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의 정체를 살리다
한국 패션의 정체를 살리다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06.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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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문화적 가치 엿볼 수 있는‘한국 현대의상박물관’

[서울문화투데이=성열한 기자] 패션이 이 땅에 들어온지 100여년, 이제 양장은 더 이상 서양의 것이 아니다. 따라 패션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우리의 몫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100년 동안 우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의복에 대한 자료화는 시급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에 본지는 이번 호에서 각 시대의 특징을 담은 디자인과 스타일을 담은 의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할 수 있는‘한국 현대의상 박물관’을 취재했다.

 

옷 속에 담긴 우리의 100년

우리에게 현대식 의상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개화기를 거치면서 부터다. 1884년 갑신의제개혁 이후 ‘거추장스런 한복을 간편한 옷으로 바꾸는 것’이란 내용이 담긴 개혁의 바람을 따라 우리 의복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백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왔다. 일제치하, 한국전쟁, 경제발전 등 많은 변화 속에서 우리 의복은 때로는 타의에 의해, 때로는 유행에 의해 그리고 편의성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단순히 의복의 디자인을 바꾼 것만이 아닌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 관심사, 사회적 지위 변화 등 의식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불어 경제, 사회,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의복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강요에 의한 패션이 유행에 의한 패션으로

박물관은 수진빌딩(종로구 창신동 소재) 9층과 10층에 위치하고 있다.
9층에선 19세기말 의복부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시한 <의상 100년전>과 영부인들이 입었던 의상들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강요 의해 입기 시작한 작업복인 몸빼바지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양장이 최초 도입 된 후 입게 된 깁슨 스타일의 블라우스와 긴 모직 드레스이다. 이어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활동의 편리함과 당국의 지속적인 강요로 국내 의복에 큰 영향을 준 식민지정책의 상징물 몸빼 바지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전쟁을 거치면서 옷을 지어 입을 것이 없었던 1950년대 초 미군이 나눠준 모포를 이용해서 만들었던 옷들을 통해 미국의 원조 물자가 주류를 이뤘던 시대상도 알 수 있다. 1950년대 말 영화 <자유부인>이 큰 인기를 얻으며 등장한 벨벳 소재의 코트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입고 나와 크게 화제가 됐던 맘보 바지도 눈에 띈다.

▲윤복희가 입었던 미니스커트

1960년대는 섬유산업의 성장으로 소매 없는 드레스나 핫팬츠가 크게 유행했다. 윤복희가 입으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미니스커트는 대표적인 의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최초의 패션잡지라고 할 수 있는 <의상>에서 윤복희가 입었던 드레스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미니스커트가 짧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단속이 있었던 당시의 추억이 담긴 사진도 함께 볼 수 있다.

▲디자이너 이상봉의 드레스 '한글'

1970, 80년대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부상한 시기로, 히피문화의 영향을 받은 의복들이 유행했다. 밑단이 넓어 거리를 쓸고 다닌다고 해서 청소바지라고도 불렸던 판탈롱 바지와 국내 최초의 진웨어인 ‘wara’라는 브랜드의 옷은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이 의복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품들이다. 여기에 앙드레김의 자수로 새겨진 롱 베스트와 이상봉의 한글무늬 드레스 등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영부인들이 실제로 입었던 옷들이 전시돼 있다.

한쪽에는 영부인들이 실제로 입었던 의상들도 위치하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부인인 프렌체스카 여사의 검소함이 느껴지는 정장을 비롯해 한복을 즐겨 입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양장 드레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판문점을 넘어섰던 역사적 순간에 입었던 진달래색 정장 등 영부인들의 성격과 시대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는 의상들이 전시돼 있다.

