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 정명숙 선생의 <기억과 환희>
수당 정명숙 선생의 <기억과 환희>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06.0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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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워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픈 춤 살풀이,오는 11일 국립국악원서 30주년 공연 열려

[서울문화투데이=성열한 기자] 살풀이춤은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미가 극치를 이루는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춤사위로 구성된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하얀 수건 속에서 나오는 몸짓은 삼엄한 귀기(鬼氣)가 감도는 차가운 분위기와 고도의 세련됨이 조화를 이룬다. 때론 하얀 수건을 떨어뜨리고 엎드려서 공손히 두 손으로 던진 수건을 들어올린다. 수건을 떨어뜨리는 것은 불운의 살이라고 할 수 있고 다시 주워드는 동작은 기쁨과 행운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공간에 시를 쓰는 마음의 표현으로 그 내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름답고 선한 마음과 그 마음을 푸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

 

◈변치 않는 초심과 열정의 춤사위

정명숙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고전무용에 있어 특히, 그 중에서도 살풀이춤에 있어서는 스승인 이매방 선생을 잇는 명무(名舞)로서 잘 알려져 있다. TV도 없던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에 그렇게 춤을 추어 동네춤꾼이라고 불렸던 아이가  60년을 춤과 함께 살아오며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최상의 곡선을 그려내는 춤꾼’이라는 극찬을 받는 명인으로, 어느 덧 서른 번째 공연을 맞이하게 됐다.

지난 스물 아홉 번의 공연과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보다 서른 번째를 맞이한 이번 발표회에서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정명숙 선생은 앞으로 50번이 넘는 공연을 계속해 나가더라도 춤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채 남겨진 시간을 춤과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 서른 번째 발표회에서 그녀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역시 살풀이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인 살풀이춤의 보유자 후보다운 춤을 선보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춤들을 배우고 춰 나가는 것도 어떻게 하면 살풀이춤을 더욱 잘 출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살풀이춤을 준비하는데 가장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정명숙 선생의 제자들인 수당 정명숙전통춤보존회 인원들이 참여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갖게 된다. 우리 전통춤의 미래를 보여 줄 그들에게 정명숙 선생은 ‘체험’을 멈추지 말기를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체험이라는 것은 우리가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서 잊을 수 있는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몸에 남아있는 기억입니다. 그러한 점을 잊지 않고 체험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얻어진 배움을 통해 무엇보다도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밑바탕 위에 긴 시간의 연습은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철학을 만들어줄 것이고 그 체득된 철학을 가지고 전통춤을 해나가야 합니다.”

정명숙 선생은 밸리 댄스와 재즈댄스와 같은 현대 무용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우리의 전통 춤을 등한시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전통 춤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구조적인 측면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 했다.

“젊은 인재들이 전통춤을 공부하면서 졸업을 해도 전통춤을 향한 꿈을 펼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전통을 주장하며 자신의 영역에 대한 자존심과 그 노선만을 강조하여 남을 헐뜯고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는 전통예술자들 사이의 갈등 때문이기도 해요. 또 키가 크고 늘씬한 체형의 외모가 우선시 되어 춤에 재능과 상관없이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현 세태도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그럴 바에는 슈퍼모델을 데려다 놓고 춤을 추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키가 작아도 실력이 있다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잊혀질 기억과 다가올 환희

정명숙선생 또한 이러한 전통예술자들 간의 갈등 사이에서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 상황에, 오랜 시간을 괴로움과 안타까움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회 <기억과 환희>를 통해서 그것들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억’에 의미는, 오랜 시간동안 춤을 춰오면서 춤을 더욱 잘 추고 싶다는 욕심과 전통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한다는 사명감을 가지며 춤에 몰두에 해왔던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저를 오해하는 사람들이나 주어진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 적이 많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은 현 시점에서 그런 ‘기억’은 떨쳐버리고 춤에 더욱 정진해 기쁜 마음으로 춤사위를 펼쳐 보이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환희’는 마음가짐을 다시하고 기쁨과 열정의 춤사위를 펼쳐 보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이 <기억과 환희>입니다.”

 우리의 전통의 혼을 지키는 지킴이의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아직도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정명숙 선생. 식지 않은 그의 열정은 춤과 함께 살아온 지난 60년의 시간 보다 앞으로의 남겨진 춤 인생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앞으로도 춤사위를 계속하면서 전국, 전세계를 다니면서 우리 전통의 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제가 체험과 경험을 통해 배워왔던 것을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저 또한 배워 나가야할 것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에 배움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평생을 춤과 살아가며 마지막 순간에도 무대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살풀이 춤을 보고 통곡하고 흐느끼는 관객들이 항상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하얀 수건을 들고 보여주는 그의 춤사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서른 번째를 맞이한 이번 발표회가 정명숙 선생 자신을 위한 살풀이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수당 정명숙 선생의 서른 번째 발표회 <기억과 환희>는 오는 11일 오후 7시 30분 국립국악원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