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충무로야사] 무진, 안개 그리고 회색빛 그 우울함에 대하여
[연재 충무로야사] 무진, 안개 그리고 회색빛 그 우울함에 대하여
  • 이진모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 승인 2010.06.09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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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고교 시절 우리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다사이 오사무의 ‘쓰러지는 빛’을 읽으며, 소위 그때 당시 우스꽝스럽게 유행했던 데까당한 감상에 젖어 옛 시인의 싯귀를 뇌까렸고, 작가 지망생이었던 대학시절 김승옥의 ‘무진 기행’을 읽으며, 소금 끼 젖은 바닷바람으로 조제한 수면제와 무색무취의 안개에 포위당하고 취해버린 채 소설 쓰기를 포기 했었다.

 이 암울한 시대에 나의 소설 쓰기는 무엇을 써야 할까 또 어떻게 써야 할까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김승옥의 ‘무진 기행’을 읽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무진 기행’의 주인공처럼 당시 영화가였던 충무로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김승옥의 원작 각색영화 ‘안개’와 또다시 조우했던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자살 시체입니다.’
 순경은 흥미 없는 말투로 말했다.
 ‘누군데요?’
 ‘읍내에 있는 술집여잡니다. 초여름이면 반드시 몇 명쯤은 죽지요.’
 ‘네에?’
 ‘저 계집애는 아주 독살스러운 년이어서 안 죽을 줄 알았더니 저것도 별수 없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영화 ‘안개’의 이 장면은 소설 '무진 기행‘중 ’바닷가로 뻗은 긴 방죽‘의 한 부분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 윤기준이 아닌 소설 속의 나레이터인 ‘나’가 흐린 날 고향 어머니산소에 성묘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본 충격적 장면이다.

 ‘무슨 약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저런 여자들이 먹는 건 청산가립니다. 수면제 몇 알 먹고 떠들썩한 연극은 안하지요. 그것만은 고마운 일이지만….’

 소설 속에서나 영화 장면속에서의 이 부분 묘사는 소설 속 주인공시점이나 영화의 객관적 카메라 시점에서나 가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독자나 관객이 느끼는 이러한 충격과는 무관하게 소설과 영화의 이 장면 묘사는 매우 무기미하고 담담하기까지 하다. 마치 당시 무진이라는 상징적 시공간에서는 별다를 충격이 될 수 없었던 반복되는 일상인 냥….

 1967년 영화 ‘안개’의 ‘아카데미 극장’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필자의 귓가에,
 ‘뭐야, 무슨 영화가 이래?’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
 ‘예술영화인가 봐.’
 ‘쳇….’
 ‘함께 나오던 다른 관객들의 투덜거림’

 그들은 소설 ‘무진 기행’ 첫 부분 ‘무진으로 가는 버스’ 속의 농사관계 시찰원 같은 데도롱직에 흰 와이셔츠차림이었다. 극장 밖 광화문통 분위기는 가히 숨 막힐 정도로 살벌했다. 여기저기 포진해 있는 데모 진압차와 무장경찰들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을 입고 행인들을 위압적으로 노려보는 농사 시찰원이 아닌 정보부원인 듯한 사람들, 그들의 시선을 피하며 잔뜩 웅크린 채 도망치듯 어디론가 휩쓸려가고 있는 행인들, 이런 상황 속에선 인권이니 독재에 저항하는 데모니 하고 껍죽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 반병신이 되느니 약삭빠르게 시류에 굴복하는 게 상책이라는 듯 동분서주하는 군상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가 아닌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오면 영화를 보고 있는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극장 밖을 빙 둘러싸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들이었다. 그 상황속의 나는 차라리 극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었다.

 무진, 안개, 바다로 뻗은 긴 방죽, 흐린 날의 텅 빈 바닷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음악교사 하인숙, 그녀를 무시하며 지방 유지 행세로 거들먹거리는 세무서장 조한수, 조한수를 속물 취급하는 국어선생 미스터 박, 윤기준과 하인숙의 안개 속 데이트, 바닷가 사람들의 정사, 냇가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해버린 술집여자만 아니었다면, 영화 속의 상징적 현실은 극장 밖의 절망적 현실보다, 차라리 비애와 절망을 공유하는 로망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유래 없는 다작이면서도, 무수한 수작을 연출해온 김수용 감독은 그 특유한 연출 능력으로 직선 내러티브의 선적 구성을 피하고, 자칫 플롯의 전체적인 균형과 일관성을 단절시킬 수도 있는 빈번한 후랫쉬백의 점층적 복합 구성으로 새롭고 파격적인 영상 미학을 창출해냈다.

