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대중성과 통속성 위에 선 토슈즈
[리뷰]대중성과 통속성 위에 선 토슈즈
  • 박소연 기자
  • 승인 2010.05.31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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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심청’

[서울문화투데이=박소연 기자] 발레 ‘심청’은 대중적이다. 심청의 서정적 몸짓 뒤에 자리한 거대한 무대 세트와 무용수들의 화려한 의상, 섬세한 디지털 영상 등은 관객들의 눈을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1막의 초가집 세트나 동네 아낙들의 자연스런 의상과 안무, 심봉사의 리얼한 연기에 리틀 심청에서 처녀로 성장하는 심청의 변모과정까지 아기자기한 눈요깃거리들은 스피디한 서사의 전개와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다.

1막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

노를 이용한 선원들과 심청의 군무는 심청의 기구한 운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선원들이 깔아놓은 노 사이를 오가는 심청의 위태로운 발끝은 급박하게 오가며 그녀의 불안한 내면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남성무용수들의 파워풀한 군무는 영웅적 기개를 발현하며 극의 역동성을 더한다. 심청은 선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유연한 몸놀림으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자신의 미래를 그들에게 맡긴다.

결국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행로는 최첨단 디지털 영상으로 이어져 현실과 용궁의 공간을 넘나든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갑판의 3D 영상에 이어진 수중 영상은 영화를 보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관객들은 스크린 속의 심청을 따라 자유로이 물속을 노닌다. 한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심청의 모습은 신비로움을 더해 꿈결 같은 장면을 연출해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심청은 생존에의 다급함이 아닌 여유로운 몸놀림으로 미학적 실루엣에 치중한다. 현실의 공간을 이어주는 디지털 영상의 참신한 역할은 ‘아름다운 선 만들기’와 과도한 러닝타임으로 본연의 순수성을 침해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모두를 포용하고자 도입된 세련된 영상은 한국 고유의 전통적 정서를 클래식 발레로 표현하고자 한 초심의 취지를 반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2막의 용궁 장면은 고유성과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1막의 대중성을 통속성으로 변환시킨다. 바다요정들의 다양한 솔로는 단조로운 구성과 진부한 무대 연출로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을 반감시킨다. 재차 등장하는 수중 영상은 처음의 신선함을 느슨하게 이어가 사족의 여지를 남긴다. 3막의 심청과 용왕의 파드되는 그 서정성에도 불구하고, 용왕과 현실을 바삐 오가는 기나긴 영상과 볼거리에 치중한 무대 연출에 가려져 설득력이 약화된다.

3막 심청을 만나 눈 뜬 심봉사  

소나무의 위용과 실감나는 궁의 세트, 무용수들의 화려한 옷매무세에 더해진 남성무용수들의 신명나는 탈춤자락은 풍성한 볼거리의 최절정을 자랑하며 마침내 심봉사에 이어 다른 봉사들까지 다함께 눈을 뜨게 되는 기적을 연출해낸다. 스펙터클한 무대가 더해진 감동의 서사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최고조에 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조합에도 정작 묵직한 감동이나 잔잔한 여운은 쉬이 전해지지 않는다. 극의 비약이나 영상의 과한 비중은 재껴둔다 치더라도, ‘효’를 내세운 발레 ‘심청’에 정작 심청의 존재는 살아 숨 쉬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1막의 탄생비화를 제외하고 심청의 존재는 영상으로, 혹은 바다요정의 기량 뒤편에, 그리고 심봉사에게 일어난 기적 속에 희미하게 자리할 뿐이다. 심청은 저 먼 발치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지켜보며 여린 손짓으로 자신의 슬픔을 노래하는데 그친다. 아버지를 위해 거센 파도의 풍랑에 제 한 몸 맡긴 심청의 삶은 어쩌면 진주를 머금은 조개의 거칠고 투박한 껍데기만큼이나 질곡어린 생은 아니었을까.

전통을 바탕으로 한 창작 발레라는 귀중한 가치만큼 대중성과 통속성의 경계 위에서 대중성을 위한 통속성이 아닌, 대중성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에튀튜드로의 도약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