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시간, 골목
사라져가는 시간, 골목
  • 박솔빈 기자
  • 승인 2010.06.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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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동 시계·귀금속 골목

[서울문화투데이=박솔빈 기자]종로는 언제나 바쁘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자전거, 자동차. 그 틈바구니에 조용히 시간이 멈춰선 골목이 있다. 광장시장 맞은편 종로 예지동 골목에는 수많은 낡은 시계들이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러있다.

 

 

 

 

 

밖으로 나와있는 장식장에는 80~90년대 시계들이 가득하다. 시침·분침은 몇십년 전 과거에 멈춰있다.

가게 내부에는 새시계들이 대부분이다. 만원짜리 어린이 시계부터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스위스 시계까지 번쩍번쩍 윤이 난다.

예지동 시계·귀금속 골목은 6.25 이후 구호물품이 유통되면서 생겨났다. 그때만 해도 시계는 구호물자 중 가장 고가품이었고 그런 시계를 융통하는 상인들은 "종로에서 시계한다"는 소리만으로도 유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시계가 중심이던 진열장에 귀금속이 들어온 것은 70년대 말, 광산 바람이 불던 때였다. 밀려드는 '금덩이'들에 너나할 것 없이 귀금속가게를 차리면서 명실공히 국내최대 예물전문상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을 넘자 시계점이 600곳이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상가는 급격히 쇄락의 길을 걸었다. 삐삐,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손목시계가 필요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30년 이상 한자리에서 시계장사를 고집해오던 장사꾼들은 21세기에도 자리를 지켰다. 어느새 호호백발이 다된 시계수리공들도 여전히 그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있다.

세월이 쌓이듯 먼지가 앉은 장식장을 정리하던 시계상 주인이 말했다.

"다 몇십년씩 있던 가게들이야. 요즘이야 만원짜리 싸구려 시계가 많지만 예전엔 정말 비쌌지. 시계장사한다 그러면 다들 알아줬는데..."

비록 많은 점포가 문을 닫았어도 여전히 '국내최대 시계상가'는 확실하다. 못파는 시계, 안파는 시계가 없고 못 고치는 시계가 없다. 시중보다 기본 30%는 저렴한 가격에 태엽을 감아 돌리는 쾌종시계부터 패션시계, 예물시계까지 수백 종류의 시계들이 진열대를 꽉꽉 채웠고 그런 점포가 수십곳이 넘는다. 찾는 이가 얼마 없어도 '시계명장'들은 똑딱똑딱 시계소리 사방으로 가득한 작은 점포에 앉아 시계를 고친다.

하지만 이제 그조차도 힘들게 됐다. 2010년,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던 재개발 계획이 본격화되면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건너편 세운스퀘어로 이전했지만 30년 일한 일터를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이사가야지. 여기서 장사한 세월이 얼만데, 많이 아쉽지."

균일화된 빌딩이 계란판처럼 자리잡은 도시 서울. 그나마 숨쉴만하던 골목들은 이렇게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