 컬러가 아닌 흑백 필름으로 구현된 미장센은 소설 ‘무진 기행’의 암울하고 무기미한 소설적 묘사를 시각적 영상적 묘사로 전환시키는데 충분했고, 추상적 관념적 이미지로 맴돌던 우리들의 상상적 유희를 카메라를 통해 어색하지 않게 구체화 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흔히 문학 작품 영화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여건으로 빈번하게 훼손 되는 컬러와 뉘앙스의 이질감은 원작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치밀한 헌팅으로 말끔히 해소시켰으며 주제의식 입체화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이는 김수용 감독의 탁월한 연출 능력이기도 하지만 원작자인 김승옥이 자신의 작품 각색에 스스로 동참했음도 크게 기여한 바라 하겠다.

 당시 김승옥은 소설쓰기보다 이미 시나리오 쓰기에 깊이 참여해 있었고, 이후 영화 연출까지 했을 만큼 영화에 심취해있었다. 그러한 저간의 사정에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게 만든 시대적 상황도 한몫 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무진 기행’의 시나리오 각색 이후 ‘도시로 간 처녀’, ‘영자의 전성시대’, ‘장군의 수염’등 수많은 작품을 각색 집필했으며, 영화 사조사에 거를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필자와 특별한 지연은 없었으나 대학 시절 마로니에 거리와 학사주점 부근에서 몇 번 인가 바람처럼 스친 기억과 그가 청담동 해청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 이웃 아파트에 함께 거주하고 있었던 터로, 그와는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또한 그가 영화일로 가끔 충무로에 그 해사한 모습을 이방인처럼 나타내곤 했을 때, 나는 그가 영화 ‘안개’의 윤기준역으로 직접 출연해봤으면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지금은 이미 영화가의 현장에서 떠난 그지만, 그의 작품들은 마치 상록수의 작가 심훈 선생의 족적처럼 우리 영화사에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영화 ‘안개’에선 윤기준역에 신서일, 하인숙 역에 윤정희, 조한수 역에 이낙훈, 국어 선생 박 교사 역에 김정철 등이 출연을 했는데, 당시로선 호화 캐스팅이었으며 특히 신성일과 윤정희의 연기는 김수용 감독의 연출력에 의해 인기 배우라는 이유로 다양한 장르에서 정형화 되었거나 고착된 두 배우의 이미지를 소설 ‘무진 기행’속의 두 주인공 윤기준과 하인숙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데 무리 없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안개’는 그 해 대종상 감독상 및 편집상, 신인상, 한국 연극 영화 예술상, 부일 영화상, 아시아 영화제 감독상 등을 휩쓸었고, 이로 인해 스토리텔링 위주의 상업주의에 매몰된 영화계에 큰 자극을 주었다. 또한 실종된 문제의식과 독창성을 되찾는 큰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 영화 학도들에게도 필견의 텍스트가 되었다.

 당시 인기 가수 정훈희가 불렀던 주제가도 관객들에게 소설 ‘무진 기행’의 중심 테마를 대중 전달을 통해서 상당한 호소력을 전달했고,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암울했던 60년대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소설 ‘무진 기행’과 영화 ‘안개’, 장르는 다르지만 이 두 작품은 시대를 대변하는 아픔과 슬픔의 최대의 위안이었다.

 우리는 그 절망을 공유하며 분노했고, 증오했고, 탄식했으며, 이를 안주 삼아 통금과 계엄령을 알리는 긴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썩은 폐수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카바이드 막걸리와 쓴 쐬주로 버젓이 나라가 있는데도 나라 잃은 백성처럼 지하 술집에서 통음했다. 그리고 죄 없이 붉은 방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했고, 영화 속의 윤기준처럼 해외로 이민을 떠났고, 축 늘어진 어깨로 귀향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새마을 운동노래가 공습경보처럼 울리는 고향에서 소설 속의 술집여자와 같은 자살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 칠흑 같은 어둠속의 개구리 울음소리와 비오는 날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습기 찬 기적소리… 그 어둠이 차라리 소설속의 안개였으면, 그 기적소리가 통금 소리였으면, 습기 찬 바람 속에 수면제라도 섞여 있었으면, 소설 속 광주역 구내의 미친 여자라도 있었으면, 어떤 개인 날보다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는 하인숙, 그래 그 하인숙이라도 그곳에 있었으면… 우리는 그렇게 갈망했었기에 ‘무진 기행’을 읽고 또 읽었을지 모른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소설과 영화의 라스트 시퀀스의 주인공은 피신하듯 무진으로 왔다가 도망치듯 무진으로 떠났지만, 무진의 안개 속에 버려진 하인숙과 그리고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소설 ‘무진 기행’과 영화 ‘안개’는 영원히 지워질 수 없으리라. 당시 우리들의 다른 모습이었던 영화 속의 주인공 윤기준의 뇌리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