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진정한 쉼의 시작이자 하나의 축제
죽음은 진정한 쉼의 시작이자 하나의 축제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5.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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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에 담긴 조상들의 철학과 해학을 깨우쳐주는 쉼 박물관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쉼 박물관은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우리 조상들의 상례문화를 보전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더불어, 한 가정의 체취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정겨운 공간이다. 현실의 무게에 고민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들, 잠시나마 ‘몸과 마음의 쉼’이 무엇인가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쉼 박물관에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삶과 죽음의 공존

▲쉼 박물관 전경
고급 주택이 많은 서울 종로구 홍지마을 안에 위치한 쉼 박물관은 집 자체가 박물관인 독특한 공간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집을 개조해 사무실이나 카페, 식당 등 다양한 용도의 상업공간으로 쓰는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제껏 보아왔던 수많은 주택 개조의 관행을 벗어난 매우 독특한 사례다.

주거공간이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사례는 외국에선 흔한 일이다. 서양화가 구스타프 모로의 아파트를 개조한 모로 박물관, 프랑스의 문호 에밀 졸라가 살던 주택을 개조한 에밀졸라 박물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역사성과 함께 생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화상품으로의 가치도 매우 크다.

이런 점에서 쉼 박물관은 그 길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10월 문을 연 이곳은 전통 상례문화를 소개하는,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테마 공간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다

박물관은 크게 1층과 2층으로 구성돼있다. 상설전시실인 1층엔 쉼 박물관을 대표하는 상여와 요여가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 1층의 한 가운데엔 오늘날의 영정사진과 같은 역할을 했던 요여가 자리하고 있다
망자(亡者)의 시신을 운반하는데 쓰였던 상여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타는 가마로, 살아있는 동안 누리지 못했던 행복과 기쁨을 꽃, 용, 도깨비로 장식한 상여를 통해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상여에 꽂혀있는 다양한 목인(상여에 붙어 있는 목각 인형)들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해학을 엿볼 수 있다.

집 모양으로 생긴 요여는 고인의 영혼과 관련된 혼귀(魂鬼), 신주, 명기, 복완(服玩) 등의 물건들을 실은 작은 가마로, 오늘날의 영정사진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시신을 산에 매장하면, 육체는 산에 묻히지만 그 혼은 요여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빈소에 머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상여 보개(寶蓋) 앞뒤에 부착하는 반월형의 판인 용수판(龍首板)이 여러 개 전시돼 있다. 귀면(鬼面), 용면판(龍面板)으로도 불리는 용수판은 잡신을 물리치고 혼령을 지키는 벽사(酸邪)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더불어 정조6년(1782년) 영영(嶺營)에서 개간(改刊)했다는 기록이 있는 ‘상례비요’도 전시돼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나쁜 것들을 막아준다는 용, 현인이 나타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상상의 동물인 봉황, 십장생 중에 하나인 학, 부모를 공양하는 존재인 까마귀 등 여러 가지 동물 형상의 상여 장식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한 쪽에는 국장 형태로 유일하게 남아 치러지는 단종문화제를 목인들로 구성해놓은 재미있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수많은 목인들을 이용해 단종문화제를 재구성해놓은 모습
서양 앤티크와 함께 우리 유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침대방을 지나 테라스로 나가보면 박물관 뒤편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야외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이곳은 전 세계적으로 ‘빛과 공간의 예술가’라는 찬사를 받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 2008년 한국을 방문해 갤러리-미술관-박물관 공간 연합전시를 했던 곳 중 하나이다. 다른 박물관에서 그를 유치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자연적 조건이 마음에 들어 쉼 박물관의 야외무대를 선택한 것이다.

이때를 계기로 매년 한 번씩은 현대와 전통, 또는 미술과 비미술의 복합 전시, 행사를 열게 됐으며, 2009년 ‘죽음은 두렵지만 의식은 성대하고 유쾌하다(Create Your Funeral)’를 주제로 디자이너 임선옥의 패션 퍼포먼스가 열리기도 했다. 앞으로는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 전시를 기획중이라 하니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통로도 특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두 달 동안 선보이기도 했으며, ‘화려한 외출’이란 주제로 제프 쿤스(Jeff Koons) 의 작품을 특별 전시하기도 했다.

박물관 군데군데에서 집의 흔적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신발장과 수족관은 유리를 끼워 전시대로 활용했다. 창문은 유리를 가려 전시 선반으로 쓰기도 하고, 욕실 공간을 그대로 활용해 멋진 하나의 테마가 있는 방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처럼 쉼 박물관은 그동안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박물관과 달리 내 집과 같은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진정으로 멋진 곳이다.

