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대중화 위해 ‘온종일형 인간’ 되다
발레 대중화 위해 ‘온종일형 인간’ 되다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6.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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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레협회 박인자 회장, 후배 발레단 후원 등 나눔 실천

[서울문화투데이=정지선 기자]  세상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은 너무도 많겠지만 이런 기준도 있을 수 있겠다. 발레의 매력을 아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말이다. 발레의 매력을 알아보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지만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이들과 그 수를 비교한다면 어떨까. 발레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관객층의 확대를 위해 늘 고민하고 동분서주하는 이가 있다. 바로 한국발레협회 박인자 회장이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기자는 연구실에서 그를 기다리며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용관련 서적과 각종 상패들, 그 중에서도 지인들과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발레스타 강수진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거기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그는 현재 숙명여대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들어선 그와 인사를 나누곤 인터뷰를 시작했다.

발레 관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OK

올해 초 취임한 박 회장은 요즘 콩쿠르 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해내기엔 그의 임기 3년이란 시간이 짧기만 하겠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해설발레 공연이 늘면서 일반관객들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그는 대중화만큼은 욕심낸다.

“발레는 장르 특성상 일반관객이 쉽게 즐기기엔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에요. 공연관람료가 비쌀 뿐 아니라 일반 공연장에선 관람할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요. 전 오페라극장에서의 대작보단 야외공연의 활성화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발레를 접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발레 대중화를 향한 그의 집념은 비단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국립발레단장으로 활동할 당시엔 군부대에서까지 발레공연을 무대에 올린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발단은 한 공군부대의 대위가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이었다.

 “공연 제안을 받고 고민한 끝에 결국 공연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예산 항목에 책정돼있지도 않았던 공연을 진행했어요. 3천여 명의 군인들을 대상으로 해설발레를 진행하는데, 여성무용수들이 나올 때만 박수를 치더라고요.(웃음) 남성무용수들이 나올 땐 어찌나 조용하던지 제가 해설을 했는데, 박수 좀 치라고 할 정도였다니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국립발레단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더니 해외공연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제 임기 동안은 해외공연이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폴란드 국제발레페스티벌에 참가했던 기억은 좀 특별하게 남아있어요. 보통 해외초청공연의 경우 개런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개런티도 제대로 받아서 뿌듯했고요. 전 공연 매진사례를 기록해 기쁨은 배가 됐죠. 사실 주변 사람들이 한국발레가 외국인들에게 통할지에 대해 반신반의했었는데, 커튼 콜을 마치고 한 할머니가 감격하시고선 우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무용수들도 같이 울었죠.”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건 자신 

뜻깊은 일엔 언제나 앞장서온 그는 기부활동 역시 빼놓지 않았다. 2007년 국립발레단장 임기 말에는 오페라극장의 화재로 <호두까기인형>을 올리지 못하게 됐다. 생각 끝에 그는 창동 열린극장에서 ‘만원의 행복’ 공연으로 발레를 진행, 수익금 전액을 지적장애인들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멈추지 않는 기부행진은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지난해 11월 말 성암아트홀 공연이 바로 그것. 소극장에서 공연한 관람료 전액을 노원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인 이원국발레단과 한국발레협회에 기부했다. 그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하면 할수록 행복해진다고 했다.

그가 행복을 느끼는 또 다른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교육이다. 좋은 무용수를 키워내는 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터, 발레협회는 다른 어떤 사업보다 교육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유아발레지도자 자격증도 교육사업의 일환이다.

 “요즘은 발레리나가 되기 위한 소수의 어린이들만이 발레를 배우는 게 아니라 일반 어린이들도 체격교정을 위해 발레를 배우는 일이 늘고 있어요. 발레를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이 필요한 만큼 발레협회는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도 활성화할 생각입니다.”

그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발레협회의 재원확보다. 이사들과 회원들로 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현실은 아직도 열악한 상태다. 이는 어느 예술단체나 마차가지가 아닐까 싶다.

“현재까진 발레협회에 자문위원이 없어요. 앞으론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발레 관객층 확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문위원단을 구성하려고요. 또한 기업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펀드레이징도 받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

움직이는 미술, 발레 

6월 5일과 6일 양일간 진행되는 콩쿠르를 마치면 한 숨 돌리기 무섭게 발레 엑스포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는 8월에 열리는 발레 엑스포에 대한 소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발레 엑스포는 상당히 규모가 큰 행사 중 하나로, 2년마다 열리고 있어요. 해외에서 활동 중인 발레리나 강수진, 서희 등이 파트너와 함께 내한공연을 가질 예정이에요. 돈키호테 전막 공연도 만날 수 있고요. 올해는 부대행사가 많이 준비돼 있어요. 세계 5대 명작 러시아 발레를 야외 공연으로 준비 중이며, 크로스오버 발레 뿐 아니라 지도자 워크숍과 국제포럼 등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특히, 외국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들은 거의 봉사한단 생각으로 적은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공연하기로 했는데, 고마울 따름이죠.”


바쁜 와중에도 그는 후진양성의 끈을 놓지 않는다. 2007년 국립발레단장을 마친 이후 바로 강단으로 복귀한 점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다. 이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무용수들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한국발레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렇다면 그는 한국발레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는 어느 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단언했다.

“발레영재들이 세계무대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있어요. 한국 무용수들의 표현력에 오히려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죠. 지인 중 한 명이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곤 한국 무용수들은 병아리처럼 작고 아름다우며, 따스하다고 평가하더라고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체격조건이 많이 좋아졌어요. 물론 외국 무용수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우리 무용수들은 테크닉이 훌륭해요.”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을 인터뷰 하면서 느꼈던 발레에 대한 넘치는 애정은 그에게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발레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인지 그에게 물었다.

“화가 한 분이 발레를 보고 ‘움직이는 미술’이란 표현을 하더라고요. 아름다운 무대와 무용수가 있고, 거기에 음악까지 어우러지니 움직이는 미술이란 표현이 제격인 것 같아요. 저로 인해 발레에 입문한 지인의 수가 상당한데, 첫 공연은 좋은 극장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주려고 해요. 사람이든 공연이든 첫인상이 중요하거든요. 처음 보고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고, 적어도 두세 번은 봐야 발레 관객으로 입문할 수 있죠. 분명한건 몰라서 그렇지, 발레를 접한 이들 중에선 싫어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단 사실이에요.”

발레광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모든 답변이 발레로 시작해 발레로 끝나는 발레광(狂)의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문득 그가 어떻게 발레에 입문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체육 선생님이 체격도 좋고 유연하니까 발레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바로 시작하진 않았고요. 그저 특별활동 시간에 발레 연습하는 친구들을 구경하곤 했어요.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해 서울예고로 진학, 임성남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아요.(웃음)”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가지 않는 그는 인터뷰 내내 발레 관객의 저변 확대를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발레를 즐기기 위해선 관람 티켓의 가격대를 낮춰야합니다. 한강공원을 이용해 야외공연도 활성화시키고요. 이와 더불어 해설발레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발레의 대중화를 소명인 듯 여기며 고민의 끈을 놓치지 않는 그의 열정이 마냥 놀라웠다. 그는 에너지는 쓰면 쓸수록 나온다고 했다. “저라고 왜 피곤하지 않겠어요.(웃음) 그래도 바쁘게 사니까 오히려 체역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 아침형 인간 혹은 저녁형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은 저보고 ‘온종일 인간’이래요.(웃음)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그 날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않는 것은 박인자 회장의 발레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덕택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발레를 즐길 그 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