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넣든가
사진을 넣든가
  • 최영순 수필가
  • 승인 2010.06.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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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협회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어머님, 하얀색은 0번이예요, 노란색은 0번이예요” 지난 6.2 지방 선거 날 기표소 안에서의 헤프닝 이다.

 내 생에 첫 선거 이후 단 한 번도 신성한 주권을 포기 하지 않았건만 기표 란이 여덟 칸이나 되는 이번 선거 방법은 혼란스러웠다.

  건물 벽면마다 붙어있는 대형 사진과 거리마다 걸려 있는 현수막은 10여일 가량의 유세기간 동안 도심의 미를 해칠 정도건만 모두 비슷해 보여 분간이 어려웠다.

 투표소 안내장과 함께 선거위원회에서 보내온 후보자의 공약과 학,경력이 적힌 홍보물은 더더욱 난수표였다. 투표용지에 사진이 박혀 나오는 것도 아니건만 컬러판 A4용지 크기엔 사진이 다 차지하고 정작 중요한 시 의원 후보인지, 도 의원 후보인지 등의 유권자가 알고 싶은 정보는 작은 글씨가 위 아래 좌 우에 적혀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이십 여장 가까운 자료를 꼼꼼히 보기는커녕 짜증스럽기 까지 해 건성으로 들춰 보다 던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아무나 찍을 수는 없어 선거 전날 저녘 운동 길에 메모지와 펜을 들고 가까운 버스 정거장에 나가 그나마 구분 지어 붙여 놓은 벽보를 찬찬히 보고 들어와 메모지를 펼쳐 놓고 고심을 했다.

 불과 2년여 전, H시에서 광역 화장장을 유치하기 위한 시장과 이를 반대 하는 시민들과 심한 갈등을 겪은 일이 있다. 그 때 시 의회엔 정당별로 좌석수가 고르게 배분 되는 게 좋겠구나 하는 경험을 했던 바 이번 선거는 특정 인물과 정당 보다는 의석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마음을 정했다.

 선거 날 아침. 전적으로 내 의사를 따라 주시는 어머님과 이마를 맞대고 최종 리허설을 마친 후 보무도 당당히 투표장으로 들어섰지만 막상 용지를 받고 보니 어머님은 고사하고 나부터 헷갈리게 생겼다. 헛되이 날아가는 표는 막아야 한다는 의협심에 대한민국 아줌마의 기지를 발휘해야만 했다.

 어머님의 기표소 바로 옆으로 들어가면서 “어머님 잘 하셔야 해요.” 하고는 하얀색은 0번, 노란색은 0번이예요 라고 그야말로 생중계를 했다. 선거위원이 “말씀 하시면 안 돼요.” 라고 주의를 주건만 90 노모를 모시고 투표 하는 나를 설마 잡아 가기야 하겠나 하는 배짱으로 1차 2차를 같은 방법으로 마치고 약간 계면쩍은 웃음으로 마무리 하고 나왔다.
 
 이제 제5회 기초 단체장 시대가 열렸다. 당선자들은 부디 유세 때의 마음처럼 낮은 자세로 앞으로의 4년을 시민의, 도민의 심부름꾼이 되어 주기만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는 홍보물을 좀 획일적으로 제작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진은 멋있게 넣을수록 좋겠지만 적어도 어느 단체의 후보인지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말이다.

아니면 아예 투표지에 사진을 넣는 안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