박기옥 쉼 박물관 고문 인터뷰
“죽음은 끝이 아닌 다음을 위한 휴식기”

▲박기옥 쉼 박물관 고문이 우리의 상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픔이 명작으로 태어나다

쉼 박물관은 평범한 일반인인 박기옥 고문이 자신의 열정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 덕분에 탄생한 하나의 ‘작품’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테마 공간이자, 역사성과 함께 생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명작’인 쉼 박물관. 하지만 이곳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남편이 초기에 암을 발견해서 수술을 받았었어요. 이후 완치됐다 생각하고 남은 생을 제대로 단장하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 1년간 집을 비워가며 리모델링을 다시 했죠. 그런데 너무나 건장했던 남편이, 입주하는 날 다른 병 증상이 좋지 않게 되서 1년여 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이태리 유리 앤티크들을 천여점 가지고 있던 박 고문은 원래 이것들을 소재로 박물관을 열려고 했었다. 그러나 건장하던 남편의 잠자듯이 가는 그 모습을 보고 ‘죽음이란 없어지는 것’ 이 아닌 ‘삶의 연장을 위한 휴식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지금의 쉼 박물관이 탄생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이 후 박 고문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모아놓은 유물도 많고, 당신 혼자 쓰기엔 집도 넓은 거 같고,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으로 ‘입주하게 된 날 가족이 병에 죽은 집’이라 하면 꺼리게 될 만한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박 고문은 “미신은 믿지 않는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 집에서 생활하면서 박물관으로 개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째는 남편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장소이고, 둘째는 제가 외국에 여행을 여러 번 다녀보면서 자기가 생활하던 집에 박물관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 박물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관람객은 수십 배 더 많은 그런 곳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게 됐죠”

하지만 같이 살던 보금자리인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일반에 공개한다는 것을 가족 모두가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4남매 중에 첫째, 둘째 딸은 완강하게 반대했어요. 셋째 딸이랑 아들은 이해해줬죠. 특히 지금 박물관 관장인 셋째는 적극적인 후원자이기도 하죠”

박 고문의 고집으로 2007년 10월 8일, 소리꾼 이걸재 선생의 오픈퍼포먼스를 비롯한 지게상여놀이 퍼포먼스와 함께 부군의 기일 1주기기념 겸 쉼 박물관 가오픈을 하게 된다.

당시 참석했던 문화계 인사들은 ‘우리나라의 500여 개 박물관, 미술관에서 볼 수 없던, 그 동안 우리가 바래왔던 박물관이 드디어 나왔다’고 환영하면서 허가 과정에서도 기꺼이 협조를 해 박물관 승인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 사립박물관 운영이 어려운 실정인 우리나라에서 늦은 나이에 고생하시는 것이 걱정돼 반대했던 두 딸들도 차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오히려 골동품은 걔네가 더 좋아해요. 엄마가 남은 시간을 좀 편히 살지 왜 이런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가하는 의미에서 만류했었던 거지요. 하지만 해놓고 보니 의미도 있고, 하나의 책임 의식도 생기면서 차츰 이해하더군요”

◆죽음은 하나의 축제

현재 박기옥 고문의 소장품들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상여와 관련한 천 여점의 소장품 외에도 우리나라의 옛 물건들, 서양의 앤티크들 등 많은 것들을 모아왔기 때문이다.

▲쉼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이자, 조상들의 훌륭한 예술성과 해학을 엿볼 수 있는 상여
“제가 원래 여기에만 치중했던 게 아니고 나막신, 소반, 궤짝 같은 것들을 비롯해 지난 일생을 고가구 속에서 묻혀 살았다 할 정도로 많이 모아왔어요. 거기에 서양 앤티크에 원래 모았던 유리 제품들까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네요”

그는 “남편과 함께 매일 골동품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다시피 했다”며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했다.

“애들 학교나 유치원 끝나면 매일 골동품점으로 데려갔어요. 우리 아들은 ‘공기 안 좋은데 또 가시느냐’면서 안 따라가기도 했죠. 남편도 처음엔 ‘그 빈대 나오는 것 좀 그만 구입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중엔 모두들 좋아하고, 또 저를 인정해주기 시작한 게 하나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죠”

쉼 박물관에 있는 수집품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상여를 보면 조상들에게 있어 죽음은 장엄하면서도 화려하고, 더불어 ‘기왕 보내야 할 바에야 즐겁고 화려하게 보내야 된다’는 증거가 남아있다. 이는 각 지방마다 존재하는 목수들의 장난어린 목인들을 보면 나타난다.

