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거리의 야누스 ‘고철 수집장’
문화거리의 야누스 ‘고철 수집장’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02.1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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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삶’의 충돌 속...200여명 생계 터전 주장

<인사동을 다시보다 1>

“서울의 대표적 도심 관광지인 종로구 인사동 문화거리 부근에 ‘제 2의 인사동 거리’를 만든다...”

지난해 가을 언론 매체에 보도된 서울시 문화정책의 일부다. 서울시는 인사동 거리에서 동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돈화문 앞거리(일명 국악로, 창덕궁 앞 돈화문~단성사 · 피카디리 극장가 까지) 약 600미터 구간을 전통 음식점과 찻집, 공방 등이 들어서는 고품격 전통거리로 새로 조성키로 했다는 것이다.

▲ 이곳 인사동에서 리어카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2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의 인사동이 예전의 정체성을 잃고, 국적 불명의 유흥가로 전락해 버렸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이에 전통 한옥 130 여 채가 남아있고, 전통 한복집과 악기점, 공예품 점 등이 영업 중인 돈화문 앞거리를 새로운 전통거리로 조성키로 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용역까지 발주하는 등 구체적인 일정까지 밝혔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의문이 생겼다. 서울시가 인사동을 포기한다는 것인지? 제2의 인사동을 만든다 한들 그곳마저 변질되면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 본지는 이런 의문을 가지며, 그래도 지금의 인사동을 살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인사동 다시 보기’ 논의를 벌여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어울리지 않는 요충지

인사동 다시보기 첫 번째 타겟으로 이곳 188-7에 위치한 고철 수집장을 설정했다. 남인사 마당에서 북인사 마당(안국동 로타리)으로 향하다 인사동 네거리 못미쳐 좌측 구역에 위치한 작업장이다. 흔히들 고물상으로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말은 고물상이지만 공식적인 업체명인 ‘00 자원’이라는 버젓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행정 용어로는 ‘민간 수집장’이라 부른다. 인사동 논의에서 이곳이 첫 번째 타겟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이른바 문화인들의 쏟아지는 눈총 때문이다. 문화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이곳을 통과하면서 한 두 번쯤 불편을 토로하는 곳이다.

인사동에서 공평동 은행가로, 또는 종각역으로 통하는 아주 중요한 길목에 위치한 이곳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길로 돌아서 가기도 한다. 공평동이나 종각역에서 지름길을 찾아 인사동으로 오는 사람들도 이 작업장을 피할 수 없다.

역시 불편을 느끼며 지나 온다. 아니면 인사동 네거리 골목으로 돌아서 들어오기도 한다. 그만큼 이 작업장은 인사동을 찾는 사람들이나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껄끄러운 존재다. 당연히 불만과 눈총이 쏟아진다.

문화거리 인사동에 어울리지 않는 포크레인 기기며, 작업 소음이며, 고철과 파지들이 널려 있는 현장이며, 드나드는 트럭까지 주변 문화상가와 방문객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일하며 인사동 매니아로 자주 드나든다는 최진출(가명 · 66세)씨는 서울시 조례까지 인용하며, 문화거리 내에 고물상이나 장의사, 총포상은 못하게 돼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서울시나 종로구청이 문화거리 인사동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당연히 이 고철 수집장에 대한 대책을 연구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작업장 인근의 문화상가 종사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들이다. 인근의 한 가게 종사자는 외국인들이 지나가며 작업장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느낄 때가 있다고 전한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얼마 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나갈 때도 이곳 부근은 안내 스케줄에서 빠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반면 다른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고철 수집장을 무조건 껄끄럽게만 봐서는 안된다는 ‘현실론’이다.

■대안없는 배척도 좋은가

작업장 인근에서 15년 이상 자리 잡고 있다는 사진관 주인은 “만일 이 작업장이 없다면 인사동 주변은 지금보다 훨씬 더 지저분한 파지와 고철더미들이 넘쳐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사동에 문화의 거리라는 개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던 고철 수집장을 지금에 와서 어울리지 않는다며, 백안시하는 발상은 문화라는 관념에만 빠져 현실을 무시하는 편협한 사고라고 말한다. 문화편의주의에 젖어 대안 없이 남을 난처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실제 작업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최진수씨를 만나 보았다. 최씨에 따르면 약 150평의 대지를 확보한 이곳 작업장의 정식 직원은 4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철과 파지를 모아 이곳에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인원은 약 2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주변 빌딩과 거리에서 전문적으로 고철을 모아오는 사람들의 한 달 수입은 200만원을 넘기도 하며, 리어카를 끌며 파지를 모아오는 아줌마들의 하루 벌이는 4~5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최씨는 무엇보다 인사동에서 30년 이상 영업해 온 ‘터줏 대감’ 같은 작업장을 보고, 문화지구의 이름으로 싫어한다면 자기들이 갈 곳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반문했다.

■야누스의 상품화 과제

종로구청 관계자를 만나 보았다. 서울시 조례대로 문화의 거리에서 고물상, 장의사, 총포사 등을 열 수 없다면 인사동의 고철 수집장은 불법이란 말인가? 구청 관계자의 답변은 그것이 아니었다.

관계자에 의하면 인사동 고철 수집장의 법적 지위는 ‘미신고 대상 민간 수집상’(또는 재활용품 수집상)이다. 이른바 ‘고물상’은 과거 고물 영업법(1963년 1월 제정)에 의해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아 고철, 구리, 유리병 등을 취급했으나, 1993년 12월 27일자로 고물 영업법이 폐지되면서 허가절차까지 모두 없애 자율적 영업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

결과적으로 인사동 고철 수집장은 합법적이며, 소음이나 쓰레기 소각시의 유해 가스 발생 등이 없게 지도하는 일 외엔 규제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시내 어느 곳에서 고물상 하나가 새로 생기더라도 그것이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구청에선 알 수가 없다는 것.

결국 인사동 고철 수집장도 같은 맥락에서 법적 신분이 확인 된 셈이다. 문화인들과 시민들의 불편 토로가 있더라도 그대로 둘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문화거리라는 관념이 삶(생계)이라는 현실과 법 앞에 맥을 못 추는 형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시민 박성학(49 · 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이렇게 말한다.
“문화거리 내의 고철 수집장이 현실로 굳어진 상황이라면, 그 자체도 사람 사는 모습으로 관광상품화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문화와 사람과 삶의 여러 모습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인사동의 야누스’를 상품화할 방법을 찾는 데서 답이 있지 않을까?”

                                    서울문화투데이  권 대 섭 대기자 kds5475@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