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초 ‘키다리 아저씨’, 조원희 문양디자인 대표
가은초 ‘키다리 아저씨’, 조원희 문양디자인 대표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6.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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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수학여행에 얽힌 아픈 추억이 사랑으로 태어나다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지난 5월 25일 아침, 중구청은 24명의 가은초등학교(경상북도 문경시 소재) 6학년 학생들로 북적였다. 청사건물을 보는 아이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다. 아이들은 2박 3일간 중구청을 비롯해 남산, 청계천, 청와대, 잠실야구장, 서울대공원 등을 다니며 ‘특별한’ 수학여행을 즐겼다. 이 모든 행사의 중심 자리엔 조원희 문양디자인 대표(문양장학회 대표, 51세)가 있었다.

◈가슴에 사무친 수학여행의 기억

구 문양초등학교 19회 졸업생(1973년 2월)인 조원희 대표는 당시 너무나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이것이 현재 가은초등학교(경북 문경시 소재) 학생들의 수학여행 지원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됐다.

▲올해로 25년째 가은초교(구 문양초교와 통합)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지원하고 있는 조원희 문양디자인 대표

“초등학교 5, 6학년 때 담임으로 계셨던 은사님께서 저를 졸업시키시면서 ‘나중에 성공하면 어려운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도와줘봐라’고 말씀하셨죠. 그 이후에도 많은 도움과 자문을 주시면서 용기를 주셨고요. 지금까지 마치 형님처럼 친근감을 가지고 깍듯이 모시고 있죠”

조 대표는 올해로 25년째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지원하고 있다. 처음엔 학생 신문을 학급마다 5부씩 지원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 대표의 5, 6학년 담임이었던 은사님이 교감으로 부임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1박 2일 수학여행 지원을 시작했다. 이후 2박 3일로 일정을 늘리기에 이른다.

“초등학교에서는 2박 3일 수학여행이 거의 없어요. 좀 독특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애향과 모교사랑의 실천

조 대표가 졸업한 문양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어 가은초등학교 문양분교장으로 격하됐다. 당시 같은 처지의 희양분교장 학생들까지 함께 수학여행에 나서도록 도우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결국 문양분교장은 폐교·통합된다.

▲지금은 폐교되어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는 문양초등학교

엄밀히 말해 가은초등학교는 그가 다니던 학교는 아니었기에 당시 지역개발위원장, 학부모 회장, 교장 선생님 등에게 ‘내가 계속 이걸 해야겠느냐’ 고민하며 물었다고 한다.

“다음날 계속 맡아 해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 이후로 가은초등학교 학생들의 수학여행 지원을 계속 이어가게 됐죠”

조 대표는 수학여행 지원 외에도 후배들의 졸업식 장학금 전달, 도서물품 및 의류 지원 등을 해오고 있다. 특히, 신발,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옷 등을 강남 쪽에서 많이 지원받아 모교에서 바자회를 열기도 한다.

“수익금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기도 하고 학교 기금으로 쓰기도 하죠. 처음엔 1년마다 한 번씩 했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지금은 격주로 계속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모교를 위해 기금을 조성하거나 각종 행사들을 지원하고 있는 조 대표는 총동창회나 지역축제도 도와주고 있다. 더불어 서울과 교류를 맺어 문경 지역 특산물의 판매까지 힘쓰고 있는 그는 단순히 학교 차원이 아닌 지역 차원의 지원으로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소중한 환경을 아름답게 꾸밀 것”

힘든 어린 시절을 추억으로 발판삼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했던 조원희 대표가 속한 문양디자인은 컨설팅, 설계, 시공, 리모델링, 인테리어, 가구 등의 업무를 하는 종합적인 디자인 회사다. 리모델링을 통해 아름다운 외관으로 거듭난 중구청 청사도 조원희 대표의 작품 중 하나다.

▲자신의 작품인 중구청 청사앞에서 가은초등학교 학생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조원희 대표(앞줄 맨 왼쪽)

조 대표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기초를 둔 건축설계로 항상 최고를 지향하는 동시에 환경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소중한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업이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작은 건물이라도 제일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친환경이죠. 자원 재활용도 상당히 중요시 생각하고요. 일례로 지하에 큰 탱크를 매설, 빗물도 재활용할 수 있게끔 하고 있죠”

◈후배는 미래의 모교 후원자

그 어떤 대가를 위한 것이 아닌 순수한 모교사랑으로 25년째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는 봉사를 해오고 있는 조원희 대표. 그가 이런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지난 25일 열린 LG와 기아의 프로야구 경기를 찾은 가은초등학교 학생들 (잠실야구장)

 “초창기 후배들 중 몇몇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끔 연락이 오거나 차도 한잔하고 해요. 사실 이게 삶의 보람이라 생각해요. 가끔 ‘언젠가는 모교를 지원하는데 힘쓰겠다’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힘이 나기도 하고요”

이런 그에게도 일말의 아쉬움이 있다. 예전과 달리 핵가족화된 환경에서 자란 요즘의 후배들이 그의 수학여행 지원에 대해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저 놀러가는 것으로만 여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은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모교에 가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동안 후배들에게 강연을 해요. ‘수학여행도 하나의 학교 수업이자 공부의 연장이다. 그냥 노는 데만 치중하는게 아니다’라고 말이죠”

조 대표는 “후배들에게 한 가지 더 하고픈 말이 있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의 이런 지원활동이 저 혼자만 하다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후배들이 잘 성장해서 훗날 저 못지않게 같이 이런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원활한 수학여행,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 때

“깨끗한 자연환경과 넓은 인심을 기본으로 열정적인 가르침까지 더해져 명문대 진학 및 주요 기관의 인재를 배출해 냈다”며 모교를 회상하던 조 대표는 오늘날 학교 정책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지난 26일 서울대공원을 찾은 가은초등학교 학생 한 명이 동물체험학습을 하면서 밝게 웃고 있다.

“사실 모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외국에선 학생 수가 적은 학교도 계속 유지하고 노력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조건 폐쇄를 얘기하죠. 극단적 폐교보단 혁신학교 등을 벤치마킹해 잘 활용하는 방안으로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교육관 및 수학여행 숙소, 체험관 등의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조 대표는 서울 내 숙박시설의 부재가 자신이 수학여행 지원을 해오면서 느낀 가장 힘든 점이라고 언급했다.

“이번이나 요전번에도 경기도 양평벨리(사장 김완규) 측에서 숙식제공을 해줘서 그쪽에서 머물렀었죠. 하지만 시간이나 물자낭비가 심하죠. 서울시에서 서울 인근 가까운 곳에 숙박시설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저렴하게 서울구경을 할 수 있게끔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건 수행교사 분들이나 초청하는 분들이나 모두 불편함을 겪는 문제예요. 자라나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 이런 것들은 꼭 이뤄주셨으면 해요”

자신이 지금까지 모교를 위해 해 온 기부활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자신의 노하우를 여러 곳에 전수해 우리나라 기부문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조원희 대표. “자녀들에게도 대물림 하겠다”는 그는 자신보다 더 나은 ‘제2, 제3의 조원희’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