얼마 전, 임권택 감독이 우리나라의 장례를 주제로 한 영화 ‘축제’가 말해주듯 선조들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것이 그저 엄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상주를 위로하는 의미에서 화려하고 해학적인 것들을 부착시켰어요. 울고 있는 상주가 잠깐 쳐다보면 그때만큼은 웃을 수 있었죠. 또, 운구하는 상여꾼들도 잠깐 가벼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고요. 영정도 화려한 것을 타고 간다는 의미도 있죠. 산자와 죽은 자를 둘 다 위로하는 측면인 거죠”

모두가 어렵던 시절, 마지막 갈 때만이라도 집모양의 상여에서 화려하게 가시라는 의미에서 옛 장례는 그렇게 축제였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상여에 꽂혀있는 목인을 보면 당시의 지역적 특성이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왜정 시대는 순경, 순사를 만들어서 꽂아놓기도 했죠. 또, 우리 박물관에 보면 인어 형태의 것도 있어요. 짐작컨대 바닷가, 강가에 있던 목수가 그걸 상상을 하고 제작해서 꽂았지 않았나 싶어요”

◆좋은 마침은 좋은 시작을 위한 준비

▲인터뷰 중인 박기옥 고문
박기옥 관장의 집(박물관)에는 ‘덕불고(德不孤)’라는 현판이 있다. ‘덕을 베풀면 외롭지 않다’는 의미다. 박 관장은 문득 남편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회사에 있을 때 도와줬던 고학생들이 당신이 죽고 난 이듬해 기일날 묘소에다가 묘비를 세워줬어요. ‘한권의 책과 한술의 밥이 필요했던 어려운 시절, 당신이 우리들을 기꺼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는 ‘웰빙(Well-being)’을 넘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의 우리에게 와 닿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피해 갈 수 없고 한 번은 경험해야 하는 통과의례인 죽음을 잘 맞이하는 법은 무엇일까. 박 관장은 죽은 뒤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를 이야기했다.

“생활하면서 좀 여유가 있으면 정말 어려운 분들을 도우면서, 그것이 힘들면 좋은 덕담이라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선한 마침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봐요”

그는 죽음을 거부의 대상이 아닌, 태어남으로 가기위한 하나의 문을 여는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말을 이어갔다.

“억지로 살기위해 병원에 의지해 몇 년 씩 산소 호흡기를 쓰고 그럴 것이 아니라, 의연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 좋게 마침의 문을 닫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건 사실 병원 측에도 피해를 주는 행동이고, 꼭 병을 고쳐야 할 젊은이들에게서 병실과 의사의 바쁜 손을 뺏는 것밖에는 되지 않으니까요”

◆국장(國葬)에 국(國)이 없다

박기옥 고문은 우리의 국장(國葬)을 비롯한 장례문화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장을 이제는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좀 우리 것이 가미되어야 한다며 얼마 전 있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국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 노 대통령 측에서 사진에다 검은 띠를 안 두르기로 했어요. 더군다나 그렇게 큰 대형사진을 트럭에다가 꽃 몇 개 붙여서 운구를 했으니, 이게 사진틀 운반이지 어떻게 대한민국 국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박 고문은 지인에게 들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프랑스 외신기자가 우리나라의 찬란한 역사를 기대하며 박 대통령의 장례를 보러왔었다고 해요. 그런데 국화가 씌워진 흉물이 나오더란 겁니다. 그 기자가 볼 거 다 봤다면서 ‘전혀 한국적이지 않고, 대표성이 없다. 전통문화를 왜 살리지 않느냐’고 지적하니까 그 분이 얼굴이 뜨거웠다고 하더군요”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해도 오동나무 잎사귀나 열매 등 그 나라의 상징은 반드시 넣는다고 한다. 그는 우리처럼 리무진에 국화를 씌우는 경우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탄하며 정부가 옛 상례문화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해 국장에서 쓸 수 있는 상여를 만들어 보관했으면 한다고 했다.

“정책 결정자들이 빨리 깨닫기 바랄뿐이죠. 이제라도 제 이런 의견이 전달돼서 앞으로 진행될 국장에서는 좀 가미됐으면 하고 생각해요”

◆과거와 현재와 공존

▲박물관 입구의 학 모형 뒤에는 죽음에 대한 철학이 묻어나는 문구가 적혀있다
쉼 박물관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상여와 그와 관련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우리문화를 보전하자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하나있다. 옛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예술도 같이 전시되고 있다.

2층 한 편에 있는 작은 방에는 서양의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 전시했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해 놨다. 뿐만 아니라, 외국 거실에서나 볼 수 있는 소품들도 우리의 옛 것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너무나 방치하고 하찮게 여기다 못해 없어지고 소멸되어가는 우리의 것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또, 이런 것들을 복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와 같이 공존해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지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의미라고나 할까요”

외국 관광객들이 감탄할 정도의 우리 문화를 통해 국위선양에도 한 몫하고 있는 쉼 박물관은 잠시나마 ‘몸과 마음의 쉼’이 무엇인가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진정으로 멋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우리 박물관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름 때문에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처음 들러보시는 분들이에요. 호기심으로 찾아온 그 분들이 박물관을 나서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가는 것이 정말 다행이자 하나의 보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