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인정한 우리나라 기록유산
세계가 인정한 우리나라 기록유산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6.09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네스코 가입 60주년, 한국 세계기록유산 현주소를 돌아보다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기억은 많은 경우 불완전하며 시간이 흘러갈수록 소멸된다. 기록물이 있다 해도 천재지변이나 산화, 습기, 자연부식, 화재 등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전에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이렇듯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인 기록유산의 보호를 위해 시작된 것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사업이다. 대한민국 유네스코 가입 60주년과 함께 세계최대규모의 국제기록전(6월 1일~6월 6일, 코엑스)을 연 지금,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의의

유네스코는 기록유산 중에서 인류의 문호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임에도 훼손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록유산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사업을 시작했다.

▲지구촌 기록문화 축제의 장인 <국제기록문화 전시회>가 지난 1일 코엑스에서 열렸다. 전 세계 과거와 현재의 기록을 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전시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린 것은 매우 자랑스럽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세계기록유산목록에 자국의 기록유산을 등재함으로써 그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만을 목표로 생각하기 쉬우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사업의 진정한 취지는 기록유산에 대한 관심과 보호 증진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선정 기준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선정된다. 또는, 전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 및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기록유산도 있다.

형태에 있어서 향후 기록문화의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예를 들면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기록된 원고, 근대 미디어 등과 같은 매체로 된 기록유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특정 국가만의 것이 아닌, 세계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기록유산

기록유산이라 하면 유명한 구텐베르크 42행 성경(독일 괴팅겐 대학 도서관 , 2001), 그림 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독일 그림 형제 협회 , 2005), 안데르센 원고 및 서신(덴마크 왕립도서관 소장 , 1997)처럼 문자로 이루어진 문서나 책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기록유산에 등재가 가능하다. 예컨대 베토벤 교향곡 9번(베를린 중앙시립 도서관 및 베토벤 생가 , 2001), <솜므 전투> 다큐멘터리 필름(영국 전쟁박물관 , 2005), John Marshall Ju'hoan 부시맨 영화 그리고 비디오 컬렉션(스미소니언 협회 , 2009),뤼미에르 형제 영화(프랑스 국립영상자료원 , 2005)  등 음성이나 영상기록들도 다수 존재한다.

세계 주요 선진국의 기록유산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바로 일본과 중국이다.

의아할지 모르지만 일본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현재 아무것도 없다. 이미 기원전부터 기록문화가 시작되어서 유구히 내려오고 있는 중국도 등재된 것은 5개뿐이 없다. 그것도 기본적으로 청조 이후의 것들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록문화 보호의식 및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네스코 등재 우리나라 기록유산

훈민정음

세종 28년(1446)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했는데, 이 책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했다.

▲훈민정음해례본. 한글창제가 상형원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현존본은 1940년경 경북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국내에서 유일한 귀중본이다.

한글과 같이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이미 존재한 문자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 역시 역사적인 일이었다.

특히,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이론의 정연함과 엄정함에 대해서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주는 것은 이 책의 문화사적 의의를 나타낸다.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돼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며 총 1,893권 888책으로 돼있어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양의 역사서이다.

▲조선왕조실록 중 중종실록. 500여 년간의 왕정에 대한 기록이 하나의 체계 아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 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은 그 역사기술에 있어 매우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기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와 함께 일본, 중국, 몽고 등 동아시아 제국의 역사연구, 관계사 연구에도 귀중한 기본자료이기도 하다.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을 포함해서 총 2,077책이 일괄적으로 국보 제 151호로 지정돼 있으며,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직지심체요절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백운화상이 1372년(고려 공민왕 21)에 원나라에서 받아온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의 내용을 대폭 늘려 상·하 2권으로 엮은 것으로, 역대 고승들 간의 문답과 경전을 엮어 학승(學僧)들이 최고과정에서 배우던 교재였다.

▲직지심체요절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세계 최고 금속 활자제작의 근거를 인정 받은 동시에 원산지와 소유국이 다른 약탈 문화재들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

현재는 하권만이 유일하게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특별 귀중본으로 보관돼있다.  하권은 39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첫째 장은 없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이 보존되고 있다. 

