이 아니더라고요. 서툰 말이지만 진심은 전달된다고 믿었죠. 둘째 딸이 하루는 그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처음부터 한국말을 배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잘할 수 있냐고요. 오히려 엄마가 당당해져야 한다고요. 용기를 얻었죠.”

마음먹은 대로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사람들 앞에서 더욱 긴장됐지만 더 독하게 마음먹었고, 정동극장 극장장으로 재직하면서는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린 그였다. 평생 발레를 해온 그에게 연극과 뮤지컬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였다.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고.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는 발레학교 설립이다. 관계자들을 열심히 설득 중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키워내기 위해 발레학교 설립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재능이 있어도 사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해요. 국립발레단이 존재하는데 발레학교 하나 없다는 게 안타깝죠. 이제는 교수님들도 이해해요. 16살이면 충분히 프로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나이에요. 좋은 무용수를 만드는데 국가가 앞장서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러시아 볼쇼이 국립극장 무대에 서는 국립발레단

드디어 볼쇼이 국립극장 입성!

2010년 올 한해는 그에게 있어서 그리고 국립발레단에 있어 특별한 해이다. 국립극장 소속으로 있다가 법인화되면서 예술의전당 상주단체로 들어온 국립발레단. 이후 유리그로가비치가 10년간 함께했고, 드디어 올해 볼쇼이 국립극장 무대에 선다.

“너무 행복해요. 볼쇼이 국립극장에 선다는 건 20년 전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 동안 많은 발레지도자들이 세계와 교류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이 그가 국립발레단을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올해 예산으로 100억을 얻어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기존 4편 올렸던 작품을 7편으로 늘렸어요. 프랑스 안무가 롤랑프티를 모셔 특별함을 더했고요. 클래식 레퍼토리도 필요하지만 명품도 무대에 올려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죠. 올해는 무엇보다 우리 국립발레단이 볼쇼이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개 극장에 서는 행복한 한 해가 될 겁니다”

발레 생각만으로도 므흣~

최 감독에게 발레는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가족들을 챙기지 못해 미안해하면서도 서툰 언어로 상처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발레를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발레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찾은 최 감독은 더 많은 이들이 발레를 통해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발레리나였을 때는요. 무대에 서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제 자신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면 현실이 아니라 꿈을 꾸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 제가 행복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보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발레를 고급예술이라고들 하지만 그냥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게 만드는 선물이에요.”

발레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을 수 있어 좋았다는 최 감독.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일한다는 사실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발레를 시켜준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의 두 딸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그런 예술을 지향하는 최 감독이 있어 우리 발레의 미래는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