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한국적 풍광을 생각한다
'오래된 미래' 한국적 풍광을 생각한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6.2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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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년 개발지상주의...놓쳐버린 우리모습 다시 찾아야

가끔 TV를 통해 세계 도시 테마기행 프로그램을 본다. 될 수 있으면 TV를 보지 않겠다며 그것을 치워버리는 가정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잔잔한 음악과 함께 보여주는 TV속 영상은 때로 감동과 함께 위안과 휴식을 준다. 영상을 통해 소개되는 세계 각 나라 도시 테마기행에서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하나 같이 그 나라 특유의 자연풍광과 어울리는 도시경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유럽 여러나라 도시들은 중세적 도시경관을 어찌도 그리 잘 유지하고 있는 지 놀라울 뿐이었다. 이탈리아 볼로냐나 베네치아 같은 도시는 말 할 것도 없고, 체코의 프라하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오래된 건물과 골목 구석구석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듯 잘 보존해 오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 독립한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같은 나라들도 과거 소련시절을 거치면서도 그들의 역사유적과 종교적 건물을 포함한 전통적 풍경을 그대로 지키며 짭잘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과거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산과 유물, 거리 골목들에 대한 애착이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그들의 삶까지도 담보해 주고 있었다.  물론 이런 점은 동양의 여러 나라도 크게 뒤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 운남성 펑황 같은 도시는 명나라 시대의 건물과 미로처럼 얽힌 골목들이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강을 끼고 잘 보존되며, 그곳 주민들의 현재적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일본 교토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도시들과 문화마을 역시 마찬가지 감회를 주며 그 나라를 문화관광대국으로 이끌고 있다. 미국과 30년 전쟁을 치른 베트남 같은 나라들도 수도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대도시들에서 그들 특유의 경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자의 욕심인지 몰라도 동서양 각 나라 도시들의 테마기행을 보면서 유독 우리나라만 그간의 개발중심주의 정책에 의해 우리다운 풍광과 아름다움을 너무 많이 파괴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획일적 일자형 아파트와 회색 빌딩들로 가득찬 도시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농촌 지역마저도 선조들이 한 뼘 한 뼘 손으로 쌓았던 돌담은 사라지고 퀴퀴하고 황량한 벽돌담이 정체불명 국적불명의 골목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70년대 초가집을 허물어 내던 새마을 운동 때 동네 골목 흙 담장과 돌담의 가치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결과다.

심지어 요즘에는 도시적 아파트와 시멘트 양옥집들이 그나마 남아 있는 전통 기와집들을 가리며 들쑥날쑥 섞여 시골마을의 경관은 정말 볼품이 없다. 버드나무 우거지며, 맑은 냇물에 물고기 지천인 강변과 봄이면 꽃대궐 이루던 동네 풍광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거기에 집집마다 소한마리에 개와 닭들을 키우며, 아이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던 우리네 고향이 있었지 않았던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열릴 '격물치지(格物致知)' 展은 우리가 지켜야 할 고유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1명의 사진작가가 8개월 동안 전국 곳곳을 돌며 발품으로 기록한 우리네 풍경은 새삼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갖게 한다. 서울 궁궐 깊은 건물 모퉁이 마당의 그윽함, 산 능선과 기막히게 어울려 보존된 전남 담양의 금성산성, 이끼 가득한 바위와 수풀이 어울린 절 집 마당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아쉬운 건 지난 세월 산업화와 개발의 삽 질이 무식하게 진행되는 동안 이제 우리네의 아름다움은 이렇게 전문 작가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볼 가능성이 점점 커져 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탈리아 볼로냐나 체코의 프라하나 중국 펑황이나 일본 교토처럼 하늘에서 공중에서 통째로 우리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 못하게 됐나. 왜 이렇게 세세히 작가의 렌즈에 의해서만 제 것을 봐야 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나 이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4대강에선 한국적 자연 풍치가 '정비'라는 미명하에 파헤쳐지고 있다. 다른 한편 수도 서울 인왕산 기슭에선 '서촌 보존' 정책에 의해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금껏 마구 부숴 재건축 재개발로 재미 보던 패턴에서 다시 옛 것 보존으로 가려니 그 또한 어려운 것이다.

한국미의 정체성과 전통문화경관을 화두로 삼은 '격물치지' 전시회를 보면서 개발과 정비로 수 십 년 숨가쁘게 달리다 놓쳐버린 우리 모습, 우리 풍광, 그 독특한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를 다시 찾고 살려야 겠다는 강렬한 열망과 맞딱 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