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뒤안길에서 일어났던 일들 (2)
젊음의 뒤안길에서 일어났던 일들 (2)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0.06.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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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시절

그리고 10년 후인 1941년에 미국과 영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햇다. 만 40세 때다. 그리고 44세 때 항복했다. 그러니까 가장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 때문에 가슴이 설레이며 일도 많이 저질렀을 때에 그는 연애 대신 전쟁을 한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일본왕의 30세 기념행사와 40세 기념행사로 불꽃놀이 하듯 시작되어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짓밟아 버렸다. 물론 히로히토가 자기 혼자 모든 것을 진행시킨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최고 통수권자였던 것이 사실이고 그는 이 때 마치 푼수 없이 날뛰며 욕망을 불태우는 여인처럼 일을 저질러 나갔다.

만주를 삼키고 다음에는 햐쿠닝키리百人斬殺의 일본도 학살 경쟁 등 살인마의 광기로 30만 난징학살을 감행하고 731부대에서는 생체실험을 감행하고 아시아 전체를 지옥으로 몰아갔다. 대동아공영권을 만든다는 것이었으니 원대한 목표에 대한 '그리움'도 많았을 것이고 실패로 인한 '아쉬움'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다가' 다 망해버려서 맥아더 장군 앞에 찾아가 깊은 절하며 목숨 살려 준 고마움에 대한 인사 나누고 돌아온 히로히토. 그때 나이 만 44세이니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불혹의 중반에 들어선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신이 아니다. 다음해 1946년에 일본 헌법은 히로히토가 일본국의 상징적 존재로서만 남는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새로 탄생한 것이다.

서정주가 다음 해에 <국화 옆에서>를 발표하며 말한 '한 송이 국화꽃의 피어남'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딱 맞는다. 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다음에 그 죽음의 묘지에서 원한이 맺힌 소쩍새들의 울음소리로 피어나고 피를 먹으며 피어났고 그래서 새 헌법에 의한 인간 북귀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새로 태어났다고 서정주는 말한 것이다.

시의 내용 전문이 이렇게 정확하게 일왕 히로히토가 일으킨 전쟁실황과 패전 후의 결과까지 완전히 일치한다. 콩쥐가 잃어버렸던 신발 한 짝이나 신데렐라가 잃어버렸던 신발 한 짝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사적 사실과 시의 내용이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그렇게 항복한 일왕이지만 그는 여전히 일왕이니까 국화꽃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그의 샤머니즘 신당神堂에 모시고 있던 신이니 아름답게 노오란 국화로 표현한 것이다.

서정주는 스스로 미당未堂이라 했다. 그가 샤머니즘의 의식 세계에 있으면서 이렇게 일왕을 자기 문학의 신당에 모셔 오고 있었으니 그도 반쯤은 무당임을 자부하면서도 아직 미숙한 미당인 '미당'이라 했을 가능성이 많다.

무당집에서는 맥아더장군을 모시기도 했다. 일본에선 이순신 장군도 모시고 안중근 열사를 가미다나神棚에 모시는 집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애매한 신보다는 실제로 가장 존경하거나 가장 실력이 있고 자신의 운명에 영향력을 미치는 현실적 신을 모신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에서는 미당이 '천황폐하'를 모시고 친일문학을 한 것도 그의 사악한 욕망을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일왕이 실권을 잃고 인간 선언을 한 이상 이미 신당에 모셔질 가치가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작별을 고하고 다음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승만의 마포장에 출입하며 그를 만나고 곧 대통령이 될 그의 전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그 같은 일왕과 이승만의 교체 행사를 의미한다. 벽에서 하나는 내리고 다른 하나를 거는 정중한 의식이었다.

그 후 광주의 피바다를 만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될 때 그를 극찬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이 같은 악마적 친일문학 기법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그루누이의 향수'다. 그루누이는 많은 미녀들을 납치해서 찜 통 속에 넣고 삶아서 우려낸 물로 명품 향수를 만들어 냈다. 한국의 독자들은 지금까지 그 향수에 취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향수는 일본 왕이 30세 때 일으킨 만주사변으로부터 40세에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1945년 8.15 때까지 15년간 희생된 수많은 생명의 피와 눈물을 원료로 해서 만들어진 향수다. 서정주는 그 향수에 국화 상표를 붙여서 내다 판 것이다.

그루누이의 향수가 달콤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정주와의 KBS 스튜디오 녹화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님, 지금 우리가 시를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시만 안 읽습니다. 서생님의 시에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내게 고함을 지르면서 녹화 도중에 벌떡 일어나서 나가 버렸었다.

"시가 사회의식만 찾으면 모두 망쳐 버린단 말이오"

그로부터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지금도 우리 문단에 살아 있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침략전쟁, 천황폐하 찬미가'를 부르는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