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고 흔들리는 존재임을 긍정하자”
“부족하고 흔들리는 존재임을 긍정하자”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0.05.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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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내가 할 일은 ‘한 편의 좋은 시’를 남기는 것

 

[서울문화투데이=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 <담쟁이>의 일부다. <담쟁이>는 도종환 시인을 많이 닮았다.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벽을 만날 때마다 기어이 넘어서는 그 모습이 꼭 닮았다. 그는 지난해 지용문학상에 이어 올해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 30여년 동안 힘들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시를 써온 그에게 그 상은 선물이자 앞으로 더 좋은 시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라는 채찍이다. 굴곡진 삶을 살아왔지만 그의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지난 15일 충북 옥천에서 열린 지용문학제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시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지난해 지용문학상에 이어 올해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한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일종의 책임감도 느껴질 법하다.

지난해 수상한 지용문학상은 여러 작품으로 수상한 게 아니라 한 편의 시로 수상한 것이다.

수상을 통해 한 편의 좋은 시를 쓰는 일이 우리(문인들)가 할 일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한 편의 좋은 시 말이다. 정지용 시인이나 윤동주 시인 등은 많은 시를 쓰진 않았지만 <향수>나 <별 헤는 밤>, <님의 침묵> 같은 모두가 공감하는 시를 써냈다. 

 윤동주문학상 수상소감에서도 밝혔지만 30년 가까이 시를 써왔음에도 <별 헤는 밤>같은 시를 쓰지 못했다. 요즘은 특히나 부족한 시를 쓰고 있단 생각이 든다.

부족하다니… <담쟁이>와 같은 시는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고 있나. 화제를 바꿔보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기금 지원 대가로 ‘시위 불참 확인서’제출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이후 확인서 제출 요구를 철회했지만 이와 관계없이 한국작가회의는 정부의 잘못된 지원정책에 대한 저항운동을 지속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떻게 진행 중인가.

그 일은 문인의 자존심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돈을 못받으면 못받았지, 그 돈을 받아서 사업을 진행할 순 없다는 게 문인들의 생각이었다.

물론 공공기관에서 발행한 공문을 철회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확인해보니 공문의 지침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했다. 단지 공문을 취소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우리(작가회의)가 할 수 있는 일은 글로서 문학으로서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문인이 집회에 참여해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면 그 일은 형사처분을 받아야 될 일이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각서를 받는 일은 독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 아닌가. 지침철회를 위한 글쓰기는 계속해나갈 것이다.

이야기 나온 김에 현안과 관련해 하나 더 질문하겠다. 요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명단 발표를 두고 안팎으로 시끄럽다. 30년 가까이 교직에 있었는데, 이번 전교조 명단 발표를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와 전교조 모두 어떤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면 안된다. 이건 악이고, 저건 선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소속단체로 한 인간에 대한 평가를 규정짓는 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이지 않나.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잘못된 시각이다. 한 사람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데, 그런 식으로 교사를 평가할 수 있나.  교사에 대한 평가는 학생들의 몫이다.

부드러움 속에 숨겨진 저항성이 상당한데.

시인들이 다 그렇겠지만 심성은 섬세하고 여리다. 사물 하나를 눈여겨보는 눈으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바라본다. 저항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투사적인 사람은 아니더라도 지사적일 순 있겠다. 난 계산적인 사람은 못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 자신의 손해를 먼저 계산해볼테고, 이익과 손해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 아닌가. 우리 문인들의 전통일지도 모르겠다.(웃음)

 

 

그런가.(웃음) 요즘 시를 쓰는 사람, 시를 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가 너무 넘쳐나는 시대 아닌가.

시심(詩心)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할 것이,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를 사치품이나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그런 것을 만족시켜줄만한 분야는 아니다. 사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고, 고난도 따른다. 특히, 문인은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인데, 허영이나 징식으로서의 문학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세계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시인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

늘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 의미 있는 삶인지 고민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한 편의 시를 쓰는 과정이다.

진정한 시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낀다.(웃음) 충북 보은 ‘구구산방’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내심 부럽다. 건강도 회복했지만 마음에도 큰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글을 써야 할 때는 늘 그곳을 찾는다. 조용해서 글쓰기엔 안성맞춤이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건강도 회복했고,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 동시집을 얻었다. 내적으론 자연을 가까이 접하면서 마음이 넓어졌다. 숲의 바람과 햇빛, 흙내음, 골짜기물들이 내 생명을 구성하고, 그것들이 있어 내 생명도 존재함을 깨달았다.

