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복에서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다”
“나는 한복에서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다”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6.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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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파리컬렉션 준비 중인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와의 대화 현장

[서울문화투데이=정지선 기자] 우리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오히려 외국인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것들이 있다. 한복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 한복은 더 이상 우리만의 옷이 아니라 세계인의 관심 대상이 됐다. 그 중심에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가 있다.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의 소탈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은 대화 내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10일 파리컬렉션 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영희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찾았다. 경기 창조학교(명예교장 이어령) 멘터와의 대화 현장에서 만난 그는 소탈하면서도 열정적이었다.

10여명의 멘티가 자리한 가운데 작업실 2층에서 진행된 이영희 디자이너와의 대화는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대화를 마친 후에는 3층 작업실을 찾아 파리컬렉션 출품작들을 살짝 공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는 요즘 파리 오트 쿠튀르(불어로 ‘고급맞춤복’이란 뜻으로, 세계 유수 디자이너들이 직접 수공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장을 말함) 출품작을 제작하느라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서문을 열었다.

한복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 중인 이영희 멘터

그는 “한복이 파리에 진출한지 17년, 절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난 1980년대부터 이미 한복을 예술품으로 만들겠단 꿈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열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계속 연구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그냥 보고 넘기는 법이 없다. 특히, 박물관은 찾아갈 때마다 옛 것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내가 만든 작품이라도 나중에 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들도 더러 있다”면서 “일을 할 때는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 중간에 쉬면 열정도 식는다. 무엇보다 꾸준히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메모하면서 열심히 듣고 있는 창조학교 멘티들

한복 공부에 대한 필요성도 언급했다. “내 경험으로 비춰볼 때, 한복을 알면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며 “한복에 대한 공부는 어느 직업을 갖든 필요하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이라고 했다. “곡선이라고들 하는데, 곡선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색이다.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의 경우는 어떻게 입어도 촌스럽지 않은데, 우리 한복은 색을 잘 맞춰 입지 않으면 촌스럽다. 이것이 바로 한복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APEC 당시 세계 각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고 있는 이영희 멘터   

한편, 그는 파리 기자들 중에는 한복을 보면서 말을 하는 것 같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며, 옷에 철학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2005년 APEC 당시 각국 정상들이 입었던 두루마기를 제작하면서 고심(?)했던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당시 두루마기 제작을 의뢰받았는데, 제대로 만들어야 된단 생각에 부담이 많이 됐다. 회담장소를 두 번이나 먼저 방문해 아이디어를 얻었고, 땅과 하늘(바다) 그리고 소나무 등을 보며 그 자연의 색을 두루마기에 담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며 한쪽 벽면에 걸려있던 사진을 보며 웃어보였다.

한산 모시의 세계화를 위해 모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제작 중이다.

현재 작업 중인 파리 컬렉션 출품작들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한산모시를 소재로 작품들을 제작 중이다. 이는 한산모시의 세계화를 위해 진행한 것으로, 충청도에서 지원받고 있다. 여름엔 종종 입는데, 한산모시는 입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가볍고 부드럽다”며 “음악부터 헤어, 메이크업에 이르기까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없다. 모두 협의 하에 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이영희 멘터와의 대화에 참석한 침구류 디자이너 이경하 씨는 “오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뭔가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며 “전통 그리고 한복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