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통영', 예인의 흔적을 찾아서
'예향 통영', 예인의 흔적을 찾아서
  • 김순철 통영시청 문화예술계장
  • 승인 2010.06.0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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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국보급 예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한 세기 동안 오로지 지방 화단을 지키며 고향산천을 화폭에 담아오던 색채의 마술사 전혁림 화백께서 오랜 화필을 놓으시고 긴 영면에 들어가셨다. 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또 한 번 예향 통영 시민임이 자랑스러웠다.

▲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초대전 메인 사진, 故 전혁림 화성과 전영근 화백. 이 사진은 부자간 통영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됐다.

 동피랑에서 창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소설가 강석경 선생도 강구안 문화마당의 분향소에 참배한 이후 “지방의 노화가가 돌아가셨다고 공공장소에 분향소를 차려 시민들이 참배하는 곳은 통영 이외는 없다”며 부러워했다.

 사흘간 빈소를 드나들던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대표도 “통영시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전화백님에 대한 추모 열기를 보면서 다시금 전 화백님의 크나큰 자리를 발견하게 됐다. 통영은 대단한 곳이다”며 감동했다.
 화백께서 영면하신 곳은 생전에 십여 년 동안 작업에 몰두하셨던 풍화리 양화마을 작업실 인근이다. 당초 고성의 이화공원묘지로 가겠다던 계획이 수정됐다. 유족은 물론이거니와 주민들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자신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마을 인근에 묘지를 조성하면 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관례다. 장지를 그곳으로 정하고도 혹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여 민원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염려했지만 이는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장지가 양화마을로 결정되자마자 이장으로부터 “전혁림 선생께서 우리 마을로 오신다는데 그냥 있을 수 없어 마을 어귀에 추모 플래카드를 달아야겠으니 좋은 문안을 달라”는 전화가 왔다. 

▲ 故 전혁림 화성의 장지인 산양읍 양화마을 입구에 현수막이 눈에 띈다. 산양읍 세포고개 마을 주민들이 다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도시 통영이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마을 주민들의 수준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들의 혜안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저력일 것이다. 콘크리트 벽에 문화도시라는 간판을 내걸고 우긴다고 문화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도시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다 함께 만들어가는 고품격 조형물이다.

 차제에 예인들의 창작혼이 서려 있는 미술관, 기념관, 문학관, 묘소 등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는 기행 코스를 만들어 홍보한다면 어느 곳도 따라올 수 없는 고품격 문화상품이 될 것이다.
 
 내친 김에 예인의 흔적을 찾아 나서보자.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에 비친 달빛이 너무 아름다워 미월美月이라 불렀던 용남면의 웃민월에 위치한 통영옻칠미술관에서 옻칠의 진면목과 함께 한 평생을 옻칠에 받친 김성수 관장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큰 행운일 것이다.

▲ 행복 시를 지은 청마 유치환문학관 전경사진
 발길을 돌려 갈 곳은 청마문학관. 고향사람들 그의 꿈을 비웃어도 동백꽃 피고 지는 고향을 잊지 못해 늘 고향을 작품 소재로 삼았던 향수의 시인 청마 유치환 선생의 흔적을 찾는 데는 청마문학관 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다음은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고향이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 베를린의 묘지에서 영면하고 계시는 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엊그제 개관한 윤이상기념관 차례다. 기념관 가는 길에 중간 중간 김춘수생가, 초정거리, 청마우체국, 이중섭거리 등을 볼 수 있다면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 통영 강구안 문화마당에 설치된 이중섭 화백의 안내 문구
 메모리홀에서는 남해안별신굿 소리, 어부들의 어요 소리, 밤낮없이 들었던 해조음이 내 음악의 자양분이었다며 고향을 그리워했던 현대 음악의 거장 윤이상 선생의 인생과 예술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저터널이나 구름다리를 지나 들릴 곳은 꽃의 시인 김춘수유품전시관이다. 선생이 태어났던 생가를 구입하여 기념관으로 조성한 후 전시키로 했던 유품이었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며 버티는 현재의 집주인 때문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현재의 집주인은 통영시민이 아니라 타지에 살면서 큰돈을 사겠다는 외지인임을 밝혀 둬야겠다.

▲ 도천테마파크 전경 사진 故 윤이상 선생님의 업적과 음악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전혁림미술관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구십, 아직 젊다”며 평생 붓을 놓지 않았던 전혁림화백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사설 미술관이다. 건물부터가 작품이다. 아직도 풀어놓고 씻지 못했던 물감 냄새가 진동하는 작업장과 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은 거장과의 또 다른 만남이 될 것이다.

 지난 2010년 4월28일부터 5월 3일까지 서울문화투데이 주관주최로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서 열린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이 열렸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쓴 ‘길위에서 쓴 희망편지’에 전혁림 화백에 대한 애틋한 존경이 묻어져 나온다. 이날 전혁림 화백과 김형오 국회의장이 뜨겁게 잡았던 손은 통영 예술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 전혁림 미술관을 방문하면 보이는 故 전혁림 화성 사진
 하지만 이번 초대전이 마지막이 될 줄 꿈엔들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이 초대전이 정말 마지막 초대전이란 현실에 다시 생전의 전혁림화백님을 뵐 수 없단 말인가. 부디 천상에서 통영 1세대 예술의 지인들 만나 담소나누시며 영면하소서

 전혁림미술관은 사설미술관으로는 국내에서 운영을 제일 잘하고 있는 미술관이라하여 문화관광체육부장관이 자랑하는 통영의 자랑이다.

 이제 노 화백께서 잠들어 있는 묘소로 가야겠다. 미리 국화 한두 송이를 준비하는 것도 예의일 것이다. 통영대교의 들머리에 설치된 선생의 대작을 감상하고 풍화반도를 접어들면 곧장 양화마을을 만난다. 양화揚崋마을은 마을과 마주하는 안대봉이 나비의 형세를 닮았다하여 호접등, 나붓등이라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 새 만다라 전혁림 2007년 작 93세에 제작된 원색의 강렬함이 압도한다.
 권력과는 무관했던 예인답게 묘지는 아주 겸손하게 단장했다. 훗날 세울 화비畵碑 하나가 선생의 묘소임을 알려줄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헌화하고 돌아 나오다가 혹 작업장에 전영근 화백과 만나 차 한 잔 할 수 있다면 애써 찾아 온 보람이 더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갈 곳은 박경리기념관이다. 우여곡절 끝에 완공한 이 기념관은 원주의 선생집을 설계했던 건축가 유춘수 씨가 설계한 건물이다. 고독과 싸우며 흙과 생명을 존중했던 선생의 삶과 문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전시관을 둘러보고 당도한 곳은 선생의 묘소다. 반풍수라도 명당자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 2주기 추모제날인 지난 5월5일 세워진 박경림기념관 전경사진. 산양읍에 위치해 있다.
 이충무공의 독전소리 쩌렁쩌렁했던 한산앞바다와 막 모내기를 끝낸 신봉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느 곳에 가면 이렇게 완벽하게 국보급 예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오늘따라 예향 통영에 사는 것이 더욱 자랑스러울 뿐이다.

글ㆍ김순철 통영시청 문화예술계장/ 사진ㆍ서울문화투데이 경남본부

▲ 필자 김순철 계장

<필자 소개>

통영시 공무원(현)
경남통영 산양에서 출생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 문학가 협회회원
통영문인협회회원(사무국장역임)
통영시공무원문학회 편집장

 서울문화투데이 경남본부 cnk@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