책의 끝부분에는 간행에 관계된 기록이 있어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1450년 독일의 쿠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보다 약 73년이나 앞선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금속활자를 이용해 인쇄술을 보다 편리하고 경제적이며 교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 모든 것은 책의 신속한 생산에 공헌했다. 또한, 활자 인쇄술에 적합한 기름먹을 발명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국이 혁신한 실용적인 활판 인쇄술은 동양 인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유럽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승정원일기

승정원은 조선 정종대에 창설된 기관으로서 국가의 모든 기밀을 취급하던 국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승정원일기는 일기 형식으로 조선 건국 초부터 정리됐으나, 조선전기분(朝鮮前期分)은 임진왜란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고 현재는 3,243책만이 남아 있다.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법제, 사회, 자연 현상, 인사, 국왕과 관료의 동정, 국정 논의가 광범위하게 기록돼있어 한국학 연구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승정원 일기

국사연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문화, 군사 등 모든 학문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인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그 사료적 가치에 있어서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비변사등록과 같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료다.

특히,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 자료로 이용했기 때문에 실록보다 오히려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원본 1부밖에 없는 귀중한 자료로 국보 제303호(1999년 4월 9일)로 지정돼 있다. 이는 세계 최대 및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고려대장경판(팔만대장경)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완벽한 불교 대장경판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역된 불교대장경의 원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대장경판은 이미 사라진 초기 목판제작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한편, 고려시대의 정치, 문화, 사상의 흐름과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역사기록물이기도 하다.

인도 및 중앙아시아 언어로 된 경전, 계율, 논서, 교리 및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물을 집대성해 한역한 내용과 더불어 중국어가 원문인 일부 문헌을 선정하여 수록하고 있다.

해인사에 소장되고 있는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 87,000여장의 목판은 1098년부터 1958년까지의 오래 시간에 걸쳐 완성된 경판들로써 국가제작판과 사찰제작판으로 나뉜다. 국가제작판은 고려대장경으로 81,258판 5,200여 만자에 달하고, 사찰제작판은 5,987판이다.

고려대장경판은 이미 사라진 초기 목판제작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한편, 고려시대의 정치, 문화, 사상의 흐름과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역사기록물이기도 하다. 경판 표면에는 옻칠을 하여 글자의 새김이 760년이 지나도록 생생한 상태로 남아 현재까지 인쇄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해인사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은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왕조 의궤

의궤는 국가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작성한 조선왕조의 기록물이다. 같은 유교문화군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선왕조 의궤는 600여년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친(1392-1910)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돼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및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 영상자료처럼 당시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이런 시각중심(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동의보감

1613년 한국에서 집필된 의학적인 지식과 치료기술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왕의 지시 하에 여러 의학 전문가들과 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의 발전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줬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백과사전인 동의보감은 동양의학의 총체적 접근법을 담고 있는,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까지는 유래가 없었던 예방 의학과 함께 국가적으로 이뤄지는 공공 보건정책에 대한 관념을 세계 최초로 구축했다.

한국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닌 동시에, 일반 민중이 쉽게 사용가능한 의학지식을 편집한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서라는 점을 인정받은 동의보감은 2009년 7월 31일 마쓰우라 유네스코 사무청장이 바베이도스(Barbados) 브리지타운(Bridgetown)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9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의 권고를 받아들여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승인했다.

전문가들은 동의보감이 질병 치료와 관련해 정신적·심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동양의학의 ‘총체적 접근법’을 담고 있어, 단순한 기술적인 가치를 넘어 사회적·철학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봤다. 아울러 초간본 동의보감이 이상적인 보존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대한민국 유네스코 가입 60주년

2010년은 여러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동양평화사상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으며, 6.25 전쟁 발발 60주기를 맞아 순국선열들의 얼을 다시금 되새기는 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유네스코 가입 60주기를 맞는 해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14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55번째 회원국으로 유네스코에 가입했다. 이후 6.25 전쟁이 끝나고 1954년 1월 30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설립됐다.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는 세계기록유산목록에 7건의 기록유산을 등재해 기록유산 분야에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선전 속에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국제사업으로 아·태지역 기록유산 전문가 훈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대표적 국제사업 중 하나인 아·태지역 기록유산 전문가 훈련 워크숍의 모습

이 워크숍에서 아·태 지역 각국의 기록유산 보존 전문가를 우리나라로 초청, 우리나라 기록유산 관련 기관을 견학하며 실습훈련을 받으며 지역차원의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토론장을 제공한다.

또한 유네스코에 기록유산의 보존에 기여한 기관이나 개인에게 수여하는 ‘유네스코-직지상’을 후원, 2년마다 청주시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아·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가로서 아·태 지역 국가의 등재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기록 유산의 형태인 디지털 유산 관련 사업도 활발히 추진 중에 있다.

앞으로도 기록유산분야에서 한국의 전문가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 아·태지역뿐만이 아닌 세계의 기록유산 강국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