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10.06.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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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이 사라진 <제로포커스>

가끔 세상을 살다보면 근원을 알 수 없는 원초적인 감정들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인간이란 존재가 수백만년 진화를 한 존재이다 보니 이 시대에 산다는 것에 본능적으로 놀라는 것이리라.

인간이 정치, 사회 구조속에 자유롭지 못함은 어느 시대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들은 과거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과연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외부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끊임없이 사회가 진화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까지 한밤중에 <제로포커스>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평을 쓰자니 지나간 과거의 사람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수많은 감정이 밀려와서 쓴 긴 서론이다.

<제로포커스>는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광란의 전쟁을 경험했고 미국에 패전하여 어렵게 살았던 1940-1960년대 일본 사회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마츠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2009년 <제로의 초점>이란 소설을 영화화하였다.

일본에서 마츠모토 세이초는 1950년대 일본의 격동기를 묘사한 사회적 추리소설로 유명한 국민작가이다. 실제 그는 전후 혼란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작품속에서 살인이란 극단적인 행위에 사회적 동기를 집어넣어 추리적 소설의 형태로 그 당시 개인들이 겪었던 아픔들을 잘 그려내 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  우리가 구태여 일본 사람들 겪었던 고통을 동정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저절로 가슴 아픈 것은 우리 나라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고 오히려 더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1957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데이코(히로스에 료코)는 맞선을 본 겐이치와 결혼을 한다. 광고일을 하는 겐이치는 지방 가나자와에서 일주일후 도쿄로 전근 올 예정이었지만 가나자와에서 돌아오지 않고 실종된다. 데이코는 남편의 책속에서 두장의 사진을 발견하는데 이를 근거로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가나자와로 직접 내려간다. 그곳에서 남편 겐이치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는 동시에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벽돌공장 사장부인 사치코의 등장과 겐이치와 동거했던 히사코,  겐이치형의  갑작스런 죽음이 남편 겐이치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며 데이코는 심한 혼란에 빠진다. 도대체 겐이치는 어디에 있는가?

<제로포커스>는 삶을 제로로 돌리고자 했던 여러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한 제목이다. 겐이치는 히사코를 버리고 새로운 아내 데이코와 다시 시작하고 싶었으며, 사장부인 사치코는 팡팡걸(우리나라로 말하면 양공주)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일본 여성이 시대에 휘둘리기보다 앞서서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끝까지 숨겨서 제로로 만들고 싶어했다. 또 데이코는 결혼이라는 제로의 상태에서 출발하고자 하였다.

감독 이누도 잇신은 <메종 드 히미코><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를 만든 실력있는 감독이며 <제로포인트>의 1950년대 일본을 묘사하기 위해 우리나라 부천 오픈셋트에서  한국 스탭들과 촬영을 하였다.

2010년 일본 아카데미 우수감독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일본 영화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할 작품이며 만약 내용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면 그건  유명한 소설의 내러티브를 따라한 뒷사람들의 카피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원작이 지닌 사회와 개인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진한 감동을 주며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2009, 이누도 잇신 감독, 일본, 미스터리/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