자연은 정말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생명의 근원은 결국 지수화풍(地水火風)인 것이다. 또한 자연을 단순히 먹거리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자체로서의 우주로 바라보게 됐다. 이는 이천식천(以天食天) 사상과 통하는데, 작은우주로서 큰 우주를 먹여살리는 것이다.

너무 철학적이다.(웃음) 구구산방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시작(詩作) 스타일은 어떤지 궁금하다.

머리로 생각하고 옮기거나 적으면서 고쳐나가는 스타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정말 마음이 움직여서 쓴 시, 마음의 울림으로 쓴 시가 오래 남는 것 같다. 계절적으론 4월부터 5월 초에 시상이 잘 떠오른다. 날씨도 좋고, 어디를 봐도 아름다워서가 아닐까 싶다. 시를 쓰면 여러 번 퇴고한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보고, 몇 달 뒤 다시 보는데, 볼 때마다 고치고 또 고친다. 처음 쓸 때는 잘쓴 것 같은데 다시 보면 또 고칠 게 보인다. 그래서 몇 달이 지나기 전에는 발표하지 않는다.

 

문인으로서 요즘 컬처노믹스, 문화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문인으로서 요즘 컬처노믹스, 문화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있다. 모 기업은 회사 광고에 시를 이용하거나 공사장 가림막을 시 문구로 대체하기도 한다. 문화적 마인드로 접근해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이익창출로 끝냈던 과거 사례보다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돈을 얼마나 벌어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가치로만 판단한다면 어려움이 따를 듯 싶다. 그 가치라는 게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정신적인 위안을 얻고, 가치를 높이는 것은 측정할 수 없지 않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있다. 추도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전혀 아니다. 노 대통령 재임 기간에 난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취임 후 이라크 파병이나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퇴임 이후엔 봉하마을로 내려와 소박하게 사는 삶을 보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검찰 조사과정에서 스스로 목숨 던지는 모습을 보면선 그의 좌절은 우리의 좌절이요, 그의 굴욕은 우리의 굴욕이란 생각을 했다.

이야기 듣다보니 추도사 내용이 궁금하다. 살짝 공개해줄 수 없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 없어 몸을 던진 그 자존심, 그의 그런 자존심과 고집, 원칙이 미울 때가 있다. 혼자 남겨진 부인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니던 손녀는 어쩌라고…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목숨 던진 그를 생각하면 야속하다.

혼자 남겨진 자의 슬픔을 더 많이 공감하는 것은 먼저 떠나보낸 부인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단 두 개의 질문을 남겨두고 있는데, 심오한(?) 질문 하나 하겠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됐다. 더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개인적으론 좋은 글을 써서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시를 읽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본다면 무조건 빨리 가는 것보단 올바르게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선진국 진입을 약속했다. 우린 지금 한 단계 더 질 높은 사회를 가기위한 문턱에 와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사회시스템이 개선되고, 폭넓은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국민소득이 높아져야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메리칸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안드림이 곳곳에 스며들어야 한다. 속도와 경쟁제일주의를 통해 승자가 되고, 부를 축적해 그것을 통해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메리칸드림이라면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개발과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를 더 많이 생각해 자연다원적 협력체제로 굴러가는 사회가 유러피안드림, 곧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다. 배울 것은 배우고,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고민해 우리만의 코리안드림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사회적 갈등이 깊은 편이다. 우린 나와 이념이, 종교가, 출신이 다르단 이유로 배타적이다. 무조건 싫어하는데,  이럴수록 갈등의 벽은 높을 수 밖에 없다. 핀란드 교육시스템을 예로 들면, 그들은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합의를 도출하는 훈련을 통해 경쟁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배운다. 아니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서로 입장이 달라도 신뢰할 줄 알아야 한다. 남과의 차이는 인정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좌우명이 뭔가.

좌우명이라…좌우명이라기 보단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말을 좋아한다.  지나고 돌아보면 내가 가고자하는 길을 흔들림 없이 간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다. 흔들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부족하고 흔들리는 존재임을 긍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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