패션이 아트를 만났을 때

10층에는 연예인들이 실제로 입었던 의상들과 함께 에콜로지의상과 펑크의상들이 전시돼 있다. 1959년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가 같은 해 미국에서 개최된 미국 유니버스대회의 참여해 착용한 드레스와 함께 탤런트 김남주가 미스코리아에 참여했을 당시 입었던 드레스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 우리 미스코리아의 의상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청자 모양의 독특한 드레스가 제일 눈에 들어온다. 이세득 화백이 드레스 안에 학과 소나무를 직접 그려 수놓은 이 드레스는 이미자가 입어 더욱 화제가 됐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패션과 아트의 만남을 시도한 고 최경자 이사장의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독특한 소재로 제작된 아트웨어

이 밖에도 미술과 패션이 만나 하나의 결과물로 태어난 아트 웨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아이디어로 각종 전시나 비엔날레와 같은 행사에 참여했던 작품들은 기증 또는 수집해 전시했다. 천연 소재로 디자인된 에콜로지 의상과 각종 펑크 의상들은 현대의상박물관의 특별한 유물이라 하겠다.

한국 현대의상박물관 신혜순 관장
“우리 패션 발전에 박물관이 큰 도움이 됐으면”

▲신혜순 한국 현대의상박물관 관장
우리나라에 한복박물관은 많다. 하지만 한국에 양장이 도입된 지 100년, 이미 양장이 생활화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양장전문박물관은 국내에서 한국 현대의상박물관이 유일하다.
한국 현대의상박물관은 신혜순 관장(73)과 그의 어머니이자 우리 양장 역사와 그 맥을 함께했던 고 최경자(전 국제패션디자인학원 이사장)이사장의 노력으로 설립됐다.

 

“미국 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유학시절에 미국에서 의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의상박물관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 스케치나 과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패션발전을 위해 의상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현대의상박물관은 전시에 그치지 않고 패션쇼를 기획하거나 의상을 전공하는 학생, 패션업계종사자들에게 의상을 직접 보며 만질 수 있는 강의를 진행한다.

“세미나를 통해 현대의상변천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전문 의상 관련인들이 많이 찾아와요. 창의적인 디자인을 위해선 의상변천에 대해 자세히 알고, 그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패션전문인들이 좀 더 복식변천에 많은 관심을 많이 가져 깊이 있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헌 옷? 소중한 유산!

신혜순 관장은 2천여점의 소장품들을 수집하면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의상들이 훼손되거나 버려질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수집가에겐 옷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헌 옷이나 다름없죠. 한 번은 수집한 옷들을 거실에 정리하다 놓아뒀는데, 일하는 사람이 쓰레기인줄 알고 내다버려 다시 찾아온 적도 있어요.”

▲고 최경자 이사장이 만든 이브닝드레스  '청자'

누구나 작품을 수집하다보면 가장 애착이 가는 소장품이 생기기 마련, 신 관장은 어머니 고 최경자 이사장의 작품 ‘청자’를 꼽았다.

“우리나라 고유의 청자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 실루엣과 빛깔이 매우 아름다워요. 1962년 한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국제패션쇼에서 갈채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죠. 또한 이세득 화백이 직접 학과 구름문양 등을 수놓은 패션과 아트와의 만남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죠. 무엇보다 어머니가 만든 작품이라 개인적으론 의미가 깊죠.”

어머니의 뜻을 잇다

고 최경자 전 이사장은 1938년 국내 최초의 패션교육기관인 함흥양재전문학교(국제패션디자인학원의 전신)를 세워 앙드레김, 이신우, 루비나, 박윤수, 이상봉 등 국내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을 배출해낸 패션계의 대모였다.

“개인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게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라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죠. 하지만 평생 의상계에 몸담아온 어머니나 저로선 패션을 공부하고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단 책임감과 의무감이 크죠.”

신 관장은 오는 10월 아트 웨어 전시계획을 갖고 있다. 가장 흐뭇한 순간은 학생들이 박물관에 찾아와 보존되지 않았다면 볼 수 없던 옷들에 감동하며 배우는 모습을 볼 때라고 했다. 신 관장은 마지막으로 “공간의 제약으로 많은 소장품들을 모두 보여주지 못할 때 가장 안타깝다”며“바람이 있다면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소장품들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