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추억이 흐르는 거리
먼지 쌓인 추억이 흐르는 거리
  • 박솔빈 기자
  • 승인 2010.05.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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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지하상가 'LP거리'

[서울문화투데이=박솔빈 기자]회현지하상가에서는 옛 음악의 냄새가 난다. 충무로부터 천천히 걸어 계단을 내려가는 그 길이 마치 과거로 떠나는 타임머신 같다.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을 보면 지상에도 즐비한 카메라점과 옷가게, 안경점, 중고우표상이 늘어서 있고 저~기 한 켠에 중고레코드점 10여 곳이 박제돼 있다.

60년대 중반, 명동 중앙우체국 일대부터 광화문, 정동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레코드를 수집하던 음악상들이 차린 ‘음악사’들이 LP거리의 시작이었다. 이후 90년대 초 재개발로 땅값이 치솟자 임대료가 남대문으로 옮겨와 자리잡게 됐다.

그 시절부터 줄곧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이 거리의 남자들 역시 피터팬처럼 자라지 않은 모습이다. 장발에 청바지를 입은 장년의 남자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좁은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 켜켜이 쌓인 수천 장의 음반들은 누렇게 변색된 모서리만큼의 세월을 안고 있다.

국내 최대 중고 LP레코드 거리답게 주로 LP레코드를 판매하지만 플라스틱 레코드의 전신인 1920~30년대의 돌(石)레코드부터 도넛판으로 불리는 SP, 최신 CD, LD, DVD까지 플레이(PLAY)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여있다.

비교적 흔한 라이센스 LP나 CD는 1장당 2천~5천원에 팔리고 원반은 1만~5만원선이다. 가요<팝송<클래식 순으로 가격이 올라가지만 보관상태와 희소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스위스의 거장 앙세르메가 지휘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LP음반은 7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을 정도다.

 

 

 

 

 

 

LP거리를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LP음반 마니아들이이나 음악관련 업계 종사자들이다. 음대생,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PD는 물론 인테리어를 위해 오래된 LP판을 짝으로 구매해 가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손님들을 상대하는 상점 주인들은 조금 더 좋은, 희귀한 음반을 구하기 위해 해외에서 몇주씩 헤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이런 집념은 수만 장의 음반을 소장하던 마니아였다가 가게를 차린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그동안 수지한 LP음반만 1000여 장이라는 한 손님은 “LP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어요. CD나 MP3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옛날의 맛이 나죠.”라며 LP음반의 매력에 대해 열변했다.

“LP음반을 들으려면 필요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스피커, 턴테이블, 앰프... 게다가 관리에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어가죠. 그치만 그런 번거로움이 LP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필름카메라의 귀찮음을 무릅쓰는 것처럼.”

희귀한 음반을 갖는다는 소유욕이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 좋은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일상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아 이곳을 찾는다는 그는 대여섯평 좁은 공간의 상점으로 사라졌다. 작은 가게 내부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로 포화 상태였다.

이처럼 회현지하상가 LP거리는 그저 사고파는 상점이 아니라 음악으로 소통하는 ‘사랑방’의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오늘 퇴근길에는 각박한 지상을 벗어나 아날로그의 향기에 취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