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러운 한성백제박물관
유감스러운 한성백제박물관
  • 이희진(서강대 강사)
  • 승인 2010.06.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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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추진에 앞서 차별성이나 상징성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이희진(서강대 강사)
지금 서울시에서는 한성백제박물관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 천억 가량의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드러난 대로만 보자면, 살림살이가 쪼들리는 와중에도 서울시가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하여 상당한 거액을 희사한 셈이다.

사실 한국 역사에 있어서 백제라는 나라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비중을 가진 ‘한성백제’를 기념할만한 박물관 하나가 없다는 사실은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비극이다. 그러니 역사학계를 포함한 문화계의 입장에서 한성백제박물관의 건립 자체는 환영하고 볼 일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속없이 좋아하고만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짓고 있는 박물관이 정말 ‘한성백제박물관’이냐는 점부터 의심스럽다. 현장설명회 자료를 보면 도저히 그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동물과 식생을 보여준다면서 ‘매머드의 뼈’를 전시하겠단다. 이걸 비롯하여 선사시대의 자연환경과 유물·유적으로 전시관 하나를 다 채울 계획이다. 여기에 전시연출의 시작은 겸재 정선의 그림 ‘송파진’으로 한다. ‘한성백제박물관’이 역사박물관인지 자연사박물관인지 미술관인지부터 헷갈릴 것 같다.

또한 일부 전시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다른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의 규모는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관련이 적은 것 몇 개만 들어가도 진짜 ‘한성백제’를 보여줄만한 전시 공간이 얼마나 남을지 모르겠다. 전시 내용이 박물관 이름과 별 상관이 없거나 다른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런 박물관을 국민 세금을 들여 지을 필요가 없다.

또 ‘한성백제’와 그나마 관련이 깊은 전시물도 주변의 풍납토성 관련 유물·유적에 집중되어 있다. 기획자들의 의도가 어떻건, 박물관이 올림픽 공원에 자리 잡게 되는 사실 자체도 주변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백제의 중심지로 의식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한성백제박물관’이 한성백제 중심지와 먼 곳에 자리 잡는다는 발상은 떠올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한,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중심지가 될 수 없다. 규모부터가 너무 작다. 10만평은 훨씬 넘어야 하는 왕궁과 수백만평 규모에 달해야 하는 왕성에 비해 6만평짜리 몽촌토성과 17만평짜리 풍납토성을 백제왕성으로 만들어버리려는 시도는 너무하다. 도대체 한성백제를 뭘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데도 ‘한성백제박물관’건립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그 차별성이나 상징성에 대하여 고민조차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관료들의 정보가 부족하다면, 전문가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여 해결하면 된다. 박물관의 건립과 유지비용에 비하면, 전문가들의 논쟁을 유도하는 비용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또한 논쟁 자체가 일종의 문화 컨텐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추진단은 제대로 된 논의 자체를 아예 막아버리려는 것 같다. 이러한 태도를 보아서는, 사업의 목적이 박물관 짓는 것 자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염불보다 잿밥을 위해 사업을 벌인다면, 나중에 진짜 중심지를 찾아 한성백제를 복원하고 활용해 보려는 움직임에 방해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한성백제’를 팔아먹는 것만이라도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미래라도 기약해 볼 수 있을 테니까.

이희진(서강대 강사,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